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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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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촌 할매와 사랑방 손님

연대자들이 끊임없이 위양마을을 찾는 까닭
등록 2014-08-09 17:32 수정 2020-05-03 04:27
위양마을(밀양시 부북면) 주민 ‘덕촌 할매’(손희경씨)가 대학생 기자와 함께 콩밭을 매고 있다. 김명진 기자

위양마을(밀양시 부북면) 주민 ‘덕촌 할매’(손희경씨)가 대학생 기자와 함께 콩밭을 매고 있다. 김명진 기자

그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3년 동안 유지해온 위양마을(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127번 농성장도 6·11 행정대집행으로 철거되었다. 화악산에서 내려온 주민들은 지난 6월26일 마을 입구에 비닐하우스로 사랑방을 지었다. ‘127 여신’ 덕촌 할매(손희경씨·80·제1022호 표지이야기 참조)는 밤낮없이 사랑방을 지키며 손님을 맞는다.

일·밥·이야기 들어주기 잘하면 공주·왕자 등극

열일곱 살에 안동 권씨 집안의 막내아들에게 시집온 할매는 시아버님이 유언처럼 맡기고 간 고향땅을 잃지 않으려 길고 험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 밤 10시쯤 잠드는 할머니는 아침 6시께 사랑방에 나와 종일 머물다 저녁 8시쯤 집으로 돌아간다. 행정대집행 때 갈비뼈를 다쳐 몸이 버겁지만 밭일할 때를 빼곤 하루 꼬박 사랑방을 떠나지 않는다.

할매는 ‘스타’다. 행정대집행 이후에도 위양마을 사랑방엔 할매를 만나러 온 연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부분 127번 농성장 시절부터 덕촌 할매와 연을 맺은 뒤 할매가 보고 싶어 꾸준히 밀양을 찾는 사람들이다.

정수(54)씨는 밀양시의 송전탑 비경과지 주민이다. 지난해 9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덕촌 할매의 사연을 접하고 위양마을에 왔다. 정수씨는 “농성장에서 할매를 만나고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품, 카리스마, 신념 모두 대단하신 분”이라며 “다른 마을도 좋지만 덕촌 할매만 보고 여기 온다”고 했다. 일주일에 2~3일씩 농성장을 찾을 때마다 그는 식구들로부터 ‘언제 오냐’는 전화를 연거푸 받는다. 7월 중순 할매를 찾아왔을 때도 “내일 아침에 간다”는 약속을 사흘이 지나고서야 지켰다.

사진작가 이인우(45)씨는 지난해 10월 처음 밀양에 왔다. 당시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가 부산 지역 연대자들을 127번 농성장으로 이어줘 덕촌 할매를 만나게 됐다. 그때부터 그는 “어머님 두고 딴 데 못 가겠다”며 위양마을을 찾고 있다. 짬이 날 때마다 사랑방에서 ‘살다 가는’ 그는 처음 온 연대자들에게 덕촌 할매와 친해지는 ‘비법’을 전수한다. “실은 ‘할매’라고 부르는 거 싫어하세요. 우리는 ‘어머님’이라고 불러요.”

할매로부터 ‘공주’나 ‘왕자’라는 영예를 얻는 사람들도 있다. 일도 알아서 잘하고, 밥도 잘하면 좋고, 할매 이야기 잘 들어주는데다, 나름의 매력까지 있어야 얻을 수 있다는 이 호칭을 할매는 4명의 공주와 2명의 왕자에게만 내려줬다.

정소연(27·가명)씨는 ‘4대 공주’다. 대학원에서 통역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개장 직후 사랑방을 찾아온 지 하루 만에 공주로 등극했다. 방학을 맞아 밀양에 온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1대 공주’ 정수희씨의 조언을 받아 위양마을에 왔다. 언론과 SNS로 덕촌 할매를 접했던 터라 첫 만남부터 아주 반가웠다고 한다. ‘특별히 사랑받는 비결’에 대해 그는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뭐든 시키지 않아도 먼저 하자”라는 목표가 있었다고 했다. 하루 종일 할매 곁을 한순간도 떠나지 않는 그녀는 “요즘 연대자들 방문이 줄어 할머니 곁을 지켜줄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연대자들 방문 줄어 할머니 곁 지켜줄 사람 없어”

덕촌 할매는 “나는 연대자들이 다른 마을에 가는 걸 싫어한다”고 할 만큼 사람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연대자들은 할매와 함께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위양마을 지킴이’로 거듭나고 있었다. 위양마을 연대의 중심에 덕촌 할매와 사랑방 손님이 있다.

와장창 기자·신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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