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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글시민 와글입법

빠흐띠의 ‘바늘꽂기 실험’은 성공할까

‘바글시민 와글입법’ 프로젝트의 온라인 기술 총괄 맡은 개발자 협동조합… 시민이 원하는 법안 만들기 위한 활동 계획… “모든 방법을 써보겠다”

제1116호
등록 : 2016-06-1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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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글시민  와글입법

①살아나라 시민정치!


② 빠흐띠의 실험

‘빠흐띠’ 조합원들(맨 왼쪽 권오현 대표)이 5월20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서울, 제주, 전남 보성 등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조합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오프라인 모임을 한다. 김진수 기자

2015년 8월10일, 그는 동영상에 꽂혔다.

아르헨티나의 시민참여 온라인 플랫폼 ‘데모크라시 OS’의 설립자인 피아 만치니가 2014년 테드(TED) 연설을 하는 영상이었다. (관련 영상 ‘인터넷 시대에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법’)

“우리는 전통적인 정당들에 접근해 ‘여기 이 소프트웨어로 유권자들과 양방향으로 대화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네,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우리가 맞서는 도전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생각을 진전시키려면 스스로 해야만 했습니다.”

만치니는 정당에서 퇴짜를 맞은 뒤 정당을 직접 만들고 시민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모아온 과정도 소개했다.

“저들은 저렇게 풀어나가고 있구나”

그런 데모크라시 OS가 온라인 개발자인 권오현(40) UFO팩토리 대표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인터넷·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려 했던 수많은 개발자나 활동가의 경험담과는 달랐다. 비영리단체로는 이례적으로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지원기관의 투자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데모크라시 OS가 투자를 받았다는 건 ‘이게 대세가 될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죠. (시민참여 민주주의에 관한) 답을 찾은 플레이어가 곧 나오겠구나 그런 심정이었어요. ‘서둘러야겠구나’ 싶었죠.”

스페인의 열기도 그를 흔들었다. 시민이 직접 법안을 제안하는 마드리드 정부의 웹사이트 ‘디사이드 마드리드’가 곧 문을 열 예정이었다. 2015년 5월, 디지털 참여 도구를 개발해온 싱크탱크 ‘라보데모’가 신생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를 비롯한 정치조직들을 도와 좌파연합 후보를 마드리드 시장에 당선시킨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비슷한 상황에서 저들은 저렇게 풀어갔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나도 이런 걸 해보려 회사를 나왔는데 ‘지금 뭐하고 있나’ 생각했죠.”

권 대표의 마음이 바빠졌다. 포털 서비스 다음에서 ‘아고라’의 2차 버전과 ‘블로거뉴스’ 개발 리더였던 그는 2013년 독립해 소셜벤처 ‘UFO팩토리’를 차린 상태였다. 소셜벤처·비영리단체·정당 등의 인터넷 캠페인과 플랫폼 제작을 정신없이 돕다보니 “시민들이 인터넷에서 자유자재로 토론하고 기민하게 의사결정을 하는 온라인 정치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오랜 꿈은 자꾸 밀려나고 있었다.

해외 개발자들의 성과에 자극받은 권 대표는 곧바로 다음에서 함께 일했던 개발자를 중심으로 5명을 모았다. 그들은 주식회사가 아닌 협동조합을 꾸리기로 결정했다. “주주가 아닌, 작업을 하는 개발자가 중심이 되는 조직을 만들어야 나중에 권력이나 자본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오래 같이 일하는 팀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로부터 두 달 만인 지난해 10월, 시민이 모여 이슈를 해결하는 온라인 광장을 꿈꾸는 개발자 협동조합인 ‘빠흐띠’(parti·프랑스어로 정당)가 탄생했다. 빠흐띠의 첫 작품은 이슈 커뮤니티인 ‘빠띠’( parti.xyz)였다. 조합 이름 ‘빠흐띠’의 발음을 재미있게 바꾼 서비스 명칭이다.

페이스북·트위터가 익숙한 시민들

지난 3월 문을 연 ‘빠띠’(parti.xyz) 서비스는 시민들이 모여 의견과 자료를 나누는 이슈 플랫폼이다. 빠흐띠 조합은 시민이 직접 법안을 제안하거나 집단적으로 의사결정 하는 정치플랫폼도 선보일 예정이다. 빠띠 서비스 갈무리

지난 3월 문을 연 빠띠는 ‘이슈 플랫폼’이다. 세월호, 기본소득, 20대 국회, 환경, 디지털사회 혁신 등 74개(6월10일 현재)의 이슈별로 관심 있는 시민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자료를 모을 수 있다. 어떤 문제가 중요하고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실험은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다. 빠띠를 찾는 시민이 턱없이 적었다. 이미 시민들은 페이스북·트위터·블로그 같은 영리기업의 서비스에 익숙해 있었고, 새로운 온라인 미디어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한국형 정치플랫폼이 필요하다”고 했던 활동가, 기자, 대학생마저 빠띠에 시큰둥했다.

빠흐띠의 브랜드매니저 박은지씨는 고전의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처음엔 이슈에 밝은 사람들이 빠띠 서비스에서 논의를 이끌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우리 기대나 예상에 비해 그분들은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걸 어려워했고, 또 바빠서 활동할 여력이 안 됐어요. 서비스가 아직 어렵기도 했고요.”

