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조작 기술이 처음 상용화한 것은 제약회사에서다. 제약회사에서 그 기술을 이용해 당시 단가가 비싼 당뇨병 치
료제인 인슐린 주사를 싸게 공급했을 때 우린 이런 미래를 생각할 수 없었을지 모르겠다. 찬반 논란은 항상 난치병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유전자조작 기술도 필요하다면 이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에서 시작했다. 환자가 아닌 사람이 논리적으로 궁색해지는 것은 이 지점이다. 사실 논리적으로 궁색하기보다는 논리로 도저히 설명 안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하겠다는데 누가 말릴 자격이 있는가 말이다.
그래서 제약회사는 유전자조작 기술을 통해 미생물에 원하는 유전자 조각을 집어넣고 배양해 필요한 유전자 조각을 대량생산해서 충분한 양의 약을 생산해왔다. 흔히 생약 성분이라 불리는 약이 대부분 이 기술을 사용해서 만들어진다고 알려졌다. 다른 생물체의 유전자 조각을 미생물에 집어넣어 배양하는 기술에 성공한 뒤 과학기술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미생물보다는 고등생물인 식물에도 그 기술을 써먹을 궁리를 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오늘날 유전자조작 농산물 내지는 유전자조작 종자다.
인류 식량난의 가장 큰 원인은 ‘분배’ 문제흔히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옹호하는 논리 가운데 하나는 식량난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정말 유전자조작 식물을 만들면 식량난을 해소할 수 있는가? 식량난 해소를 이야기하기 전에 식량난의 원인 분석부터 명확하게 해야 한다. 흔히들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등 환경의 영향을 탓하지만 그것을 만들어낸 게 누구인지,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에는 인색하다.
지금의 식량난을 불러일으킨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많이 지적하는 건 분배 문제다. 분배 문제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도 수차례 지적했다. FAO는 식량난을 이야기하며 종종 누가 생산하건 전세계 사람이 먹을 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이 논리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누가 생산하건’은 결국 농업을 무역 대상으로 삼아버리기 때문이다. 누구든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이 생산해서 전세계 사람이 먹는다? 농산물 무역을 통해 그것이 가능해진다. FAO는 그것을 식량권이라고 미화하곤 한다.
그러나 무역은 결국 돈의 문제이고 가난한 나라는 돈이 없어 식량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한다.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식량을 생산하고 먹을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식량권의 대안으로 나오는 식량주권이다. 스스로에게 식량 생산 기반이 만들어지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누가 생산하건’이 아니라 ‘우리가 생산해서’가 중요한 이유다.
‘우리가 생산해서’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은 지금 굶주림의 문제가 심각한 나라들이 어떤 상태인가이다. 굶주림이 심각한 나라들은 대부분 내란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안정적 상태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한들 언제 포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지역에서 농사짓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 전쟁은 흔히 전쟁무기를 팔아 돈 버는 기업에는 필수적인 것이다. 전쟁무기를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다툼이 있어도 결국 육탄전 수준이라면, 과연 어떤 전쟁이 오래 지속되겠는가. 이런 주장은 너무 이상적이라고 폄하된다. 식량난을 해소하려면 우선 평화가 가장 중요한 조건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평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건만 결국 전쟁으로 이익 얻는 자들은 이를 결코 멈출 생각이 없다.
식문화 획일화도 식량난 부른다둘째는 식문화 문제다. 식량난이 이렇게 심각해지기 전에는 모든 나라마다 민족마다 고유의 식문화가 있었다. 자신이 터 잡고 사는 땅에서 가장 잘 자라는 작물로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며 잘 살아왔다. 그러나 글로벌이란 이름하에 우리는 어떻게 되었는가? 전통적으로 곡채식을 해온 한국에서 갑자기 육류 소비가 급증하고, 사람 1명이 소비하는 육류를 생산하기 위해 사람 10명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의 식량을 소비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공부를 잘하려면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체력을 키우려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우리 속에 자리잡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서양 사람들은 고기를 먹어 체력이 좋아서 며칠을 밤새워 공부해도 끄떡없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기를 못 먹어 하루 밤새우는 일도 힘들다고 언론이나 방송에서 떠들어대던 저명한 학자들은 무얼 원했을까?
