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목적의 유전자변형(GM)벼 세포가 국내에서 처음 정부의 인체위해성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내년 상반기에는 GM벼 세포를 원료로 쓴 화장품이 출시될 전망이다. 식품·산업·보건의료 등 용도를 통틀어 유전자변형생물체(LMO·Living Modified Organisms)가 상업화되는 사실상 첫 사례다. LMO 수입국인 한국이 생산국이 된다는 의미다. LMO는 유전자변형 기술로 만들어진 생물체를 일컫는 말로 유전자변형식품(GMO)보다 넓은 의미로 쓰인다. 땅에 심은 유전자변형 옥수수가 LMO라면, 이를 가공한 옥수수통조림은 GMO가 된다.
생산 신청 처음, 위해성 심사 통과도 처음‘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송기호 변호사가 지난 12월5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에서 받은 ‘유전자변형생물체 인체위해성 심사결과 통보서’를 보면, 넉 달여 전인 7월11일 질병관리본부는 주식회사 NBM이 ‘생산 승인’을 요청한 산업용 GM벼 세포에 ‘적합’ 판정을 내렸다. 해당 GM벼 세포가 인간 몸에 안전하니 상업화해도 된다는 뜻이다. 국내에서 산업용 LMO가 ‘생산 승인’에 앞서 인체위해성 심사를 통과한 첫 사례다.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LMO법)은 식품용·산업용·보건의료용·농림축산업용 등 여러 목적으로 새로운 LMO를 수입, 이용, 생산하려는 3가지의 경우 해당 LMO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중 해외에서 LMO를 들여오거나(수입) 특정 시설에서 GM미생물을 활용(이용)하는 경우에는 종종 인체위해성 적합 판정이 내려진 적이 있다.
반면 새로운 LMO를 국내에서 직접 만드는(생산) 경우에는 모든 용도를 통틀어 인체위해성 심사를 통과한 적이 사실상 없다. 단순한 LMO의 수입·이용보다 국내 생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기 때문이다. LMO가 국내 생산 과정에서 주변 농작물과 환경이 오염될 것이란 농민과 소비자의 우려가 높다.
앞서 CJ제일제당이 2010년,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설탕 대체 감미료의 대량생산을 위한 식품용 GM미생물의 ‘생산 승인’에 앞서 인체위해성 심사를 신청해 적합 판정을 받은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당시엔 LMO법에 분류된 LMO의 목적이 수입과 생산으로만 나뉘어 있었다. 국제 기준에 따라 2013년 LMO법이 개정된 뒤엔 GM미생물의 활용은 생산이 아닌 단순한 이용으로 분류된다.
이번에 인체위해성 심사를 통과한 GM벼 세포는, 논에서 재배하는 GM벼와는 다르다. 밀폐된 생산공정 이용시설에서 생산이 이뤄진다. 우선 일반 벼에서 세포분열이 왕성한 캘러스(callus·세포 덩어리)를 만든다. 그다음 토양균의 능력을 빌려 인체 내 피부 재생 물질인 ‘인간 상피세포 성장인자’(EGF) 유전자를 캘러스에 주입한 뒤 EGF를 대량생산한다. 이렇게 얻어진 EGF는 화장품 원료로 쓰인다. 유전자변형 기술로 만든 ‘GM벼’가 아니라 ‘GM벼 세포’라 불리는 건 이 때문이다.
심사 과정의 핵심은 ‘외부 방출’ 가능성이었다. 주식회사 NBM은 지난해 8월 인체위해성 심사 신청 뒤 1년 넘게 GM벼 세포가 생산공정 이용시설 밖 환경에 미칠 영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권태호 대표는 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벼 캘러스가 배양되는) 클린룸은 2중, 3중으로 밀폐됐다. 설사 (벼 캘러스가) 비의도적으로 밖으로 방출된다 해도 바로 죽을 수밖에 없다. 인공적으로 영양 성분을 주입해야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심사 신청 전 협의 기간을 포함해) 2년 동안 과학적으로 절대 일어날 수도 없는 상황에 대한 (안전성심사위원회의) 질문에 실험과 자료 제출을 통해 답변을 다 했다.” 이와 관련해 한 생명공학자도 “(벼 세포 캘러스가) 외부로 나오면 죽는다는 건 과학적 상식”이라고 했다.
