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006699">열린 대학과 그 적들.
열린 대학엔 배움이 있고, 닫힌 대학엔 훈육이 있다.
배움은 비판·논쟁과 벗하고, 훈육은 지시·허가와 짝한다. 배움에선 관계의 자유가 자라고, 훈육에선 상하와 서열이 체화된다.
훈육이 배움을 밀쳐내고, 서열이 자유를 압박하며, 학문보다 장사가, ‘열린’보다 ‘닫힌’이 앞서는 대학의 실상이 최근 잇달아 드러났다.
대학생들의 ‘ 대학순위평가’ 거부 선언은 언론이 서열화에 앞장서고 대학이 정글의 질서에 자기를 편입시키는 현실을 향한 반발이다. 전·현 정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들이 연루된 ‘1+3 국제전형 사태’는 돈벌이에 나선 대학과 무책임한 정부 사이에서 교육이 어떤 수난을 겪고 있는지 보여준다. 학생들의 ‘세월호 간담회’ 공간 대여 요청을 ‘정치적’이란 이유로 거부하는 모습 속에서 스스로 정치 논리에 종속된 대학의 이중성이 읽힌다.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가 닫힌 대학의 속살을 헤쳤다. _편집자</font>
지난 10월6일 연세대를 포함한 8개 대학 총학생회는 중앙일보사(서울 중구 서소문로) 앞에서 이 신문의 대학종합평가를 거부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대학종합평가가 “학교에 돈이 얼마나 많은지, 외국인 학생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기업에 얼마나 많이 취업하는지 등 대학의 본질과 상관없는 항목들로 도배돼 있다”며 대학의 발전을 거꾸로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학종합평가가 학벌사회의 병폐를 고착화하고 대학 간 서열화를 조장한다며 대표자 면담도 요청했다. 는 “투명한 평가를 통해 국내 대학의 경쟁력과 교육의 질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며 면담 여부는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font size="3">역할 및 정체성과는 동떨어진 ‘숫자놀음’</font>학생들은 의 대학종합평가의 문제점으로 평가 방식과 평가 항목을 꼽았다. ‘대학의 성격과 무관한 평가 항목 적용’과 ‘평가 기준의 정량화’가 대학의 본래 기능을 해치고 있다는 진단이다. 모든 것이 수치화된 학교의 모습은 정작 대학의 역할 및 정체성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대학종합평가는 가 21년째 해온 사업이다. 대학들이 평가 결과에 목매면서 영향력은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마치 입시철마다 대학에 배포되는 ‘배치표’처럼 작용한다. 각 학교의 순위는 매년 근소한 차이로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한다. 학교 순위를 줄 세운 언론의 ‘배치표’에 학교는 일희일비하고 있다. 애초 대학 간 선의의 경쟁을 촉구하겠다던 대학종합평가는 대학들을 언론사의 입맛에 맞는 기준에 끼워맞추는 결과를 낳고 있다.
는 평가 부문을 ‘교육 여건 및 재정’ ‘교수연구’ ‘국제화’ ‘평판·사회진출도’로 나눈다. 각 부문에 세부 지표를 적용해 학교를 판단하고 모든 평가 항목은 수치로 환산된다. 의 평가 방식에 따르면 ‘국제화’가 잘된 대학이란 외국인 전임교수 비율과 외국인 학생 비율이 높고, 교환학생 비율과 영어강의 비율이 높은 학교다.
결과에 울고 웃는 것은 연세대도 예외가 아니다. 2013년 10월 학내 언론 는 ‘중앙일보 대학평가 공동 5위에 그쳐, 그 원인은?’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학교는 5위로 떨어진 순위 발표를 억울해했다. 당시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학교 기획실의 평가팀은 학교가 낮은 순위를 받자 “서울대가 세계 대학 평가에서 늘 100위 안에 드는 세계 대학인데 국내 대학 평가에서 5위(공동)에 그치는 상반된 결과가 나왔다”며 평가의 신뢰도를 비판했다. 2014년 ‘QS 세계대학평가’(영국 대학평가기관 QS와 의 공동평가) 결과 연세대가 예년보다 높은 등수를 기록하자, 학교는 소식지를 통해 이 사실을 홍보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학교 소식지는 “학교 순위가 예년보다 8계단 상승해 연세대의 ‘글로벌 명문대학으로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고 자평했다. 이번 평가 결과(6위)에 대해선 아직 아무 말이 없다.