돌파구가 필요했다. 특정 이슈를 잡아 시민 주도로 제도화·입법화하는 것을 직접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내부에서 나왔다. 때마침 <한겨레21>이 ‘바글시민 와글입법’ 프로젝트(제1115호 표지이야기 참조)의 협업을 제안해왔다. 빠흐띠가 만든 온라인 광장에 <한겨레21>이 초대한 시민들을 모아 참여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확인해보자는 이번 프로젝트의 뼈대가 탄생한 배경이다.

빠흐띠는 <한겨레21>의 프로젝트가 자신들의 실험과 꼭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시민이 주도하는 이슈, 자유자재의 토론, 집단적 의사결정, 법안 발의, 입법 압박, 권력기관·기업 감시로 이어지는 ‘바글시민 와글입법’ 프로젝트 과정은 빠흐띠가 생각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열쇳말들이었다.

정치플랫폼 가능성 확인에 대한 기대

빠흐띠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시민이 주도하는 입법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개발자 입장에선 시민 주도 정치플랫폼의 가능성을 확인해보는 다양한 실험과 시도의 장이 마련된 셈이다. 시민 주도 입법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한국에선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기회다.

그래서 권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를 ‘바늘꽂기 실험’이라 표현했다. “온라인을 활용해 시민 주도로 정책을 수립하기까지 수많은 실패가 따를 거예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거대한 바위에 바늘 하나라도 끝까지 꽂아보려고요. 시민의 의사가 실제 법과 행정에 다다르는 통로를 확인하고 싶어요.”

빠흐띠는 ‘바글시민 와글입법’ 프로젝트를 통해 구현하려는 ‘공공저널리즘’에도 관심이 많다. 직접민주주의 구현을 고민해온 빠흐띠로선 경마식 보도와 일방적 논평을 일삼는 언론이 늘 아쉬웠다. 반면 공공저널리즘은 시민이 원하는 이슈를 발굴해 공공 영역으로 밀어올리는 취재보도의 철학이다.

“지금까지는 언론사가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어젠다를 설정해 배포했고, 정책과 법안은 그런 언론과 정치인, 기업, 행정가가 모인 밀실에서 이뤄졌잖아요. 이제는 그런 과정을 공개적으로 시민들과 함께 진행해야 하는 시대가 됐고 그런 기술도 준비됐어요.” 권 대표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누군가는 먼저 장벽을 허물어야 했는데 언론사인 <한겨레21>이 물꼬를 터준 느낌이에요.”

시민참여 따라 정치플랫폼은 무궁무진

‘바글시민 와글입법’ 프로젝트가 연말까지 진행되는 동안 빠흐띠는 할 일이 많다. 일단 지난 6월6일 시작된 온라인 투표 페이지( up.parti.xyz)를 만들어 시민들이 원하는 이슈와 법안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첫 작업을 맡았다.

7월4일부터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면 빠흐띠는 더 바빠진다. 법안 발의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시민들이 법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는지 토론하고 의사결정 하는 ‘숙의’ 과정을 진행할 온라인 광장을 설계·운영해야 한다.

시민법안이 해당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1단계)-상임위 전체회의(2단계)-법제사법위원회(3단계)-본회의(4단계)를 거치는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면, 온라인 광장에서 시민들의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져 국회를 압박할 수 있도록 기술적 뒷받침을 할 예정이다.

온라인 광장에서 시민들이 생산적 토론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기술적 장치는 이미 준비된 상태다. 예를 들어 빠띠 서비스에선 시민들의 의사를 ‘찬성과 반대’로 먼저 묻는다. 이번 ‘바글시민 와글입법’ 프로젝트의 후보 법안 투표에서도 “4개 법안 중 어떤 법안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객관식으로 묻는 대신, 4개 법안에 대해 각각 “이 법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방식을 선택했다. 박은지 브랜드매니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토론의 전 단계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며 “여러 이야기를 들어야 섣불리 판단하는 일도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빠흐띠의 가장 큰 고민은 프로젝트가 끝나는 연말까지 시민들을 온라인 광장에 어떻게 붙들어두느냐에 있다. 온라인에 기반한 참여민주주의를 꿈꾸는 개발자들의 영원한 숙제이기도 하다. 전문가인 그들도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다. 권 대표는 “너무 어려운 일이라 우리도 여러 번 실험하는 수밖에 없다”면서도 “페이스북, 트위터, 레딧, 핀터레스트 같은 영리 서비스에서 시도된 방법을 모두 참고하려 한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새로운 정치 구조 상상해보는 기회

시민입법 프로젝트에 대한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이 지속되면 이슈 플랫폼인 빠띠 서비스 외에 더 진전된 형태의 정치플랫폼도 속속 선보일 예정이다. 스페인의 디사이드 마드리드나 아르헨티나의 데모크라시 OS처럼 시민이 직접 법안·예산 관련 제안을 하거나, 미국 ‘루미오’처럼 집단적 의사결정을 돕는 플랫폼 개발을 구상하고 있다. 권 대표는 “개인적으로 언젠가는 유럽의 해적당 같은 정당을 해보고 싶긴 하다”며 웃었다.

빠흐띠의 실험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됐다. “인터넷이 있는 지금, 새로운 정치 구조를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열렸는데 왜 아직도 실험과 아이디어는 부족한 걸까.” 실험은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이제 중요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각자가 서로의 경계를 넘어서고, 중앙의 권력이 여기저기로 분산되는 시대를 함께 만들어가게 돼 반갑습니다.” 고군분투해온 빠흐띠가 <한겨레21>과 함께 시민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새로운 민주주의를 상상해보자고.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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