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변형식품(GMO) 표시제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국내외에서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는 당연히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이 GMO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알 권리가 있다. 표시제 확대를 요구하는 현실의 저변에는 ‘GMO가 인체와 생태계에 안전한지 과학적 논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자리하고 있다. GMO가 ‘안전하다’는 주장과 ‘위험하다’는 주장이 과학계에서 동시에 나오고 있다. 일반인은 과학계로부터 한 가지 명확한 답을 듣고 싶지만, 아쉽게도 두 주장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이미 20여 년간 세계인이 섭취해온 GMO의 안전성 논란이 아직도 계속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안전성의 개념과 평가 방식을 통해 답을 찾아보자.
단회~6개월, 독성시험법 다양해안전성 평가의 핵심 사안은 ‘GMO의 위해성이 기존 생명체가 가진 위해성과 얼마나 다른가’이다. 만일 두 생명체의 위해성이 동등한 범위에 있다고 판단되면 GMO가 기존 생명체처럼 안전하다고 평가한다. 이른바 ‘실질적 동등성’(Substantial Equivalence)의 원리이다.
가령 제초제에 견디거나 살충성이 있는 미생물의 유전자를 콩이나 옥수수에 삽입했을 때, 이들이 인간에게 독성을 발휘하지 않는 수준이 기존 콩이나 옥수수와 비슷하다면 둘 사이에 차이를 두지 말자는 것이다. 개발사들은 삽입되는 외래(미생물) 유전자, 이를 작물에 운반하는 벡터, 최종 산물인 GMO 등에 대한 독성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현재 세계인이 먹고 있는 GMO는 당연히 독성이 없다고 과학적으로 판단되는 품목들이다. 개발사들은 독성시험 결과를 포함해 다양한 자료를 학계에 논문 형태로 보고한다. 지난 20여 년간 안전성이 확인됐다고 보고한 논문은 수없이 많다.
지난 7월 초 노벨상 수상자 110명이 GMO가 인체에 안전하다며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더 이상 GMO 반대운동을 펼치지 말라고 보낸 서한은 그동안의 과학계 논문들에 근거한 것이었다. 5월에는 미국의 권위 있는 과학아카데미(NAS) 역시 이전 논문들을 검토한 결과 GMO가 인체에 해를 끼친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과학계에서 이같은 긍정적 판단만 제시된 것은 아니다. GMO가 상용화된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과학계 일각에선 GMO가 위험할 수 있다는 증거를 계속 보고해왔다. 동물섭취 실험으로 얻은 부정적 결과였다.
GMO 독성을 판단할 때 동물에게 해당 GMO를 먹여 관찰하는 실험이 중요하다. 외래 유전자가 작물 유전자에 영향을 끼치는지, 혹시 기존 작물 유전자에 변형이 생겨 새로운 독성물질이 만들어지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동물섭취 연구는 주로 쥐 같은 실험동물에게 GMO를 일정 기간 투여하고 그 결과를 검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여러 동물섭취 실험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식품의 독성을 판단할 때 실험동물에게 어떤 강도로 식품을 투여할지에 따라 실험은 크게 ‘단회투여’ 독성시험과 ‘반복투여’ 독성시험으로 나뉜다. 단회투여는 말 그대로 GMO를 한 번 투여하고 14일이라는 단기간 내에 나타나는 급성 독성을 관찰하기 위한 실험 방법이다. 이 기간에 체중, 자극 반응, 행동이나 호흡 등이 어떻게 변하는지 검토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웬만큼 강한 독성이 아니라면 이상 징후를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에 비해 반복투여는 1∼3개월(아급성), 3∼6개월(아만성), 6개월(만성) 등의 기간 동안 반복적으로 GMO를 먹이는 실험 방법이다. 관찰 항목은 혈액이나 소변 상태, 안과학적 소견 등 단회투여 시험보다 세밀하게 구성된다.
