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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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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vs 안전’ 논쟁을 넘어 ‘코로놉티콘’을 막아라

[코로나 뉴노멀]
1부 2장 큰 국가의 귀환
‘팬데믹 정부’ 견제하는 법 논의 필요
등록 2020-05-30 07:22 수정 2020-06-13 04:40
코로나19 공습 이후 중국 정부는 도심 곳곳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통해 격리된 사람들을 지켜보고, 코로나19 확산을 추적하는 등 감시를 대폭 강화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공습 이후 중국 정부는 도심 곳곳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통해 격리된 사람들을 지켜보고, 코로나19 확산을 추적하는 등 감시를 대폭 강화했다. 연합뉴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표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에 인간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인류의 생활양식은 예전과 똑같은 궤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코로나 뉴노멀’ 시대의 개막이다.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물리적 접촉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덕목이 아니게 됐다. ‘접촉 축소’라는 시대적 요구는 자동차와 비행기의 이동을 줄게 해 의도치 않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를 안겨줬다. 화석 연료로 지탱하는 지금의 에너지 구조는 더 이상 ‘이대로’를 외칠 수 없는 영역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작은 정부론’에 시달리던 국가는 영역을 확장해나갈 태세다. 코로나19 대응에 미숙함을 드러낸 미국과 중국, 두 국가는 국제적인 지도력을 잃었다. 지(G)2 시대가 저물고 지(G)0 시대가 열렸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코로나 뉴노멀’이 정의와 평등의 얼굴을 갖게 하기 위해 세계시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_편집자주

위기는 국가에 힘을 싣는다. 국민은 팬데믹(전염병 대유행) 공포와 싸우기 위해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처할 큰 정부를 요청한다. 3월 초 코로나19 공습 초기 영국 과학자들이 ‘이대로 놔두면 5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영국 정부는 “국민보건서비스(NHS)와 검사체계가 잘 준비돼 있다”며 뭉그적거렸다. 그러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자 영국 정부가 몹시 안일하고 너무 늦게 개입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반면 프랑스 정부는 “우리는 보건 전쟁 중이다. 집에 머물러주길 청한다”며 국민 이동제한령을 발포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2년 만에 50%를 넘어서며 국민의 큰 지지를 얻었다.

개인 감시하는 중국식 vs 프라이버시 침해 최소화 유럽식

한국에서도 바이러스 위기 한가운데서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민심은 여당의 180석 압승이라는 결과로 정부에 힘을 실어줬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직무수행 평가도 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한 2월 넷째 주 42%에서 5월 첫째 주 71%로 지속해서 상승했고, 이후 5월 셋째 주까지 65%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한국갤럽 조사)

코로나 이후 ‘뉴노멀’로 큰정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다. 위기 속에서 큰정부의 역할은 필요하기도 하고, 위기 대응 과정에서 몸집을 불린 큰정부가 움켜쥔 권한을 쉽사리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예외적인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건 낡은 패러다임이다. 위기 대응과 관련해 국가의 깊숙한 개입이 필요하다”며 “다만 이 예외적인 상황이 무기한 지속돼서는 안 되고 명확한 시간적 제한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융합자율학부)도 “감염병 대응은 준전쟁 성격이 있는데, 전쟁이라는 게 국가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므로 국가 개입 여지가 커지는 것”이라고 했다.

큰정부·작은정부라는 용어는 모호하다. 국가의 어느 기능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어떤 정부’로 나아갈지에 대한 방향이 중요하다. 큰정부라는 뉴노멀의 방향은 단일하지 않고 다양한 선택지로 다가올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중국과 같은 빅브러더 정부, 프라이버시 침해를 최소화하며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려는 유럽식 정부, 그리고 두 모델 사이 어디쯤 위치할 정부 모델이 있을 수 있다고 예시했다. 다만 아직 구체적인 상으로 정리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는 “정부의 어떤 기능이 커질 것이냐와 관련해 뉴노멀을 둘러싼 다양한 정치·사회 세력의 갈등과 정치투쟁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큰정부의 방향과 관련해 안병진 교수는 “매우 정교하게 권한을 행사하고, 개인의 존엄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1960~80년대 군사독재 때 권위주의적으로 억압하는 방식의 큰정부와는 전혀 다른 민주화 역량을 발휘하는 큰정부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사회적 약자와 사회구성원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시민의 ‘안전’과 ‘자유’를 균형 있게 보장하는 큰정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이후 바이러스 확산 위기가 증폭됐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서울 용산구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이후 바이러스 확산 위기가 증폭됐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확진자 사생활 보호” 인권위 권고도 묻혀

안전과 자유의 균형은 큰정부 담론에서 ‘뜨거운 감자’다. 프라이버시는 무조건 보호해야 하는가, 공익을 위해 어느 정도 희생할 수 있는가. 희생한다면 어느 선까지 가능한가. 이는 찬반이 팽팽해 칼로 무 자르듯 답을 내기 어려운 고전적인 난제이기도 하다.

전염력이 강한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과 밀접 접촉자를 초기에 신속히 파악해 이들을 격리하는 것은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한 핵심 조처다. 이를 위해 국토교통부는 3월26일 개인의 위치정보와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 28개 기관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의 ‘코로나19 역학조사 지원시스템’ 운영을 시작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확진자 동선 파악에 걸리는 시간이 24시간에서 10분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또 서울 이태원 클럽발 확진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확진자 동선 파악과 밀접 접촉자를 알아내기 위해 휴대전화 기지국 정보, 신용카드, 폐회로텔레비전(CCTV) 등 데이터·영상 정보를 활용해 전방위적으로 추적했다. 정부는 6월 초부터 클럽 등 유흥시설 출입에 큐아르(QR)코드를 활용한 ‘전자출입명부’를 활용할 방침도 밝혔다.

