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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왜 거부를?

군대 다녀온 김형수·이상씨가 예비군 거부하는 이유
등록 2016-11-11 20:36 수정 2020-05-02 19:28
정용일 기자

정용일 기자

고발과 재판 그리고 벌금, 어쩌면 구속. 최소한 8년, 예비군 소집 대상이 되는 기간에 끝없이 반복될 일이다. 어쩌면 그 이상으로 계속될지 모른다. 입대를 거부한 병역거부자는 1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면 ‘어쨌든’ 사법절차가 끝난다. 1년6개월을 ‘맞춤 형량’으로 부르는 이유는 예비군 소집 대상에서 제외되는 최저선의 실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비군 거부는 처음과 끝이 없는 무간지옥으로 들어가는 선택이다. 향토예비군설치법 제15조 8항은 이렇다. “예비군 훈련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받지 아니한 자 등은 1년 이하의 징역, 2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태료에 처한다.” 이 조항에 근거해 수십·수백 번 소집 통지, 훈련 거부, 불참 고발, 벌금 부과 그리고 재판이 반복된다.

군대 갔다왔는데 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면서 수감될 각오도 했죠. 근데 (지금 겪는) 시간 자체가 감옥 같아요. (경찰서에서) 계속 오라 하고, (고발) 통지서도 계속 날아오고. ‘차라리 실형 받고 끝나면 속 편하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물론 감옥생활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요.”

예비군 거부 3년째, 김형수(27)씨가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다섯 번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조사받고 나온 날,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고발건이 쌓이고 쌓여서 다음 고발건을 조사받으러 오라는 통고다. “60만원 벌 때 30만원, 120만원 벌 때 50만원 벌금이 나왔고, 지금은 150만원 버는데 100만원 벌금이 나왔어요.”

서울 녹색당 상근자로 일하는 그는 “30만원 벌금 나왔을 때는 진짜 감옥 가고 싶었어요. (하루 일당을 10만원씩 쳐서) 사흘만 있으면 되니까”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이상(26)씨가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당연히 (벌금이 나오면) 갔다와야지 생각하고 있어요.” 그도 올해 5월15일 병역거부자의 날에 즈음해 예비군 거부 선언을 했다. 선언문의 일부다.

“현역 병역거부와는 다른, 예비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이야기들을 접하며, 저는 절망했습니다. 거부에 대한 실형과 벌금은 그대로 적용되면서, 해당 훈련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월되는 상황.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로, 남은 나의 삶이 휘둘려도 괜찮을까? 그러면 나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을까? 저는 예비군 훈련을 가면 나로 존재할 수 없기에 자유로울 수 없고, 예비군 훈련을 가지 않으면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과 함께 벌금과 실형이라는 삶의 족쇄가 채워지기에 또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씨는 지난해까지 3년차 예비군 동원훈련을 마쳤다. 해야 할 의무는 작아졌지만, 자괴감은 커져갔다. 결국 그는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지향과 가치를 스스로 포기한 것 같은 마음에, 일상에서의 자존감은 무너져내렸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불평등의 구조와 문화를 유지하고 강화하고 재생산하는 (군사) 조직의 행위에 가담하는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예비군 4년차, 나는 병역을 거부합니다.”

김형수씨도 저항했다. 전쟁 준비에 가담하기 싫다는 내면의 소리에 저항했다. 6주간 군사훈련만 마치면 상근예비역으로 일하게 될 테니까…. 그렇게 2011년 11월22일 군대에 갔다. “총을 잘 쏘지도 못하고, 잘 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고 하지만, 사격에 능하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세금을 좀먹는 존재다’라고 복명복창을 시키는 훈련”을 감내했다. 2013년 8월 전역 때까지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한 그는 “군대생활은 편했지만 누군가를 해치는 기술을 잘하도록 요구받는 것이 괴로웠습니다”라고 돌이켰다. 고민은 제대 뒤 깊어졌다.

“선교단체에서 만난 형이 예비군 거부 선언을 했어요. 그 형의 글을 보면서 ‘나는 내가 믿는 신보다 국가체계를 무서워하는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입대해서 전쟁이 나면 동원 대상이 된다는 것에 동의한 것을 후회했어요. 예비군마저 하면 국가의 입장에서 ‘너는 군대도 갔다오고 예비군도 했는데 왜 이제 와서 반대하니?’가 되잖아요. 더 늦어지기 전에 예비군 거부해서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예수의 길, 새로운 삶
김형수(왼쪽)씨는 개신교 신자로 평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이상씨는 군대가 조장하는 불평등 구조에 저항하기 위해 예비군 거부를 선택했다. 정용일 기자

김형수(왼쪽)씨는 개신교 신자로 평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이상씨는 군대가 조장하는 불평등 구조에 저항하기 위해 예비군 거부를 선택했다. 정용일 기자

반복되는 처벌 속으로 걸어 들어간 이유는 지금 여기서 샬롬의 세계를 살아가기 위함이다. 김형수씨는 지난 10월 향토예비군설치법 위반 사건의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그가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바탕으로 그와 나눈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렇다.

