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간50분 가운데 27분9초.
지난 10월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를 대상으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복지위)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유전자변형식품(GMO)이 언급된 시간이다.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소속 의원 5명이 짧게는 2분, 길게는 10분 가까이 GMO에 대해 식약처에 질문을 던졌다. 여야 의원들의 집중적인 질의를 통해 GMO완전표시제법(식품위생법 개정안)의 쟁점이 자연스레 드러났다. 그에 대한 4개 원내정당의 서로 다른 입장도 분명해졌다. 이날 국감 현장은 10월31일부터 치열하게 전개될 복지위 법안 심사를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과도 같았다.
새누리당이 “안전하다” 불붙여오전 10시11분 국회 본청 601호에서 시작된 식약처 대상 국감은, 20일 동안 진행된 복지위 국감의 하이라이트였다. 의원들은 국민이 먹거리와 약품의 안전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최대 현안인 한미약품의 폐암 신약 올리타정 부작용의 늑장 보고, 가습기살균제 성분 함유 치약 뒷북 대처를 질타하는 여야 의원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두 옥타브 높았다.
그런 의원들을 방청석에서 지켜보는 보좌진은 좌불안석이었다. 국감 준비로 잠을 못 자 초췌한 얼굴의 보좌관들은 미리 작성된 질의서대로 의원들이 제대로 질문하는지 예민하게 살폈다. 방청석에서 질의응답을 받아쓰는 기자들도 의원이나 식약처가 말실수를 하지 않는지 더듬이를 세웠다.
가장 긴장한 기색의 이들은 피감기관인 식약처 공무원이었다. 증인석에 있는 손문기 처장, 유무영 식약처 차장, 손여원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장 뒤로 줄줄이 앉은 국장, 과장들은 꼼짝도 않고 의원들의 질의에 집중했다. 그러다 자기 국·과와 관련된 질의가 나오면 손에 든 서류나 포스트잇을 재빨리 다른 국·과장들의 ‘손에 손’을 거쳐 증인석으로 전달했다. 식약처장의 답변을 도우려는 행동이었다.
전달 경로는 체계적이었다. 서류나 포스트잇의 1차 도착지는, 손 처장 바로 뒷자리에 앉은 기획재정담당관이었다. 식약처에서 ‘총무’ 역할을 하는 그는 재빨리 눈으로 서류를 파악한 뒤 오른쪽에 앉은 사무관에게 전달했다. 사무관은 곧바로 일어서 바로 앞에 앉은 유무영 차장에게 서류를 전달했고, 유 차장은 이를 손 처장의 자리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국·과장 손에 없는 자료들은 국감장 밖에서 공수됐다. 식약처 사무관·주무관 수십 명이 과별로 복도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리가 턱없이 부족해 일부는 서 있거나 더러는 그냥 바닥에 앉았다. 그들은 복도의 TV와 휴대전화로 국감장 모습을 실시간 지켜보면서 필요한 추가 자료를 복사기로 바로 뽑았다.
아직 따끈한 자료에는 포스티잇으로 ‘○○ 국장님’ ‘○○ 과장님’이라고 목적지가 쓰여 있었다. 이 자료들은 2~3분에 한 번씩 국감장 안으로 배달됐다. 국감장 안에서 자료 뭉치를 전달받은 공무원은 주위를 둘러보며 ‘목적지’ 방향으로 자료를 각각 보냈다. 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앉은 그의 의자엔 ‘GATE KEEPER’(문지기)라고 쓰여 있었다.
옥상에서 걱정 나눈 김광수·윤소하이 과정이 수없이 반복되던 때였다. “식약처장님, GMO의 번역 명칭이 뭡니까?” 오후 3시40분, 김상훈 새누리당 의원이 불쑥 GMO 이야기를 꺼냈다. GMO완전표시제법을 발의한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의 공석환 정책비서는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아, GMO 나왔다.” 공 비서는 재빨리 메모지와 펜을 찾았다.
