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봄, 광주는 철저히 고립된 도시였다. 거리엔 눈부신 5월의 햇살 대신 총탄이 쏟아졌다. “계엄 해제” “민주 회복”을 외치던 시민들은 쿠데타 반란군의 총칼에 피와 뇌수를 쏟으며 죽어갔다. ‘애국가’를 신호로 군인들의 본격 집단발포가 시작된 21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시인 김준태는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라고 절규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꼭 4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96년 8월, 반란군 수괴 전두환은 내란, 군사반란 등 13가지 죄목으로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이듬해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감형이 확정됐다. 앞서 1995년 대한민국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를 폈지만, 역사의 물줄기를 거스르지 못했다.
지금 정의는 완전히 실현됐는가. 쿠데타 주범들과 비호 세력은 여전히 거리를 활보한다. 학살자 전두환은 ‘거짓말 회고록’을 쓴 혐의(사자 명예훼손)로 재판을 받으면서도 당당하다. 그것도 광주에서. 일부 극우세력과 수구 매체는 가짜뉴스를 퍼뜨리거나 진실을 가리고 비틀기 바쁘다. 올바른 ‘기억’과 ‘기록’이 새삼 중요한 이유다.
‘오월 광주’ 40돌을 맞아 그 기록과 정신을 되살리는 책이 쏟아지고 있다. 회고록, 평전, 소설, 학술서까지 다양하다. <한겨레21>은 그중 주목할 만한 책을 추려 ‘5개의 시선’으로 ‘오월 광주’를 재구성했다.
첫 번째 시선, 호텔 창밖의 섬광탄
5월18일 비상계엄 확대 소식이 발표됐다. 김대중과 고은이 내란음모죄로 체포됐고, (…) 금남로는 계엄군이 꽉 메우고 있었다. (…) 장교복을 입은 중령이 호텔 프런트에 와서 화장실 위치를 물었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장교에게 물었다. “발포 명령이 내려졌습니까?” 중령은 화장지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 “네, 발포 명령은 이미 내려져 있습니다.”
5월22일 피 묻은 옷을 갈아입으려면 집으로 가야 했다. (…) 계엄군의 진압봉에 맞은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 도망치다 등짝을 맞고, 정면으로 대들다 머리통이 깨지고, 잡혀서 불구가 되도록 온몸을 구타당하며 지낸 나흘이었다.
5월27일 새벽 3시40분쯤 되었을까? 호텔 건너편 전일빌딩 쪽을 보니, 광주우체국 방향에서 섬광이 연속해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공중에서 날아가는 탄환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 기관총 소리였다. 카빈총이나 M16과는 명백히 다른 둔중하고 묵직한 소리.
이 광경을 목격한 이는 당시 광주 금남로1가 광주관광호텔 영업과장이던 홍성표씨다. 그가 40년 동안 가슴속에 묻어놨던 기억을 처음 공개했다. <호텔리어의 오월 노래: 광주관광호텔에서 본 5·18>(빨간소금 펴냄). 홍씨가 일지와 메모를 토대로 구술하고, 안길정 5·18기념재단 자문위원이 집필했다.
홍성표의 증언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공간과 높이에서 바라본 현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21일 오후 1시 집단발포와 저격수들의 조준사격, 27일 새벽 전일빌딩을 향한 헬기 사격은 오직 그만이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광주관광호텔에선 도청 앞 광장과 금남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지은이는 “내 또래의 광주 사람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때 그 기억을 묻어두고 살아왔다”며 “진실을 밝히는 의미 있는 증언들이 더욱 풍성하게 나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두 번째 시선, 푸른 눈 이방인이 꺼내 보인 기억
5월21일 버스가 가까이 오자 군중은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거리의 모든 사람들은 버스에 탄 젊은이들 못지않게 열광하고 있었다. “어제 오후부터 상황이 변했어요. 사람들이 뭉치기 시작했거든요. 버스와 택시 기사들이 맨 앞장을 서서 차로 방어막을 만들고 사람들을 보호하고 군용차들을 밀어내기도 했어요.” 젊은 여자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 나는 그들의 집단행동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지난 27년간 한국의 군·경찰·정보기관의 유일한 적은 북한이었다. ‘북한’의 위협이 있을 경우 거리낌 없이 무기를 들 사람들이 지금은 한국 군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총을 든 것이다.
5월24일 “이 나이 든 여성은 어떻게 죽었습니까?” 우리를 안내한 의대생에게 물었다. “군인들이 헬리콥터에서 사격을 했어요. 이 할머니 신원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어요.” 관 속의 할머니는 말없이 누워 있었다. (…) 이 할머니도 우체국 앞의 그 할머니처럼 나에게 똑같은 부탁을 했을 것이다. 우리를 증언해달라고.
