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2일 지난 7년간의 파행에 대한 통렬한 보고로 ‘정상화’의 첫 문을 연 MBC 간판 시사 프로그램 《PD수첩》 제1136회 ‘MBC 몰락 7년의 기록’을 보며, 어떤 나쁜 일도 끝나는 날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 7년간 공영방송 MBC의 변질과 추락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PD수첩》이었다. 이 프로의 백미는 2010년 김재철 사장 취임 즈음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문화방송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이라는 비밀 문건이 있었고, 그 문건에 나온 ‘전략’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MBC 주요 프로그램의 폐지, 진행자와 담당 PD의 퇴출, 작가 해고 등 일련의 ‘정상화’가 진행됐음이 폭로된 장면이었다. 1987년 이래 수립됐다는 한국의 절차적 민주화가 얼마나 취약하고, 한국의 극우세력이 언론자유 같은 기본권을 부정하는 것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지 새삼 일깨우기도 했다.
초유의 노골적 언론 공작어쩌다 한국 언론에 이런 참사가 일어났을까. 5공화국 초기 언론 대탄압 이후 노태우-김영삼-노무현 정권을 거치는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공영방송은 바뀐 정권에 따라 성향이 다른 수뇌부가 구성돼 취재·보도·편성 부문에서 크고 작은 부침을 겪었다. 그래도 1987년 이래 암묵적으로 합의돼온 민주적 기본 질서를 본격적으로 거스르면서 헌법으로 보장되는 언론자유의 기반 자체를 위협하고 말살하는 대규모의 노골적인 언론 공작은 차마 감행된 적이 없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기에 존립 위협을 느낀 반민주 수구세력의 조직적 반격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MBC 사태 같은 무자비한 인적 청산을 위주로 하는 초법적이고 비인간적인 쿠데타적 폭거를 대낮에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그 발상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국가정보원 비밀 문건의 제목이 말해주듯 수구세력이 이런 반헌법적 폭거를 ‘정상화’ 이름으로 호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그들의 정신 속에 액면 그대로 ‘정상화’는 아니더라도 정권이 좌에서 우로 바뀌면 이런 식의 ‘과거 청산’과 자기 세력 심기 정도는 당연한 일 아니냐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MBC나 KBS를 지배해온 반민주 언론 적폐 세력이 지금 보이는 저항과 버티기의 행태에서 이들은 사태의 본질을 민주-반민주, 언론자유-언론탄압의 문제가 아니라 좌-우의 권력투쟁에 의한 언론쟁탈전으로 확신하거나 적어도 강변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자기들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언론자유를 내팽개치며 권력에 아부하는 ‘쓰레기 언론인’이 아니라, 마치 권력투쟁에서 일시적으로 패배한 보수 투사인 양하는 모습이다.
‘고문기술자’의 한마디이런 기막힌 현상은 지난봄 촛불집회에 대항하는 태극기집회 등에서 본 적 있어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이성과 반이성, 양심과 비양심, 민주와 반민주 등 옳고 그름을 가리는 갈등을 서로 다른 정치세력이나 이익집단 간의 밥그릇 싸움이나 세력 다툼으로 환원하는 사고와 그에 기반한 양비론적 시각이 만연하다는 것은 지난 두 정권에서 우리 사회를 좀먹은 가장 위험하고도 야만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억울하고 원통하면 너희가 권력을 잡은 후에 나를 잡아서 고문하고 마음껏 복수하든가.” 예전에 나를 야만적으로 고문하고 취조했던 유명한 고문기술자가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그런 ‘인간에 대한 무례’가 더 이상 없는 곳임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세상은 여전히, 아니 더욱더 그런 ‘이근안들’이 버젓이 사람 탈을 쓰고 살아가는 곳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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