김상훈 의원 미국 FDA(식품의약국)는 GMO의 안전성에 대해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여러 학술단체에서도 GMO는 인체에 영향이 없다고 결론 내리고 있는데 한국 식약처는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십니까?
손문기 처장 저희도 같은 입장입니다. 안전성 평가가 완료된 경우 안정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김상훈 의원 금년 8월17일 노벨상 수상자 100명, 그리고 여러 과학자와 시민들이 환경운동단체에 ‘GMO 반대 운동을 중단해달라’ 이렇게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GMO 유해성, 안전성에 대해서 식약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죠?
손문기 처장 뭐, 안전성 논란은 계속 오랫동안 지속돼왔던 부분인 거 같습니다.
평소 GMO에 별 관심을 두지 않은 김 의원이 관련 질의를 하기로 결정한 건 국감 하루 전날이었다. “야당 의원들이 법안도 몇 개 냈고 11월부터 (복지위에서) 안건 심의가 시작되면 이야기가 나올 테니 사전에 내용을 숙지하는 게 좋겠습니다.” 보좌진의 조언을 받아들인 김 의원은 GMO 안전성의 근거, 국내 GMO 작물 개발·연구 현황을 하루 만에 파악해 논쟁에 붙을 붙인 거였다.
곧이어 질의 순서가 된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도 GMO 문제를 피하지 않았다.
김광수 의원 (GMO 안전성에 대한) 입장이 뭐예요?
손문기 처장 그러니까 식품 안전성이 평가된 유전자 GMO는 안전하다라는 게 저희 입장입니다.
김광수 의원 GMO 안전성 논란과 관련해서 일부 학자들은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여자아이들의 초경 연령이 급속히 낮아지는 문제, 그리고 불임·난임 부부가 증가하는 문제, 또 성인병 발병률이 급속하게 높아지는 문제, 이런 문제에 대해서까지 우려를 심각하게 표하고 있습니다!
김광수 의원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졌다. 매서운 추궁을 하는 김 의원의 눈을 손 처장은 자꾸 피했다. 오래전 전북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을 지낸 김 의원은 개원 초부터 김현권·윤소하 의원과 ‘야3당 GMO 연대’를 해왔으며, 11월에 별도로 법안도 발의할 예정이다.
김 의원이 질의하는 동안 윤소하 의원도 손 처장의 답변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는 메모지에 파란 볼펜으로 ‘식약처장-안전성 평가 완료’라고 적고 연두색 형광펜까지 칠했다.
질의를 끝낸 김광수 의원이 심란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국감장을 나갔다. 윤소하 의원도 비슷한 시간 자리를 떴다. 두 의원은 본청 옥상 정원으로 올라가 잠시 바람을 쐬었다. “식약처가 너무 일방적으로 안전하다고만 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국민은 불안해하는데요.” 1~3시간씩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의원들은 자신의 질의 순서를 피해 밖에서 잠시 쉬거나 급한 일을 처리하기도 한다.
그 시각, 의원실 보좌진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국감장 바로 옆 사무실 653호의 공용 컴퓨터 앞에 앉은 윤소하 의원실의 공석환 비서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미리 준비한 질의서에서 방금 김광수 의원의 GMO 질의와 중복되는 부분을 새롭게 고치는 중이었다. 곧 윤 의원이 2차 질의를 할 순서였다. 이날 의원들에겐 세 번씩 질의할 기회가 주어졌다.
국감장 밖에서 뛰어다닌 보좌진4시간여가 흐른 저녁 8시30분, GMO 논쟁 ‘2라운드’가 시작됐다. 19대 국회부터 GMO완전표시제를 주장해온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다시 불을 지폈다.
남인순 의원 우리나라가 GMO 농산물 수입국 몇 위죠? 세계?
손문기 처장 그건 모르겠습니다. 많이 수입하는 건 알고 있습니다.