그들이 무엇을 원했든 우리는 하루라도 고기를 먹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아는 사회가 되었다. 학교 급식에 매일 고기가 올라오고, 어떻게든 고기를 먹이기 위해 값싼 수입 고기라도 사려 애쓰는 문화가 우리 속에 자리잡았다. 더 나아가 경제력이 되는 사람은 국산 고기를 먹어야 하니 축산업은 나날이 규모를 키워간다.
이쯤 되면 꼭 나오는 비판이 그럼 고기를 먹지 말라는 얘기냐, 그래도 고기를 먹였더니 체력이 좋아지긴 하더라는 이야기다. 고기를 먹지 말라는 게 아니다. 매일, 매 끼니 먹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육류 소비의 적정량이 얼마인지 고민 없이 그저 고기를 먹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화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그 부러워 마지않는 서양에서도 매일, 매 끼니 고기를 먹지 않으니 말이다.
이렇듯 식량난 문제가 다른 곳에서 발생함에도 이 문제가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대로 놓아두고 식량난만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식량난을 해소하려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부터 막아야 하고,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하고, 수입해서라도 양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결코 지속 가능한 방식이 아니다. 식량 문제는 인류 생존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100년, 200년 뒤에도 안전한 방식을 해결 방안으로 찾아야 하지, 당장 눈앞에 벌어진 문제만 해결하는 것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다.
GMO 상업화 20년 동안 식량난 해소 안 돼백보 양보하자.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인구가 늘어나면 식량이 부족해질 것이라고 종종 이야기한다. 그럼, 유전자조작 기술은 식량난 해소에 필수적 기술일까? 이 기술이 필수적이라면 지난 20년간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재배해온 나라에선 기하급수적으로 식량 생산량이 늘어났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재배해서 면적 대비 생산량이 늘었다는 보고는 어디에도 없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가장 많이 재배하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재배하기 전이나 후나 여전히 굶주리는 나라는 굶주리고, 음식물이 남아서 버리는 나라는 버린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방학이면 급식조차 없어 굶주리는 아이들이 있는데 한쪽에선 음식물 쓰레기가 연간 수십조원에 이른다. 자, 식량이 모자라는가? 아니다. 식량난은 어디까지나 분배의 문제다. FAO에서 말하듯 국가 간 생산과 무역의 문제가 아니라 한 마을, 한 도시, 한 국가, 세계, 무엇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분배의 문제다. 이 분배 문제는 돈과 상관없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식량 문제는 복지 문제이고 국가가 예산을 써서라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유전자조작 농산물로 식량난을 해결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이쯤에서 접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을 놓아두고 그 주변에서 특정 기업집단의 이익을 위한 과학기술로 해결하려는 것, 그것이 바로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본질이다.
문제의 본질이 이러하다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할까? 적어도 식량 자급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불행히도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식량 자급 노력을 그리 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그럴듯한 논리로 수입을 정당화한다. 국민이 식량주권을 이야기할 때면 여지없이 ‘식량자급률이 20% 남짓인 나라에서’로 시작하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농산물을 수입할 때면 전 국민이 누구나 싼 농산물을 살 수 있어야 한다며 값이 오르는 농산물 탓을 한다. 수입 유전자조작 농산물은 어디에 쓰일까? 주로 식용유, 간장, 각종 당류를 만드는 데 쓰인다. 이 세 가지는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해도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집에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이 세 가지가 언제부터 필수적인 음식 재료가 되었을까? 한국은 전통적으로 찌고 데치고 삶고 굽는 문화였지, 볶거나 튀기는 문화가 아니었다. 식용유 소비가 늘어난 것은 대기업이 냉동식품을 대량생산하면서다. 흔히 먹는 냉동식품은 대부분 식용유로 조리한다. 한국이 식량자급률이 낮아서 콩·옥수수·유채를 수입해야 하는 나라이고 그걸로 식용유를 만들어야 하는 나라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어쩌다 식용유를 이렇게 많이 먹게 되었는지 분석하고 그것이 바람직한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생각하는 공무원이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올리고당으로 대표되는 각종 당류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원래 조청을 먹었다. 조청이 대기업에 의해 설탕으로 바뀌고 설탕이 몸에 안 좋다고 올리고당으로 바뀌는 사이, 그래서 엄청난 양의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수입해 올리고당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단맛을 내기 위한 다른 방도는 없는지, 조청을 먹는 문화가 어쩌다 이렇게 바뀌었는지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위정자가 없다는 사실 역시 서글픈 일이다.
