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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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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받고 한 알바, 서포터스

기업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지만 학생들이 얻는 건

‘금테 두른 종이 한 장’뿐인 대외활동
등록 2014-09-26 17:19 수정 2020-05-03 04:27

대학 4학년인 박재희(23·가명)씨는 노트북 화면을 보며 마우스 스크롤을 내렸다. 그가 들여다보는 곳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온라인 카페 ‘스펙업’. 스펙업은 가입자만 127만 명이 넘는 대형 카페다. 기업 채용 정보, 합격자 자기소개서, 취업 후기 등 온갖 취업 정보가 올라온다.

<font size="3">그나마 쉽게 기회 얻을 수 있는</font>

박씨는 4학년이 되고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이 카페를 살펴본다. 저학년 때는 어쩌다 한 번씩 카페에 들어왔지만, 졸업을 앞둔 지금은 “취업과 직결되는 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챙긴다. 얼마 전 그는 휴학을 신청했다. 휴학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졸업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취업을 위해선 대외활동을 통해 좀더 다양한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스펙업에 올라오는 글들을 꼼꼼히 살피며 대외활동 목록을 눈여겨보던 참이었다.
대학생들이 스펙을 쌓고자 하는 대외활동은 연합동아리, 공모전, 인턴, 봉사활동, 해외탐방, 기자단, 서포터스 등 종류가 다양하다. 준취업이라 할 수 있는 인턴은 물론 공모전이나 해외탐방은 대외활동 중에서도 경쟁률이 치열하다. 상대적으로 쉽게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대학생 기자단’과 ‘서포터스’다.
스크롤을 내리던 박씨의 눈에 가장 많이 들어온 대외활동 역시 그 둘이었다. 여러 모집 공고를 비교한 끝에 그는 한 중소기업에서 운영하는 기자단과 한 방송사 서포터스에 지원서를 냈다. 그는 이 활동이 자신의 이력에 보탬이 되길 고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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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원한 중소기업은 구인·구직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다. 이 기업의 기자단으로 선발되면 일주일에 한 번씩 고용정책 등 일자리와 관련된 기사를 써야 한다. 기사 한 건당 받는 돈은 1만원이다. 적은 원고료 대신 기업은 학생들에게 취업과 관련된 정보를 주고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역시 그가 지원한 방송사는 주로 경제 프로그램을 만든다. 서포터스가 되면 방송사의 프로그램과 이 방송사가 연초마다 여는 국제포럼을 홍보해야 한다. 포럼 당일에는 행사 진행요원으로 일하기도 한다. 하지만 활동비를 주지 않는다. 방송사가 내세운 혜택은 포럼 참가 기회와 명사의 멘토링 특강뿐이었다. 그는 “돈을 보고 지원한 것은 아니다.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지원한 것”이라며 면접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면 합당한 대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은 대학생 대외활동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요즘 대학에서 대외활동을 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대외활동은 경험이 없는 사람을 찾기 힘들 만큼 필수적인 일로 자리잡았다. 다양한 경험을 한다는 점도 있지만 취업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까지 웬만한 기업은 대학생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기업뿐 아니라 경기도 같은 자치단체, 문화체육관광부나 국토교통부 등의 정부 부처, 한국수력원자력 같은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대외활동까지 수도 없이 많다.

<font size="3">서류·면접 통과 뒤 ‘미션’ 완수해야</font>

이들이 대외활동을 운영하는 이유는 ‘바이럴 마케팅’(입소문 마케팅)을 위해서다. 홍보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거나 제품을 널리 알리려는 것이다. 더욱이 포털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온라인 마케팅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내가 받았던 미션은 한 달에 한 번 SNS로 그 기업을 홍보하는 일이었다. 여러 명을 뽑아 팀을 만들었는데 내가 속한 팀 대부분이 SNS를 활발하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걸(SNS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을 뽑는 것 같았다.” 한 화장품 회사의 브랜드 서포터스로 일했던 한순영(22)씨의 설명이다.

대외활동을 운영하는 쪽에서는 지원자 블로그의 방문객이 많을수록, SNS 친구가 많을수록 환영이다. 최근 들어 지원서에 페이스북 주소와 블로그 이웃 수를 적도록 하는 곳이 많아지는 이유다.

기업 입장에서는 대학생들을 이용한 마케팅이 파워블로거나 아르바이트생을 이용한 홍보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 대학생들에게 꼬박꼬박 돈을 지급하는 소수의 기업과 기관을 빼면, 한 달에 한 번 회식비를 제외하고 거의 돈이 들지 않는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

대외활동에 지원한 대학생들도 서류·면접 전형을 통과해야 한다. 선발된 사람들은 주어지는 ‘미션’을 완수해야 수료증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야쿠르트 대학생 스토리텔러는 ‘제품 리뷰 작성, 행사 취재 등 블로그 및 SNS를 통한 홍보 활동’을, 고용노동부의 취업지원단은 ‘고용노동부 청년취업지원 및 청년고용기획과 주요 행사 참석 및 보도’를 주 업무로 한다.

