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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6시29분 손에서 나오는 이야기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의 석영·자영·나나·도균을 만나다… 이들이 당사자 모임 만들어 매주 금요일 전하고 싶은 이야기
등록 2016-09-21 17:36 수정 2020-05-03 04:28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의 멤버들이 손을 모았다. 이들은 성노동자 권리선언을 통해 서로 돕는 손을 막는 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 제공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의 멤버들이 손을 모았다. 이들은 성노동자 권리선언을 통해 서로 돕는 손을 막는 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 제공

석영, 자영, 나나, 도균은 친구다. 석영은 학생이고, 자영은 종일 일하는 직장이 있고, 나나는 고양이 집사이며, 도균은 치마 입는 남자다. 20대인 그들은 ‘성노동자’다. 그리고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을 만들어 세상에 그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 매주 금요일 저녁 6시29분, 그들의 이야기가 페이스북 페이지( facebook.com/SexWorkerNetworkSON/)에 올라온다. 6월29일은 2005년 성노동자들 스스로 정한 성노동자의 날이다.

첫 만남, 그리고 머리말

“2016년 3월31일 헌법재판소는 성매매특별법이 합헌이라고 판결했고 우리는 함께 해야만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2016년 7월7일 우리는 처음으로 만났고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은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지난 8월19일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의 출발을 알리는 ‘머리말’이 올라왔다.

나나의 첫 모임 기억이다. “정말 많은 얘기를 했고 술도 왕창 마셨고, 엄청 웃고 끝없이 끝없이 끝없이 즐거웠다. 그날이 첫 만남이었고 그 전엔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었는데 그렇게 즐거울 수 있었다니.” 가슴에 담았던 얘기를, 구구절절한 부연설명 없이도, ‘아’ 하면 ‘어’ 하고 통하는 서로를 만난 것이다. ‘손놈’의 진상짓, 경찰의 함정수사 등 아찔한 순간을 함께 나눌 이와 손을 잡았다.

“그간 성노동자와 관련한 운동들은 주로 성노동자를 돕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노동자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많은 것들에 맞서 우리의 힘으로 싸워보려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동정도, 구원도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우리를 바라보고 함께하길 바랍니다.”(머리말)

지난 9월6일, 서울 공덕동에서 만난 이들은 “오히려 고맙죠”라고 말했다. 원래 인터뷰 성사가 어려울 줄 알았다. 페이스북을 보고 연락하고 기다린 한두 시간, ‘과연 만나줄까?’ 하는 짐작은 기우였다. 빠르게 만나겠단 답이 돌아왔다. 그들은 말하고 싶고, 전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만나서 한참을 떠들다 “관종인가요?” 무례한 농담을 건네도 박장대소 “맞아요, 맞아” 하고 거리낌 없이 답했다.

인터뷰 3시간 내내 도균은 청산유수, 나나는 조근조근, 자영은 은근슬쩍 떠들었다. 석영은 가늘게 손을 떨었다. 긴장한 석영의 손을 자영이 가만히 잡았다. 나나는 석영을 조심히 살피며 얼음물을 건넸고, 도균은 “괜찮아, 괜찮아” 했다. 자영의 코끝에 땀이 송송 맺힌 공덕동 골방의 심야 인터뷰, 가장 흔한 말은 서로를 향해 “맞아, 맞아”, 누구랄 것 없이 “하하하”였다. 서로 만나 좋은 사람들, 가슴에 품은 말들을 ‘차’ 떼고 ‘포’ 떼고 옮긴다.

“왜 성노동인가? 성노동은 뭔가?”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2005년 4월 한터전국연합, 한터여종사자연맹 관계자들이 성매매특별법 위헌 결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2006년 3월 합헌 결정이 나왔다. 성노동자 네크워크 ‘손’의 로고(저작권 iryang/tw:@iryang08). 한겨레 신소영 기자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2005년 4월 한터전국연합, 한터여종사자연맹 관계자들이 성매매특별법 위헌 결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2006년 3월 합헌 결정이 나왔다. 성노동자 네크워크 ‘손’의 로고(저작권 iryang/tw:@iryang08). 한겨레 신소영 기자

“손이 무슨 뜻이에요?” 네트워크 제안자 도균이 나섰다. “별다른 뜻은 없어요. ‘성노동자 네트워크’에 시옷(ㅅ), 오(ㅗ), 니은(ㄴ)이 있잖아요. 영어 ‘Sexworker Network’에도 에스(S), 오(O), 엔(N)이 있고요. 어쩌다보니 정해진 이름? 하하하.”

