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눈물과 땀을 알고 있습니다.
수십 년 전 주민들이 시멘트를 지고 이고 나르며 닦은 길은 오랜 시간 그들의 삶을 잇고 통(通)하며 지탱해왔습니다. 7월16일 아침 그 길(경남 밀양시 산외면 괴곡리 골안마을) 위에서 경찰 책임자가 주민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법 집행기관이니까 여기는 일반교통방해죄에 따라서….”
법은 길의 시간을 알지 못합니다. 송전탑 공사장 진입로가 돼버린 길을 주민들이 울며 막아선 이유를 법은 알려 하지 않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쪼그려 앉은 여든다섯 살 할매가 말했습니다.
“(송전탑) 느그 마당에 갖다 꽂아라.”
할매·할배들이 느리게 오르던 좁고 굽은 길 위를 ‘국책사업’을 태운 준엄한 법이 질주하고 있습니다. ‘질주의 논리’ 깊숙이 뿌리내린 밀양 송전탑은 6월11일 행정대집행 이후 속도를 붙이며 번식하고 있습니다. 철탑이 솟아오를 때마다 마을과 마을, 이웃과 이웃, 윗집과 아랫집, 형님과 아우, 아버지와 아들이 찢기고 있습니다.
과 대학독립언론네트워크의 ‘밀양 농활’ 두 번째 이야기는 송전탑이 쪼개고 나눈 한 마을의 틈을 살폈습니다. 4박5일 동안 그 틈 속에서 농사일을 도운 대학 기자들이 틈의 양쪽을 취재했습니다. 폭력이 책임지지 않는 상처와 갈등 속에서 틈은 점점 벌어져 골이 되고 벽이 되고 있었습니다.
틈 안에서 버티고, 틈으로부터 마을을 지키며, 틈이 만든 간극을 이으려는 노력도 치열했습니다. 중심에 사랑방이 있었습니다. 새보다 먼저 깨어나는 농촌마을에서 송전탑 반대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 주민들은 논일 밭일 짬짬이 모여 사랑방을 일구고 있습니다. 사랑방의 허전함을 채우고, 사랑방에서 밥을 나누고, 사랑방 손님과 대화하면서, 주민들은 장맛비를 이겨야 옹골차지는 가을밤처럼 단단해지고 있었습니다.
“아야 퍼뜩 온나. 가기 전에 한 그릇 후딱 묵어라.”
용회마을 사랑방 주민들이 담아낸 밥은 따뜻하고 뜨거웠습니다. 짧은 농활을 마치고 떠나는 기자들에게 그들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안 졌다. 잊지 말고 또 온네이~.” _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이 만든 4박5일의 농활 영상은 snujn.com/milyan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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