<5·18 푸른 눈의 증인>(한림출판 펴냄)은 미국 평화봉사단원이던 폴 코트라이트가 1979~81년 광주 인근 나주의 나환자정착촌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목격한 역사적 순간을 40년 만에 풀어놓은 회고록이다. 코트라이트는 “당시의 내 노트와 편지, 사진 등 자료들을 꺼내 이 책을 쓰기까지 40년이 걸린 이유는 광주를 기억한다는 일 자체가 너무나 큰 고통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내 이야기가 당시 광주와 그 인근에 살았던 분들에게 치유의 효과가 있기를(…), 서구인들이 한국 현대사와 한-미 관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 사건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세 번째 시선, 진압 일선에서 발포 거부
5월17일 자정을 전후해 전남대와 조선대에 공수부대 2개 대대가 배치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 마지막 학생 시위는 하루 전인 16일 밤 경찰의 보호 아래 횃불 행진으로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그런데 밤중에 기습적으로 공수부대가 배치된 것이다.
5월19일 계엄군의 진압작전은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한 시위 진압이라기보다 ‘대간첩작전’을 연상시켰다. 무자비하고 강력했다. 아무리 국가의 명령이라지만 납득하기 힘들었다. 지금껏 국가의 명령에 충성하는 길이 공직자로서 임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곤혹스러웠다. (…)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순간 안병하 국장은 한 가지 원칙을 마음속에 분명히 세웠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경찰의 본분을 끝까지 잃지 않아야 한다.’
<안병하 평전>(정한책방 펴냄)은 언론인 출신인 이재의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이 경찰의 시각에서 5·18을 조명한다. 지은이는 광주항쟁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최초의 출판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풀빛, 1985)의 집필자이기도 하다. 당시 광주·전남 치안 총책임자인 안병하 전라남도 경찰국장이 경찰의 모든 무기를 ‘탈취 방지’를 이유로 군부대로 옮기도록 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계엄군의 발포 압박에 불응하려, 먼저 무장해제를 해버린 것이다. 앞서 안병하는 ‘질서 유지’를 조건으로 대학생들의 횃불 시위를 허가했고, 시민과 군경의 충돌이 격화된 상황에선 ‘방어적 진압’을 강조하며 계엄군 쪽과 불협화음을 빚었다.
신군부의 ‘도청 진압작전’을 하루 앞둔 26일, 안병하는 ‘직무 유기’ 혐의로 체포돼, 서울 합동수사본부에서 혹독한 조사를 받은 뒤 옷을 벗었다. 이후 8년간 고문 후유증으로 외롭게 투병 생활을 하다가 1988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그가 병상에서 당시 상황과 경찰 행동 지침을 술회한 ‘비망록’은 소중한 사료로 남았다. 2002년 노무현 정부는 안병하를 ‘민주화운동 관련 유공자’로 인정했다. 지은이는 “이 글을 쓰는 내내 주인공 안병하와 긴장 관계였다”며 “자칫 영웅 서사가 빠지기 쉬운 오류와 매너리즘을 극복하려 애썼다”고 밝혔다.
네 번째 시선, 도청의 고요한 밤하늘
5월26일 밤~27일 새벽 “계엄군이 안 왔으면 좋겠어. 이렇게 평화롭게 밤을 보냈으면 싶어.” 상우 형이 말했다. “형은 안 무서워요? 나는 솔직히 무서워요.” 내가 물었다. “나도 무서워. 아주 많이 무서워. 그래도 여기에 있어야 하니까. 백기를 들고 살아서 계엄군을 맞는 것과 총을 들고 피에 젖은 깃발을 들고 계엄군을 맞이하는 건 엄연히 다르지. (…) 그나저나 너는 왜 여기에 있냐? 집에 가면 되잖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들불(야학) 식구들이 모두 여기에 있는데 어디를 가요?”
최후의 살육극을 앞둔 밤, 시민군 157명이 남은 전남도청은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다. 그들은 왜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남았을까? 작가 정도상의 장편소설 <꽃잎처럼>(다산책방 펴냄)은 26일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숨 막히는 10시간을 한 시간 단위로 세밀화처럼 재현한다. 주인공인 스무 살 청년 명수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은 실재했거나 생존해 있는 사람이다.
명수는 ‘들불야학’에서 첫사랑 희순을 만나고 세상에도 눈을 뜬다. 그러던 중 “박정희가 심복 부하의 손에 갑자기 죽자 일이 이상하게 꼬이며 돌아가”고, 자연스레 시민군 대변인 윤상우(윤상원)의 경호원을 자임하며 역사의 한복판에 뛰어들게 된다. 지은이는 생존자들을 직접 취재해 구술을 받고, 돌아간 분들은 여러 자료와 공식 기록을 참조했다.
다섯 번째 시선, 경계의 시간 속 해방공동체
5월20일 시민들은 죽음과 국가폭력에 대한 공포에서 사실상 해방됐고, 시위는 다소 들뜬 ‘축제’처럼 변했다. (…) 저녁으로 접어들 무렵 택시와 버스·트럭 기사들의 차량 시위는 운집해 있던 시민들에게 절정의 감정에 가까운 집단적 환희를 촉발했다.
