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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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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들어섰는데 어쩌겠노” <찬성>

치열하게 싸웠지만 송전탑 건설이 추진되자 합의로 돌아서기도…
서로 ‘돈을 밝혀서’라며 날을 세우는 주민들
등록 2014-08-08 15:25 수정 2020-05-03 04:27

2013년 10월 이후 경남 밀양시 산외면 괴곡리 마을은 크게 변했다. 송전탑 건설 반대 여론이 확산된 2006년부터 괴곡리는 극렬한 반대 의견을 가진 지역 중 하나였다. 그 시기 마을에 106번 송전탑 건설 공사가 재개됐다. 지난 7월16일 괴곡리마을회관 앞 정자에서 만난 경찰들은 말했다.
“괴곡은 특이하다. 다른 마을은 찬성이면 찬성 분위기고 반대면 반대 분위기인데, 여기는 윗동네(골안)는 반대가 심하고 아랫동네(양리)는 협조한다. 지난해부터 분열이 쭉 심해지고 있다.”
공사가 재개되자 많은 반대 쪽 주민들이 합의안에 서명했다. 괴곡리는 윗마을 골안과 아랫마을 양리로 이뤄져 있으며, 실거주자가 아닌 30가구를 제외하면 56가구가 산다. 2014년 7월 현재 합의하지 않은 가구는 17가구뿐이며, 모두 골안에 있다. 양리에서 만난 주민 14명은 “우리도 반대했으나 10월에 합의를 봤다. 지쳤다”고 했다.
언론은 그동안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하고 시민단체와 연대해 싸우는 주민들에 주로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괴곡리에는 송전탑 건설 찬성과 반대 입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미세한 결들이 존재했다. 4년 전 송전탑건설반대대책위원회 주민대표를 맡았던 사람이 지금은 합의를 보았고, 침묵했던 사람이 지금은 적극적으로 반대시위를 한다. 전열에 남아 있는 자와 이탈한 자 사이, 한참 전에 이탈한 자와 최근 반대로 돌아선 사람 사이의 갈등과 분열이 극심하다.
2005년부터 내내 송전탑 공사에 맞서온 박영순(74)씨는 8년 만에 결국 보상안에 합의했다. “철탑이 안 들어오도록 막을 수만 있으면 도로에 누버 자라 캐도 하겠는데, 몬 막으니 우얄 꺼고. 하다하다 안 되니 지치가지고 마.”
박영순씨는 열아홉 살에 괴곡리에 시집와 다라이(대야)를 이고 다니며 마을 도로를 만들었다. 땀 흘려 만든 도로 위로 한국전력 직원들이 오가는 걸 보면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산에 얼매나 많이 올라갔노. 새벽에 밥 싸가지고 짊어지고 올라가 산에서 묵고, 오후 5시 되면 다시 내려오고, 작대기 짚고 내려오다 구부러지고, 자빠지고, 미끄러지고. 아이고 무시라.”

<font size="3">주민 0.6% 참여한 설명회 뒤 강행 </font>

‘끔찍시러운’ 기억이었다.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며 박영순씨의 무릎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만큼 으스러졌다. 8년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정정했던 남편은 치매가 와 걸핏하면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왔다. 박영순씨가 직접 생계를 꾸려야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합의금을 받았다. “가슴이 아파도 정부에서 하는 일을 우리가 막을 수 없응께. 마음이야 아프지. 아파 죽지. 그렇지만 할매 힘으로 안 돼.” 박영순씨는 지쳤다.
11년간 괴곡리 이장이었던 백남기(67)씨는 말했다. “내도 송전탑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캐도 이미 들어섰는데 어쩌겠노. 츰(처음)에는 한전이 말없이 진행해서 괘씸했고, 또 데모를 하면 내는 그기 안 들어올 줄 알았다. 하지만 이미 들어와삣다. 이래 됐으니 국가가 하는 일이라 먼 미래를 내다보고 합의하기로 캤다.”
백남기씨는 “마을의 분열은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일방적이다. 와 자꾸 단합된 마을을 나누노. 할 말이 있으면 마을 회의에 내려와서, 우리가 좀더 가까우니까 우리가 피해가 큽니다, 우리가 보상금을 좀더 많이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카면 마을 사람들도 바보가 아닌데 누가 반대하겠노. 그런데 자꾸 이렇게 외지인들 끌어들이면 누가 좋아하겠나.”
2년 전까지만 해도 괴곡리 송전탑건설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주민들을 이끌고 밀양시청 앞에서 시위를 했다고 주장한 한 주민은 “반대한 것도 내 자유였듯 지금 찬성하는 것도 내 자유”라고 했다. 옆에 있던 주민이 말을 보탰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몇몇이 일방적으로 합의해버렸다’ 카는데, 회의 안 한 거 아이다. 산에 오르락내리락 몇 년 하는 기 보통 일이고. 어르신들이 ‘이러다 우리 다 죽는다’ 캤다. 몸 상한 할매, 할배가 몇인지 아나. 위쪽(골안)이 송전탑이랑 더 가까우니까 더 피해를 많이 보는 거, 이해한다. 그라모 와서 얘기를 하고 돈을 더 달라고 하란 말이다. 그 일로 감정이 상해가 윗사람들은 우리가 올라가지도 몬하게 한다. 뭐하는 기고.”
괴곡마을회관에 있던 주민들도 말했다. “골안에 우리는 논도 없고 밭도 없고 올라갈 일도 얼굴 볼 일도 없으니 그쪽 사람들도 안 내려왔으면 좋겠고 이쪽 사람들도 올라가지 않을 끼다.”
1978년에 제정된 전원개발촉진법은 유신 악법 중 하나다. 사업자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부터 계획을 승인받으면 19개 법령을 모두 무시하고 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 공사가 예정된 토지 소유주는 일방적으로 설명을 들을 권리와 자신의 토지를 사용할 권리를 박탈당한다. 피해보상은 한전 내부 규정만 따르면 된다. 2004년 한전이 연 설명회에는 송전선로가 지나는 곳에 살고 있는 주민의 0.6%만 참여했다. 한전은 ‘충분한 사전 설명과 적법한 주민 합의를 받았다’는 입장이다. 공사 진행 과정에서 경찰 병력과 용역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반대하는 사람, 반대를 그만둔 사람, 찬성하는 사람 사이에 ‘돈을 밝혀서 합의했거나 합의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심하다. 합의를 본 사람은 변절자가 되었고, 반대하는 사람은 외지인을 끌어들여 마을 공동체를 무너뜨린다며 욕을 먹었다. 마을 간 교류는 모두 끊겼다. 2014년 6월11일 행정대집행 뒤 모든 공사 예정지에서 공사가 시작됐다. 이제 곧 한전과 경찰은 괴곡리 마을을 떠난다. 주민들과 상처는 남는다.

개마고원·낙원상가·밍기뉴·분노의메로나 성균관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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