기자단에 지원해도 마찬가지다. 한국수력원자력 대학생 기자단이 하는 일은 ‘한수원 관련 온·오프라인 홍보’다. 삼성의 ‘열정 기자단’은 삼성그룹의 ‘홍보대사’ 역할을 한다.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기자’의 역할과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서포터스든, 마케터든, 기자든, 또 다른 무엇이든 기본적으로 하는 일은 같다. ‘미션’은 사내 행사, 정책이나 제품 소개 등 사보에 실릴 법한 홍보성 글을 포털 사이트 블로그에 쓰고 SNS 계정에서 공유하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과 정부 부처가 주관하는 대외활동은 비슷하지만, 대학생들에 대한 처우는 천차만별이다. 금융계열이나 대기업은 대학생 한 명에게 월 최대 20만원까지 지급하는 곳도 있다. 정부기관은 그보다 적은 평균 5만원을 활동비로 지급한다. 때로는 우수 활동자에게 상금을 주고, 인턴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운이 좋으면 채용 때 서류 심사 등에서 혜택을 받는다.

<font size="3">혜택은 자사 아나운서 만나기</font>

문제는 대가를 지급하는 곳이 드물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기업·기관은 대학생들에게 활동비를 주지 않는다. 대학생들이 3~6개월 동안의 노동 끝에 받을 수 있는 것은 ‘금테를 두른 종이 한 장’(수료증)과 약간의 홍보 경험뿐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쪽에서 일하고 싶다는 김지민(22·가명)씨는 CJ 계열 케이블방송사와 종합편성채널(종편)에서 대외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 “솔직히 종편에서 받았던 대우는 CJ 쪽과 비교했을 때 엉망진창이었다.”

올해 상반기에 한 종편 프로그램에서 활동한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종편 서포터스에서 한 일은 CJ 계열 케이블에서 한 일과 다를 게 없었다. 한 달에 한 번씩 팀 미션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을 홍보할 콘텐츠를 제작했다. 종편 페이스북 계정의 글을 자기 계정에서도 공유했다. 블로그에도 종편이 만드는 프로그램을 홍보했다.

그는 CJ 계열 케이블 대외활동을 할 때 한 달에 5만원을 받았다고 했다. 우수 활동자로 선정돼 10만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종편은 CJ 계열 케이블보다 더 많은 일을 시키면서도 활동비를 주지 않았다. 혜택이라곤 자사 PD와 아나운서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 것뿐이었다. 심지어 ‘멘토들’을 만난 뒤엔 후기를 블로그에 올려야 했다. “그걸 어떻게 혜택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형식적인 멘토링까지 홍보하도록 또 다른 일을 시키는 것 아닌가. 많은 사람이 종편의 보도 방식을 욕해도 종편 대외활동에 지원한 사람들은 언론을 지망한 게 아니라 별 문제의식 없이 일했다. 하지만 솔직히 시키는 일도 대우도 별로였다.”

‘용감하게’ 활동비를 달라고 요구했다가 매몰차게 거절당한 경우도 있다. 대학생 허아무개씨가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내가 했던 대외활동에서는 마지막 조별 프로젝트를 위해 조원들끼리 자주 모여야 했다. 그런데 지방에 사는 팀원은 매주 나가는 교통비와 식비를 부담스러워했다. 우리도 활동비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해서 팀장에게 활동비를 달라고 건의했더니 단칼에 거부했다.”

담당 직원은 그가 하는 일들이 ‘활동비가 필요 없는 활동’이라고 말했다. 결국 대학생들은 직원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까봐 입을 다물었다. 지방에 사는 다른 팀원은 자비로 계속 서울로 와야 했다. 모든 활동이 끝나고 기업에서 준 것이라곤 영화표 몇 장뿐이었다.

기업에서 대외활동을 담당하는 사람과 연락이 아예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 6월부터 대외활동을 시작한 김소연(22)씨는 매주 기사와 기획서를 제출한다. 하지만 기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피드백을 요청해도 피드백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팀장은 총 19명의 학생 중 5명과만 연락했다. 그는 “기자단 관리가 하나도 되지 않는다”며 “한 달에 한 번씩 모이기로 한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font size="3">대외활동으로 메워야 하는 양식의 자소서 </font>

그럼에도 대학생들은 대외활동을 그만둘 수 없다. 대학 4학년인 한은지(23)씨는 “대외활동을 하지 않으면 자기소개서에 채울 게 없다”고 했다. “어떤 기업 자소서 항목을 보면 양식 자체가 대외활동을 하지 않으면 메울 수 없게 돼 있다.”

같은 학년인 임유진(23)씨도 말했다. “모든 대외활동이 반드시 취업에 도움 되는 스펙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잘한 대외활동도 또 다른 대외활동을 위한 스펙이 된다. 그렇게 하다보면 진짜 취업에 도움이 되는 스펙을 만들 수도 있다.”

취업을 위해 시작한 대외활동이 ‘대외활동을 하기 위한 대외활동’의 늪에 빠뜨리는 경우도 생긴다.

캠퍼스 안을 벗어나 다양한 일을 해보는 것은 귀중한 경험이다. 그러나 모든 경험이 귀중한 것은 아니다. 많은 대학생들이 귀중한 경험 대신 ‘쓰디쓴 경험’이 될 줄 알면서도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대가 없이 일한다는 것을 알고 지원했더라도 마냥 자발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남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취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 ‘자원활동으로 포장된 노동’에 너나없이 지원한다. ‘자발적 노동’과 ‘강제된 노동’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 시대에 오늘의 대학생들은 살고 있다. 열정은 어떻게 ‘무임금 노동’이 되는가. 대외활동을 운영하는 기업과 기관들은 잘 알고 있다.

서혜미 성신여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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