자영이 “처음 만나서 어쩌다 던진 이름인데 막 좋다고 하더라”고 말하자, 석영이 “나는 화장실 간 사이였어”라며 웃었다. 꿈보다 좋은 해몽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나왔다. “오스트레일리아 성노동자단체 스칼렛 얼라이언스 활동가 줄스가 한국어를 해요. 아시아태평양성노동자네트워크(APNSW) 활동가들한테 우리를 소개한 메일에서 ‘손’을 연결(Connection), 도움(Help) 같은 의미로 설명한 거예요.”

성매매가 아니라 성노동, 더구나 자신을 성노동자로 규정하는 사람이면 주변에 비슷한 이가 적잖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자영은 손을 만들기 전에 “오프라인에서 동종업계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성노동자’라는 단어를 보고 “유레카!” 했던 나나도 도균과 트위터 ‘맞팔’을 하면서 이어졌다. 성노동자로 자신을 규정하는 이들은 같은 입장의 친구를 만나기도 그렇게 어려웠다.

성노동자의 “일하는 형태”를 묻자 “천차만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양한 성노동자처럼 이들도 다양하게 일한다. 나나는 ‘룸 아가씨’, 자영은 외국인 상대의 조건만남(에스코트), 도균은 남성동성애자를 손님으로 만난다. 석영은 “지금은 여러 가게에 걸쳐 일한다”고 했다.

성정체성도 천차만별이다. 도균은 게이이자 젠더퀴어(성별 구분을 넘어서는 젠더)였으나 이제는 “내가 정체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한다”고 느끼고, 석영은 “여성과 젠더리스(Genderless)를 플루이딩(Fluiding·넘나드는)하는 팬로맨틱(Panromantic) 팬섹슈얼(Pansexual·범성애자)”이라고 답했다(모르는 단어는 그냥 외우자). 나나는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자영이 잠시 생각하다 “이성애자 여성”이라고 하자 도균은 “괜찮아, 널 이해해”, 나나는 “우리는 네가 뭐라도 사랑해”라며 웃었다. 이성애자가 성소수자인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의 실체다.

맞다. ‘뭐라는지 잘 모르겠는’ 이들이 왔다. 그래서 뉴스다.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 민주성노동자연대, 한터전국연합, 한국 성노동자권리모임 GG 등이 있었다. 이에 비해 손은 성매매 집결지에서 시작하지 않았고, 성노동을 지지하는 활동가 중심 단체도 아니다. 성노동 당사자로 구성원을 제한하는 네트워크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대에 성노동을 시작한 이들의 생애사는 좀 다르다. 인권 감수성이 예민하고, 페미니즘 세례를 받았다. ‘신성한 성’을 들이밀기엔 성 자체에 대한 감각도 다르다. 그러나 현실은 나빠졌다. 청년에게 분배되는 사회적 자원은 줄어들고, ‘금수저’ ‘흙수저’ 같은 불평등은 심해졌다.

“왜 성노동이라고 생각해요? 성노동이 뭐라고 생각해요?” 되풀이해 물었던 질문의 답변을 줄이고 줄이면 이렇다. 자영은 “감정에 대한 기술직”이라고 답했다. “사람의 비위를 맞춰야 하니까”라고 전제했다. 나나도 “농축된 감정노동”이며 “매뉴얼이 없는 일”로 답했다. 그리고 되물었다. “이게 노동이 아니면 뭔가요?”

“법제화, 함정에 빠지는 기분”
경순 감독(왼쪽)은 다큐영화 <레드 마리아>를 통해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나누는 이분법을 비판했다. 성노동자권리모임 GG의 활동가들과 함께한 모습. 정용일 기자

경순 감독(왼쪽)은 다큐영화 <레드 마리아>를 통해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나누는 이분법을 비판했다. 성노동자권리모임 GG의 활동가들과 함께한 모습. 정용일 기자

석영이 “애초에 구인광고 보고 찾아갔거든요” 하자 모두가 웃었다. 석영은 열여섯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을 나와 공부하며 일했다. 스무 살 무렵 “일하면 일할수록 시간은 시간대로 버려지고, 심신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갔다. “시급 3만원”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은 노래주점이었다. 석영의 이야기를 아는 모두가 “구인광고”에 ‘빵’ 터졌다. 기자 ‘아재’는 용기 내 물었다. “성은 신성한 거라고 하던데….” 도균의 답을 옮길까 말까 하다가 옮긴다. “성이 신성하고 노동도 신성하면 성노동은 두 배로 신성한 거죠.”