간장도 마찬가지다. 농촌에 가면 농민들은 누구나 콩농사를 짓지만 콩을 팔기가 만만치 않다. 콩으로 장 담그는 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콩가공식품도 마찬가지라 값싼 수입콩이 있는데 국산콩을 굳이 쓰려는 기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농민들 집집마다 장이 넘쳐나지만 그 장을 팔지도 못한다. 엄연히 법으로 금지돼 있다. 법으로 금지하기 전에 이 장을 국민이 소비할 방안을 찾아주는 사람은 없다.
유전자조작 기술 옹호하는 광고의 기술식량자급률이 낮으니 무조건 수입하는 게 당연하고 유전자조작 농산물이라도 그 나라가 수출해주는 걸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하는 공무원은 있어도, 국민이 안심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밥상에 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는 공무원은 별로 없다. 욕을 먹더라도 바뀐 식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다시 전통적인 식문화를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보다 그냥 국민이 먹고 싶다고 말하면 수입해서 주는 게 간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이 그것을 먹고 싶다고,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기업과 정부와 이른바 학자들이 집요하게 언론과 방송을 통해 세뇌했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처럼, 더 노골적으로 미국 사람처럼 사는 게 가장 선진적이라고 믿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유전자조작 종자를 파는 몬샌토, 바이엘, 듀폰 등의 기업은 인류를 위한 기업이 절대 아니다. 화학산업으로 시작한 기업들이다. 화학산업이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의 원인이란 지적을 받은 뒤 그 오명을 씻는다는 미명하에 만들어낸 게 유전자조작 종자다.
몬샌토가 유전자조작 종자를 팔면서 초창기에 친환경 종자라고 광고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 기업들은 자사의 생존을 위해 신상품을 만들었다. 신상품 매출을 높이기 위해 인류를 위한다거나, 식량난을 해소한다거나,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한다는 등 그럴싸한 광고 문구로 사람들을 현혹했다. 광고 문구가 어떻게 과학적 사실로 둔갑했는지, 그 둔갑이 어떻게 유전자조작 종자를 합리화하는 데 이용됐는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기업들의 논리가 정석처럼 믿어지고 부화뇌동하는 일이 허다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몬샌토가 글리포세이트 계열 제초제를 광고하면서 소금보다 안전하다고 썼던 문구를 우리나라의 한 교수가 언급하면서 글리포세이트 계열 제초제가 안전하다는 근거로 삼았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가장 많이 재배하는 미국의 농무성이 유전자조작 기술이 ‘총생산량’ 증대에 별 효과가 없고 ‘단위면적당 생산성’ 증대에만 효과가 있었다고 발표했음에도 여전히 몬샌토 등의 기업이 말하는 식량난 해소를 앵무새처럼 되뇌는 게 한국에서 유전자조작 기술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행태다.
과학 기술인가 상업 기술인가과학 기술은 언제든 옳다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학이 발견하는 법칙이 옳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상업적 이용 기술로 바뀌었을 때는 언제든 그에 따른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그것이 과학자들이 그토록 원하는 노벨상을 만든 노벨의 뜻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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