5월21일 집단발포 이후 ‘치유와 나눔의 공동체’도 항쟁 기간 유지됐다. 광주의 모든 의사와 간호사들이 부족한 의료장비와 약품을 나눠 사용했다. 성판매 여성과 접대부, 노인들까지 헌혈에 합류해 치료용 피가 남아돌 지경이 됐다. 부상자를 위한 사랑의 모금함이 주요 교차로들에 등장했고 (…) 이 치유공동체는 장례공동체와 함께 ‘해방광주’ 시기의 재난 커뮤니타스를 꽃피웠다.
5월22일 이후 광주 커뮤니타스에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민중의 자기통치’ 측면이 부각된 점이다. 이른바 ‘해방광주’ 혹은 ‘광주 코뮌’은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유일무이한 집합적 자치 경험”이었다.
종교사회학자 강인철의 <5·18 광주 커뮤니타스>(사람의무늬 펴냄)는 ‘리미널리티’와 ‘커뮤니타스’ 개념을 본격 적용한 5·18 연구서다. ‘리미널리티’(경계·문턱)는 일상과 비상 사이에서 ‘이도 저도 아닌 상태’를 말한다. “무엇인가 일어날 수 있는 ‘마술적 시간’, 가능성이나 잠재적 힘으로 가득 차 있으며 실험과 유희가 넘쳐흐르는” 시공간이다. 커뮤니타스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상호관계로, 일상적 생활공동체인 ‘커뮤니티’와 구별된다.
지은이는 광주항쟁의 마지막 국면에서 ‘생사를 초월한 네 겹의 연대’가 구축됐다고 본다. ①죽을 자들(최후항전 참여자)의 연대 ②죽을 자들과 살 자(어쩔 수 없이 도청을 떠난 이)들의 연대 ③죽은 자들과 죽을 자들의 연대 ④죽을 자들과 산 자들(국내외 양심적 지지자와 후세대)의 연대다. 앞의 두 가지가 ‘항쟁-재난의 커뮤니타스’, 뒤의 두 가지가 ‘5월 공동체’다.
작가 정찬주의 장편소설 <광주 아리랑 1·2>(다연 펴냄)도 ‘광주 공동체’ 속 평범한 사람들을 재조명한다. “메타포(문학적 은유)를 버리고 콜로세움의 검투사처럼 정면으로” 다룬 ‘다큐소설’이다. 주방장, 상인, 운전사, 페인트공, 선반공, 예비군 소대장, 영업사원, 재수생, 구두닦이, 농사꾼 등 장삼이사 모두가 소설의 주인공이자 역사의 주연이다.
또 다른 시선들
한국현대사 연구자 노영기가 쓴 <그들의 5·18>(푸른역사 펴냄)은 박정희 유신체제가 무너진 1979년 ‘10·26 사태’와 ‘12·12 쿠데타’ 이후 이듬해 10월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하기까지 ‘정치군인들은 어떻게 움직였나’(부제)를 보여준다. 지은이는 보안사령부 기록을 포함해 방대한 군 자료를 치밀하게 분석해, 신군부의 음모와 반역을 폭로한다. 그들은 5·18을 정권 탈취의 결정적 빌미로 삼았다.
<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 5·18 광주혈사>(두레 펴냄)는 독립기념관장을 한 언론인 김삼웅이 광주항쟁의 배경과 과정, 의미와 과제를 살핀다. 지은이는 5·18의 특징을, 목표가 뚜렷한 무장봉기이자 시민혁명, 고도의 도덕성을 유지한 시민공동체, 5공 정권의 비정통성 확인, 민족사와 민주·통일 운동의 혈맥 등 10가지로 정리했다.
<제니의 다락방>(하늘마음 펴냄)은 미국인 제니퍼 헌틀리가 소녀 시절 경험한 5·18을 어린이 눈높이에서 쓴 동화책이다. 광주기독병원 원목이던 찰스 베츠 헌틀리(한국명 허철선) 목사가 아버지다. 제니는 부모님이 숨겨준 시위 대학생들에게 물과 음식을 가져다주었는데 “그것은 꼭 새끼 고양이 돌보기랑 비슷했다”. 지하방에는 스무 명 넘는 사람이 불도 켜지 못한 채 숨을 죽였는데….
박남선의 <오월 그날: 광주의 진실, 그날의 소리>(샘물 펴냄)는 ‘시민군 상황실장 광주상황 보고서’라는 부제가 지은이와 책의 내용을 간명하게 말해준다. 1980년 당시 20대 청년으로 무장저항을 주도한 지은이가 광주항쟁의 과정과 재판 기록을 꼼꼼하게 정리했다. 1988년에 초판이 나왔고, 이번에 부록으로 ‘10일간의 기록’을 보탠 개정증보판을 선보였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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