남인순 의원 아니 그걸 모르신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아까 하도 안전하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셔서 GMO에 대해 상당히 꿰고 계신가 했더니…. 저희가 2위입니다. 어떻게 GMO가 안전하다고 단정할 수 있습니까?
손문기 처장 안전성 평가를 거친 것들은요. 미국도, 유럽도 그렇고요.
남인순 의원 아니죠. 결론이 안 났기 때문에 소비자가 보고 판단할 수 있게 선택권을 주자는 겁니다.
주눅이 든 손 처장을 ‘선배’인 김승희 새누리당 의원이 거들었다. 지난 4월 총선 직전까지 식약처장이던 김 의원은 GMO 문제를 훤히 꿰고 있었다.
김승희 의원 (식약처는) 심사 후에 안전한 것만 수입 또는 시판 가능하도록 허용해주죠. 모든 GMO에 대해서 안전하다고 표현한 적은 없죠?
손문기 처장 그렇습니다.
김 의원은 GMO 안전성 이외의 쟁점인 ‘Non-GMO 표시’ 문제도 짚고 넘어갔다. 식약처가 독단적으로 행정예고해 야당 의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6개 GMO 표시 대상이 아닌 식품에 Non-GMO 표시를 해선 안 된다’는 규제 조항과 관련해, 김 의원이 선제적으로 방어 논리를 만들어주려 한 것이다.
김승희 의원 예를 들어 (수입이 허용된 6개 품목을 제외한) 감자나 고구마나 호박, 오이 이런 거에 대해서 GMO 허용한 적 있어요, 없어요?
손문기 처장 지금 없습니다.
김승희 의원 없죠. 그러면 이런 작물에 GMO-Free나 Non-GMO라고 표시하면 상대적으로 그 표시를 안 한 거는 GMO 감자나 GMO 호박으로 느껴집니까, 안 느껴집니까?
손문기 처장 그렇게 느껴지는 부분에 대한 우려가 상당히 많습니다.
김승희 의원 그렇죠. 그래서 Non-GMO나 GMO-Free (표시) 허용을 안 하는 거죠.
곧이어 질의 순서가 된 윤소하 의원도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책상 밑에 준비해둔 카놀라유(유채유) 2병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호주산 100%-Non-GMO’와 ‘캐나다산 100%-GMO’라고 커다랗게 쓰인 종이가 각각 붙여 있었다.
식약처의 새로운 규제대로라면 호주산 Non-GMO 카놀라를 원료로 쓴 카놀라유는 Non-GMO 표시를 해선 안 된다. 카놀라유 자체가 ‘제조·가공 후 단백질 또는 DNA가 잔류하지 않는’ 표시 면제 대상이라 GMO 표시는 물론 Non-GMO 표시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GMO를 GMO라 부르지 않으니 Non-GMO를 Non-GMO라 불러선 안 된다’는 이상한 논리다.
본선인 법안 심사에선 누가 이길까윤소하 의원 간단하게 이야기를 합시다. 아니, (Non-GMO 원료를) 쓴 걸 (성분표시에) 썼다고 표시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왜 못하게 합니까?
손문기 처장 과학적으로 (Non-GMO를) 안 쓴 것을 썼다고 표시해도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윤소하 의원 가장 과학적인 것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는 데 있어서 선택할 권리와 알 권리를 주는 겁니다. GMO를 썼으면 GMO를 썼다고 표시하고, Non-GMO를 썼으면 Non-GMO를 썼다고 표시하라는 거예요!
질의 시간 5분을 경과해 마이크가 꺼진 뒤에도 윤 의원은 한참 동안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밤 10시7분, 국감은 마무리됐고 여야 ‘GMO 논쟁’ 예선전도 끝났다. GMO완전표시제법이 복지위에 상정되는 10월31일부터는 본선이 시작된다. 예선전은 비겼지만 본선 결과는 알 수 없다.
서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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