암컷 쥐 조기 사망률 최고 70%GMO는 사람이 평생 먹게 될 작물이다. 그렇다면 단회투여가 아닌 반복투여를 통해, 반복투여의 경우에도 최대 6개월 정도 실험동물의 상태를 관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더욱이 GMO는 그 잠재적 영향이 당대에 그칠 품목이 아니다. 그동안 자연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던, 외래 유전자가 삽입된 콩과 옥수수를 평생 먹었을 때 개인의 유전자에 조금씩 생긴 손상이 누적되지 않을까. 혹시 손상된 유전자가 후손에게 전달되지 않을까.
이런 우려를 없애기 위해 GMO 동물섭취 실험에서 생식·발생 독성시험, 유전 독성시험, 면역 독성시험 등이 추가 적용돼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과학계에서 분명 나오고 있다. 의아한 점은 국가별로 이들 실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동일한 식품에 독성 기준이 다르게 적용될 리 없을 텐데 말이다.
GMO 안전성 기준을 가장 엄격히 설정했다는 유럽연합은 3개월 실험을 선택했다(표 참조). 유럽연합에 GMO를 수출하려면 개발사는 3개월간 실험동물에게 꾸준히 먹인 결과 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사람으로 따지면 사춘기 정도까지 계속 GMO를 먹여보는 셈이다. 원칙적으로는 생식·발생 독성시험이나 만성 독성시험 결과도 필수 항목으로 설정했지만,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주로 3개월 실험 결과로 판단한다.
2012년 9월 프랑스 캉대학의 질에리크 세랄리니 연구진은 이 기간에 문제를 제기하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미국의 농화학기업 몬샌토의 제초제 라운드업에 잘 견디도록 만든 옥수수(NK603)를 쥐에게 먹이면서 신체 기능의 변화를 관찰한 논문을 발표했다.
실험 결과, NK603을 먹지 않은 대조군보다 유선 종양, 간과 신장 손상이 크게 늘어난 점을 발견했다. 특히 암컷이 수컷보다 이상 증세가 심각하게 나타났다. 이는 NK603에 대한 반응 민감도가 성(性)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NK603을 섭취한 암컷 쥐의 50∼80%가 24개월 초에 종양을 갖고 있었다. 많게는 3개의 종양을 가진 쥐도 있었다. 대조군에서는 30% 정도만 종양이 나타났다. 또한 실험군에서 암컷 쥐의 조기 사망 비율은 최고 70%에 달했다. 대조군에선 20% 정도였다.
이 연구 결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충격을 던졌다.
첫째, 연구진의 논문이 미국 전문학술지 (Food and Chemical Toxicology)에 게재됐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GMO 안전성에 대해 과학적 논란이 많았지만 권위 있는 학술지에 게재된 경우는 드물었다. 더욱이 이 학술지에는 2004년 ‘NK603이 안전하다’는 요지의 논문이 게재된 적이 있었으며, 이후 몬샌토사는 이 논문을 안전성의 주요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동일한 학술지에 전혀 반대의 결과가 발표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둘째, 연구진은 과거 실험들과 달리 쥐의 상태를 전 생애에 걸쳐 관찰했다. 보통 GMO의 쥐 실험은 최대 3개월을 넘지 않지만 연구진은 쥐의 평균수명인 2년 동안 관찰한 것이다.
평생 먹을 식품, 실험 기간 늘려야NK603을 수입하거나 재배하는 각국 정부는 이 충격적인 보고에 대한 의견을 밝혀야 했다. 이들이 주시한 것은 과학계의 검토 결과였다.