이처럼 대학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연세대는 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학교는 대학 평가 기준의 이름을 그대로 딴 ‘국제화’ 정책에 힘을 쏟았다. △영어강의 비율 증가 △외국인 학생 비율 증가 △외국인 교원 확충 등이 주요 정책이었다. 결국 대학 평가의 해당 항목에서 상위권을 따냈다.
<font size="3">교수 확보률 1위, 콩나물시루 강의실 </font>그러나 막상 우수한 성적표를 받은 학교의 ‘국제화’ 실상은 점수와는 거리가 먼 상태다. 학과별 특성을 고려치 않은 과도한 영어강의 정책에 학생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학교를 거니는 외국 학생의 수는 많아졌지만 학교는 한국 학생과 외국 학생이 교류할 수 있는 어떤 기회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일부 한국 학생은 외국 학생과의 조모임을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피하고 있다. 외국 학생들 역시 “한국 학생들과의 조모임이 부담스럽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대학종합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한 연세대의 ‘교육 여건’은 더 참담했다. 역설적이게도 의 대학 평가에서 연세대는 교수 확보율 1위를 기록했지만, 학생들의 교육과 직결된 지표인 ‘전임교원 강의 담당 비율’은 58.1%에 불과했다. 전임교원 중 강의하는 교수는 절반이 겨우 넘는 수준이다. 대체로 전임교원이 담당하는 강의는 전공수업인 경우가 많아 학생들은 꼭 필요한 전공과목을 수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매 학기가 시작할 때마다 정원이 꽉 찬 수업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수강 신청을 구걸하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수강 신청에 성공한 수업 역시 강의실이 비좁은 나머지 학생들은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붙어 앉아야 한다. 자리가 없어 창틀에 앉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발견되는 강의도 한둘이 아니다. 연세대는 2013년 기준 개설된 대형 강의(100명 이상 수강) 수가 300개로, 서울 주요 대학 1위에 ‘껑충’ 올라섰다.
또한 는 ‘등록금 대비 교육비 지급률’과 ‘등록금 대비 장학금 지급률’로 학교의 교육 여건을 판단했지만 막상 ‘등록금의 액수’는 평가에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연세대는 1년치 등록금이 867만5800원(대학정보 공시 사이트 ‘대학알리미’)으로 서울 지역 대학들을 제치고 다시 한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등록금 대비 장학금 지급률은 20.9%, 등록금 대비 교육비 지급률은 292.4%로, 각각 24위와 26위를 기록했다.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버거운 현재의 ‘교육 여건’에 대해 대학 평가는 관심이 없었다.
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지킨 대학 평가를 통해 대학 간 ‘선의의 경쟁’을 불러일으켰다고 자인하지만 보도 태도는 결이 다르다. 대학 평가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순위 경쟁’에 초점을 맞추는 기사를 내보내왔다. 어느 대학이 서울대를 제쳤고 어느 대학이 예년에 비해 등수가 상승했는지를 부각시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순위 매기기가 서열화를 조장하고 강화한다는 지적엔 불쾌함을 드러냈다.
“의견은 감사한데 기사는 읽어보셨나요? 교수당 학생 수, 학생 1인당 도서자료 구입비, 등록금 대비 장학금 지급률, 등록금 대비 교육비 지급률, 교수당 국제 학술 논문지 피인용, 해외 교환학생 비율, 외국인 교수 비율, 업무에 필요한 교육이 되어 있는지 여부…. 이런 평가가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고 강화하는 것일까요?”(10월7일 페이스북 답변)
<font size="3">상위권 점한 대학들의 광고 게재될 즈음…</font>의도야 어떻든 정론지를 표방하는 언론사가 대학을 줄 세우면서 학벌사회의 서열화 논리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 현재 대학 평가의 분명한 현실이다. 대학 평가 결과가 발표될 즈음이면 신문에는 대학 평가에서 상위권을 점한 대학들의 광고가 게재되기 시작한다. 대학 평가 결과가 발표되는 시점은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지원할 대학을 결정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즉 대학들은 언론의 대학 평가를 믿고 수용하는 독자에게 자신의 입지를 각인시키고, 언론은 그런 대학의 반응을 이용해 수익을 얻는 구조다.
는 대학 평가를 통해 국내 대학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대학 평가 자체가 언론과 대학의 사업 수단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대학이 갖춰야 할 바람직한 경쟁력보다는 한층 더 공고해진 한국 사회의 서열 구조일 뿐이다.
박성환 연세대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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