산업용 LMO의 ‘나비효과’는 어디까지GM벼 세포의 상업화를 위한 준비는 모두 마무리된 상태다. 산업용 LMO의 위해성심사 적합 통보를 받은 업체는 산업통상자원부에 생산 승인을 신청할 수 있으며 그로부터 10일 안에 산업부는 생산 승인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 단순한 행정절차다.
주식회사 NBM은 내년 상반기 생산 승인을 신청한 뒤 본격적인 화장품 원료 제조에 나설 계획이다. “(상업화의) 선결 조건은 다 마무리됐다. 지금은 시장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데 내년 상반기에는 내수와 수출 시장에 진입하려 생각한다.” 권태호 대표의 말이다.
이 화장품은 LMO 상업화의 물꼬를 틀 것으로 보인다. 당장 ‘레스베라트롤 생산 GM벼 세포’에 대해서도 생산 승인을 받기 위한 인체위해성 심사 신청이 뒤따를 전망이다.
레스베라트롤 생산 GM벼 세포는, 이번에 인체위해성 심사를 거친 GM벼 세포와 목적 및 방식이 상당히 닮았다. 유전자변형 기술로 대량생산하려는 성분만 다르다. 레스베라트롤 생산 GM벼 세포 역시, 일반 벼의 캘러스를 활용해 미백 등의 효능이 있는 레스베라트롤을 대량생산하며, 이는 화장품 원료로 쓰이게 된다. 비슷한 GM벼 세포에 적합 판정이 난 만큼 레스베라트롤 생산 GM벼 세포도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농촌진흥청에서 GM벼 세포 기술을 이전받은) 업체가 내년에 인체위해성 심사를 신청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문제는 레스베라트롤 생산 GM벼 세포가 지난 10여 년간 ‘GM벼 상용화’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점이다. 농촌진흥청은 이미 2005년 레스베라트롤 생산 GM벼를 세계 최초로 육성했고 이를 국내 ‘간판 GMO’로 내세워왔다. 일반 벼처럼 논에서 재배한 식품용 GM벼를 밥상에 올리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농민과 소비자들은 “미국도 주곡인 GM밀은 재배하지 않는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GM벼 세포로 화장품 원료를 만드는 우회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해 9월 박수철 농촌진흥청 GM작물개발사업단장은 “주식인 쌀에 대한 국민의 정서가 민감한 것을 고려할 때 일단 밥쌀용이 아닌 산업용으로 안전성 심사를 받을 계획”이라며 ‘선 산업용-후 식품용’ 상업화 로드맵을 뚜렷하게 밝혔다.
LMO 문제를 집중 제기해온 김현권 의원(더불어민주당)도 산업용 GM벼 세포 상업화의 ‘나비효과’를 우려했다. “산업용으로 GM벼를 개발하더라도 언제든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체위해성 심사만 다시 통과하면) 식품용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농촌진흥청이 수행 중인 GM작물 연구 절반에 달하는 72종이 벼를 이용한 것이다. 이 중 13종이 (개발) 마지막 단계에 진입했다. GM벼 상업화가 코앞에 다가왔다.”
얼굴에 LMO 바르는지 알 수 없어산업용 LMO의 상업화 준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가장 큰 문제가 표시제의 구멍이다. LMO로 만들어진 식품인 GMO에 대해선 식품위생법에 따라 불완전하긴 해도 표시제가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화장품법에는 유전자변형 기술로 만들어진 성분을 공개할 의무가 규정돼 있지 않다. GM벼 세포를 활용해 얻어진 레스베라트롤이 들어간 화장품에는 단지 레스베라트롤 성분만 표시하면 된다는 뜻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화장품 전 성분 표시제로 모든 성분이 공개되고 있다”면서도 “(그 목적은) ‘어떤 성분이 들어 있다’고 밝히는 것이지 ‘어떻게 만들어졌다’고 밝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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