“샬롬은 모든 깨어진 관계가 충분하게 회복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평화로 번역되지만 더 적극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입니다. 공평과 정의를 바탕으로 관계가 회복된 상태죠. 원수를 사랑하는 태도로 표현되고,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뛰어노는 이미지로 그려집니다. 샬롬의 세계를 일구는 최소한의 방편이 전쟁 준비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병역거부입니다.”

이상씨는 입대 전엔 병역거부를 잘 몰랐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이 종교적 이유로 하는 것 정도로 알았다”고 말했다. 별다른 고민 없이 군대에 가서 어쩌면 무난한 생활을 했지만, 제대 이후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2012년 6월9일 전역하고 떠난 해외여행이 계기였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혼자 시간을 많이 보냈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경험을 했어요.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도 되겠다 싶었고, 돌아와서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죠. 자기주도적, 주체적으로 사는 예술가와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가치와 지향이 저에게 생겼어요.”

2013년 여행 스타트업 ‘아띠인력거’에서 일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에서 캠페인 담당으로 일했다. 지난해 청년공동체를 만들려고 제주 서귀포시 성산에서 몇 달을 살았고, 올해 몇 달을 제주 강정 지킴이로 지냈다.

그는 “질문할 줄 알고, 거부할 줄 아는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꿈이 생겼다. “그들과의 만남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생명, 평화, 인권, 전쟁 없는 세상에 대한 장막을 걷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생명이 우선되고 평화가 실현되며 인권이 보장되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게 되었고, 그 꿈의 방향을 좇아 걸음을 옮기며 살아가려 애쓰고 있습니다.”

문화작업자로 “길에서 소소한 퍼포먼스를 해온” 그는 인권연극제에서 선보일 병역거부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12월에는 거리에서 퍼포먼스도 한다.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발에 밧줄을 묶고 행진해요. 버려진 병에 꽃을 꽂고요. 누구는 지하철에서 아이한테 무릎을 꿇고 꽃을 주고…. 행위는 자율에 맡기는 거죠. 군대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담으려고요.”

예비군 계급 문제도 알리고 싶다

지난 10월21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김형수씨의 첫 공판이 열렸다. 광주지방법원에서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직후라 담당판사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했다. 다음 공판 기일도 잡지 않았다. 예비군 거부자 처벌은 반복될 뿐 아니라 거듭될수록 처벌이 강해진다. 벌금형은 점점 높아지고 구속될 위험도 있다.

그가 약식재판 대신 정식재판을 청구한 것은 예비군 거부를 공론화하고 싶어서다. 2007년 울산지방법원에서 향토예비군설치법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지만 2011년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김형수씨는 상근예비역으로 동사무소 예비군 대대에서 일했다. 그만큼 예비군 제도를 잘 알고, 그 문제를 알리고 싶다.

“정규직 남성에게 2박3일 동원훈련은 휴식일 수 있어요. 하지만 영업직은 휴대전화를 못 쓰니까 업무를 못하고, 일용직은 일당을 날리게 되죠. 이런 계급적 문제도 있지만, 예비군복을 입으면 남자들이 갑자기 이상해지기도 하잖아요. 예비군 안보교육 자료도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비군 중대장들도 쉽게 말하듯, 예비군이 투입될 정도면 전쟁은 이미 끝난 거잖아요. 근데도 예비군 제도가 유지돼요. 군의 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거죠. 군축 관점에서 예비군이 축소돼야죠. 예비군 거부자의 권리가 최저선 같은 거니까, 우리 문제가 해결되면 이런 것도 함께 좋아지겠죠.”

양심에 따른 예비군 거부를 계속하면, 20대 중·후반의 두 청년은 최소한 30대 중반까지 벌금에 고통받고 재판에 시달려야 한다. 김형수씨는 토로했다. “지난해 말부터 다섯 번 정도 (경찰서에) 갔지만, 내년이면 한 달에 몇 번, 일주일에 몇 번씩 가야겠죠. 정식재판을 청구하면 최소한 반나절은 날아가요. 시간을 끝없이 저당 잡혀야 하죠. 일상적인 삶을 기획하거나 전망을 계획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요.”

문화작업을 하는 이상씨도 마찬가지다. “일용노동을 하거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너무 불안정해서 정기적 일자리를 알아볼까 했어요. 근데 안 되겠더라고요. 국제개발 쪽으로 1년씩 해외에 나가서 일하는 데 관심이 있어요. 역시 재판을 받으면 못하잖아요.” 그는 벌금을 미납한 ‘전과자’가 되면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던 해외여행도 포기해야 한다.

11월24일, 결정적 하루?

이들은 예비군 거부를 함께할 이들을 기다린다. 11월23일, 병역거부 운동단체 ‘전쟁없는세상’과 함께 기자회견을 한다. 김형수씨는 “병역법 제88조 1항에 대한 헌재 결정이 11월24일 나올지 모른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병역거부자 처벌을 명시한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 예비군 거부자 처벌도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10년을 좌우할 결정적 하루가 될까.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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