이러한 정부 조처에 ‘빅브러더 정부의 도래’라며 감시국가를 우려하는 반응이 나왔다. 앞서 3월9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정부가 확진환자의 이동경로를 알리는 과정에서 내밀한 사생활 정보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노출되는 사례가 발생하는 데 우려를 표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확진자 개인을 특정하지 않고 시간별로 방문 장소만 공개하고, 확진자의 내밀한 사생활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5월26일에는 유흥시설 등 집합제한명령 대상 시설에 QR코드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이 “방역을 명분으로 정부가 갈수록 더 완벽한 감시통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정부 방침 철회를 촉구했다.

“프라이버시 희생하며 방역 잘한 나라”

‘공공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사생활 침해’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에서 2001년 9·11 테러 이후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반테러 법안이 확대된 것처럼 팬데믹 이후에도 ‘감시국가’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와 관련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놉티콘’(코로나+파놉티콘, 정보기술을 통해 개인 사생활을 감시하고 침해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뜻함)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을 정도다. 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4월23일 발표한 ‘코로나19와 인권’ 정책보고서에서 국가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우려했다. “확진자의 동선을 추적하기 위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같은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남용될 가능성이 높다. 또 이러한 기술이 위기 이후에도 표준화될 수 있다. 적절한 보호장치가 없으면 강력한 기술은 차별과 개인 사생활 침해를 유발할 수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확진자 동선을 추적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한국과 중국처럼 휴대전화, CCTV, 신용카드 사용내역 등을 총동원해 확진자의 위치정보를 추적하는 방식이다. 이는 ‘정부가 빅브러더가 된다’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반면 프라이버시 보호를 중시하는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블루투스 방식을 선호한다. 블루투스 방식은 휴대전화 블루투스를 켠 사람들이 서로 일정 거리 이내로 들어가면 각 휴대전화의 고유한 코드가 주변 휴대전화에 모두 저장된다. 이 방식은 중앙집중형과 분산형으로 나뉜다. 중앙집중형은 ㄱ이라는 사람이 확진자가 되면, 정부에서 ㄱ의 블루투스 수신내역을 파악해 ㄱ과 접촉한 이들에게 확진자 접촉 사실을 알려주고 자가격리 등 후속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분산형은 정부에서 ㄱ의 휴대전화 고유코드를 일반에 공지하고, ㄱ이 확진자이니 각자 휴대전화에서 ㄱ의 고유코드가 수신된 적이 있는지 확인하도록하는 방식이다. 중앙집중형과 분산형의 차이는 정부가 중앙에서 확진자와의 접촉 사실을 확인해서 접촉자들에게 알려주느냐, 개인이 각자 확진자와의 접촉 사실을 확인하느냐는 점이다. 분산형은 구글과 애플이 함께 개발해 5월 출시한 코로나 추적 앱에 적용됐다. 위치정보 추적 방식보다는 블루투스 중앙집중형이, 중앙집중형보다는 분산형이 개인이 자유를 더 보장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방역 앱을 다운받지 않거나 블루투스를 꺼놓은 경우 등 개인의 자발적 협조가 부족하면 실효성이 낮아질 수 있다. 김승주 고려대 교수(정보보호대학원)는 “한국은 프라이버시를 희생하면서 방역을 잘한 나라로 인식될 수 있고, 서구는 프라이버시는 보호하지만 방역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향후 방역이라는 공익과 프라이버시라는 사익 충돌에 대한 절충은 많은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에 기본권 제한 명시해야

자유와 안전, 프라이버시와 건강권은 양자택일 문제인가.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역사학)는 3월20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사람들에게 프라이버시와 건강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문제의 뿌리다. 우리는 프라이버시와 건강을 함께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해야 한다”고 적었다.

‘팬데믹 정부’는 일상생활에 부적합함을 인식하며 큰정부의 권한남용을 견제해야 한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공중보건이라는 공적 가치를 위해 프라이버시라는 기본권이 제한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국제인권법상 통신 감시의 원칙인 필수성(necessary)과 비례성(proportionate)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큰정부가 되면서 권한이 커진 만큼 국가인권위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의 국가기관들이 정부의 권한 오남용을 철저히 견제해야 한다”고 했다.

조소영 부산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기본권 제한을 위한 법규정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역활동의 근거가 되는) 감염병예방법과 시행령 규정은 추상적인 내용이다. 사생활에 제한을 가하는 수단으로서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근거 규정이 구체적이어야 한다. 동선 공개 여부 결정 주체, 공개 대상 정보, 공개 범위, 정보 보관 기간과 폐기 절차, 정보 처리와 이의 제기 절차, 배상 문제까지 모두 명확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을 법률에서 (하부 규정에) 위임한다는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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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뉴노멀
1부 코로나 뉴노멀

2장_큰 국가의 귀환
1. 코로나 이후 '큰 국가'가 돌아왔다
2. 국가가 이끄는 시장의 막대한 힘, 막막한 과제
3. 자유 vs 안전 논쟁을 넘어 '코로놉티콘'을 막아라
4. K의료는 없다... 공공의료 복원 시작할 때
5. 도시가 건강해지면 시민도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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