먼저 NK603의 안전성을 주장하는 과학계에서 프랑스 연구진에 대한 대대적인 비판이 시작됐다. 비판의 핵심은 실험 자체에 과학적 결함이 있어 그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연구진이 사용한 쥐가 원래 유선 종양에 잘 걸리는 종류라는 점, GM옥수수의 곰팡이 감염 여부가 제시되지 않아 NK603이 종양 발생의 확실한 원인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점, 실험군에 대조군보다 더 건강하게 생존한 쥐도 있으며, 대조군이 실험군보다 수가 너무 적어 신뢰할 수 없는 통계 자료와 기법으로 결과를 도출했다는 점 등이 지적됐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논문 게재 과정에서 전문가 심사를 통해 충분히 검토됐을 것이다. 보통 전문학술지는 해당 분야에서 익명의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투고된 논문의 문제점을 샅샅이 찾아내고 투고자에게 보완을 요구한다. 더욱이 프랑스 연구진처럼 민감한 사안의 실험을 진행했을 경우, 그 심사 과정은 더욱 엄격할 수밖에 없다. 물론 프랑스 연구진, 그 실험 결과를 지지하는 일군의 과학자들은 비판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가는 비판적 과학자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프랑스 연구진의 논문만으로 NK603이 위험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2012년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품의약품안전처)은 NK603의 안전성 심사 결과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그 내용은 NK603은 안전하므로 계속 수입해 섭취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논문은 결국 취소되고 다른 학술지에 원문 그대로 게재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비전문가의 지식으로 프랑스 연구진의 논문을 둘러싼 과학계의 논란을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어느 의견이 맞는지 판단할 길이 없다. 다만 최소한 두 가지 사실은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첫째, GMO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평가는 완결되지 않았다. 과학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현재보다 엄격한 심사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동물실험 기간을 3개월 정도에 그칠 것이 아니라 좀더 확대해야 한다. 또한 생식·발생 독성시험이나 유전 독성시험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GMO를 우려하는 이유는 당장 몇 년 사이에 발생할 급성 질병이 아니라 수십 년 또는 수세대에 걸쳐 위험 성분이 누적돼 발생할 장기적 악영향 때문이다.
GMO 벼와 배추, 14일 시험 너무 짧아한국의 동물실험 기간 기준은 90일에도 훨씬 못 미친다. 단회투여 독성시험이 적용된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개한 GMO 심사 자료 중 14일 시험을 수행한 사례가 많다. 물론 90일 시험도 있다. 개발사가 유럽연합 수출을 목표로 만든 GMO가 한국에도 수입됐기 때문인 듯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독성시험 기간이 14일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 기준이 마련된 과학적 근거는 무엇일까. 한국인이 유럽인보다 체질적으로 독성에 잘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국내에서는 벼와 배추 등 우리의 주요 식단을 구성하는 재료가 정부의 주도 아래 GMO로 개발되고 있다. 현재의 기준이 유지된다면 국산 GMO는 14일 독성시험을 거치면 승인될 것이다. 시급히 다시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안전성 논란은 GMO 자체뿐 아니라 GMO에 살포되는 농약에 대해서도 벌어진다. 지난해 3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글리포세이트가 높은 수준의 발암성 물질로 분류된다고 밝혔다. 글리포세이트는 세계 경작지에서 널리 사용돼온 제초제 성분이다. 특히 GMO를 재배할 때 주로 살포되며, 바로 GMO 때문에 사용량이 대폭 증가하고 있는 제초제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는 GMO는 제초제를 뿌렸을 때 잘 죽지 않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 GMO에 살포하는 주요 농약이 바로 글리포세이트 계열이다.
연구소는 특정 물질의 암 발생 정도를 다섯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글리포세이트는 두 번째 수준인 2A등급으로 분류됐다. 암을 확실히 일으키는 1등급 물질, 그리고 발암 가능성이 있는 2B등급 물질의 중간 지점이다. 연구소는 글리포세이트의 발암성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실험동물에선 충분히 확보됐지만, 인간에 대한 자료는 아직 제한적이어서 2A등급을 매겼다고 밝혔다. 이 말이 맞다면 당장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세계 28개 GMO 재배국의 농업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생태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심각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정반대의 결론을 발표했다. 글리포세이트가 인간에게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6월에는 미국 환경청(EPA) 역시 EFSA와 동일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글리포세이트 위해성 논란이 당장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하지만, 조만간 새로운 문제제기가 어떻게 시작될지 알 수 없다.
GMO 식품 늘어가는데 어쩌나소비자 입장에서 당황스러운 점은 이런 논란 속에서도 새로운 GMO가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미국과 캐나다에서 승인된 연어, 지난해 미국에서 승인돼 시판을 앞둔 사과 등 우리 주변의 식용 생물이 점점 GMO로 바뀌고 있다. 보통의 연어보다 두 배 빨리 자라고 사과를 칼로 잘랐을 때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소비자가 별 우려 없이 반기리라 기대하는 것일까. GMO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논란이 지속되는 한 소비자의 우려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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