단속은 무섭고, 구매자는 위험하다. 위험에 빠진 손들이 맞잡으면 위험이 덜해진다. 자영은 “구매자가 ‘너 혼자 일하니?’ ‘뒤에 누구 있니?’ 물어보면 ‘이 인간이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나’ 하는 위협을 느낀다”고 말했다. 현행 성매매특별법은 성판매자도 처벌한다.

얼마 전 넷 중 한 명이 경찰의 함정수사에 걸렸다. 기소유예로 끝났지만 통지서를 보고 함께 두 번 울었다. 혐의가 두 개였다. 성매매는 물론 알선 혐의까지 적용돼 있었다. 자신의 조건만남 광고를 사이트에 올려서 알선 혐의가 추가된 것이다. “본인이 본인을 알선한 거죠.” “제가 제 포주가 된 거예요.” 그러나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나나는 “룸살롱 아가씨들이 폭행을 당해도 가게 영업진이나 심지어 다른 아가씨들까지 ‘그냥 조용히 묻자, 일 키우지 말자’고 한다”며 “음지에서 일한다고 피해까지 감수해야 하냐”고 말했다. 도균은 “구매자에게 강제로 당해도 남성 간 성폭력 개념이 희박해 ‘똥 밟았네’ 하고 말게 된다”고 말했다. 네트워크로 이어져야 할 시급한 이유는 “피해에 대처하는 가이드라인 정도는 알리고 싶어서”다. 일단은 “‘우리’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더 많은 ‘우리’를 만나기 위해 힘을 모으고” 멀리는 “협동조합이든 노동조합이든 만들어 권리를 찾자”는 목표다.

이번엔 성매매 처벌 범위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을 물었다. “성판매자만 비범죄화하자는 의견과 성구매자까지 완전 비범죄화하자는 견해가 있는데?” 도균은 “사회마다 복잡한 조건이 다르다”며 “성노동자 인권을 법제화 중심으로 따지다보면 함정에 빠진다”고 답했다. 나나는 “완전 비범죄화가 당장 이뤄지겠느냐?”며 “먼저 성매매특별법이 사문화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시 “완전 비범죄화하면 성구매자만 편해지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나나는 “판매자는 불쌍해서 이해하지만 구매자는 나쁘다고 말하는 건 모순”이라며 “구매가 나쁘면 파는 사람은 뭐가 되느냐?”고 답했다.

구매자의 ‘찌질함’은 이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자영은 “‘내가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거 알지만…’ 하면서 설교하는 아저씨들이 있다”고 전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주업이 있는 자영은 “7년 일해서 월급 200만원을 찍었다”며 “불규칙하고 잦은 야근에 다른 알바를 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사는 그에게 생활비를 충당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방식이란 것이다.

역시나 고전적 질문, “자발과 비자발”도 물었다. 현행법은 비자발적 성매매는 처벌하지 않으나 비자발성을 판매자가 증명해야 한다. 도균이 되물었다. “기자님은 백퍼센트 자발적으로 일하나요? 세상 일이 백퍼센트 자발과 백퍼센트 비자발로 나뉘나요?”

성노동자 선언문 발표

지난 8월23일, 손의 페이스북에 올린 석영의 이야기 일부다. “매우 천천히 변화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한 줌의 ‘빠른’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세상과 나 사이의 시차 적응이 필요한 순간들이 불편한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한 ‘빠른’ 사람 고유의 감수성을 갖게 된다는 것, 느린 세상 속 시곗바늘의 속력을 높여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에 스스로에게 이롭다.”

때로 소수자의 의미는 그 수가 적은 사람이 아니라 ‘다른 시간’을 사는 사람들이 된다. 성적 자기결정권의 ‘끝판왕’ 성노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를 원한다. 도균은 “부정적인 반응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싫거나 불편하다는 건 우리 말이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노동자 네트워크 손은 9월23일 성노동자 선언문을 발표한다. 참, 이들은 “에디터 한월, 영문 번역하는 이조, 친구 영원 등에게 꼭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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