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6일 성균관대학교는 학내에서 열릴 예정이던 ‘세월호 간담회’의 장소(강의실) 대여를 거부했다. ‘세월호 간담회는 정치 이슈화된 사안’이란 이유였다. 9월22일 이화여대를 시작으로 고려대, 동국대, 연세대 등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대학생들을 직접 만나는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간담회는 유가족들이 직접 각 대학을 돌며 대학생들에게 세월호 특별법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갖기 위한 자리였다. 성균관대 ‘세월호 간담회 기획단’은 결국 강의실이 아닌 학교 정문에서 간담회를 개최해야 했다.
‘여의도 정치’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진상 규명 요구를 점점 옥죄는 상황에서 간담회 강의실 대여를 거부한 대학은 성균관대가 처음이다. 유가족들은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라면서도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대학 설립의 ‘특정 목적’이란
강의실 대여 절차와 기준은 학교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학교 웹사이트에서 빈 강의실 사용을 신청한 뒤 학교 당국의 결재와 승인을 거친다. 성균관대의 경우 행사 주체, 인원, 목적 등을 써넣어야 한다. 사이트엔 “행사 내용과 목적이 신청사항과 실제가 다를 때, 혹은 행사로 인한 문제가 생겼을 때 학칙에 의거하여 어떠한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실제론 학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학교에 강의실 대여 규정이 있냐고 물어봤지만 행정실은 ‘솔직하게 없다. 우리끼리의 약속’이라고 답하더라.” 간담회 기획단의 신민주(21·유학동양학부) 학생은 전했다.
성균관대 세월호 간담회 기획단의 항의 서한조차 받지 않았던 학교 관계자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정치적인 문제만으로 거부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강의실은 강의를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그 외의 목적으로 사용을 허가해줄 수 없다”며 “사회적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를 왜 특정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논의하려 하냐”고 반문했다.
이쯤 되면 학교가 생각하는 대학 설립의 ‘특정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해당 관계자는 세월호 간담회를 ‘외부인의 개입’이라며 거부하면서도 “(외부에서 온) 취업이나 진로 관련 특강은 막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의견이 대학 당국 전체의 시각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학교가 ‘대학’과 ‘강의실’이라는 공간, 그리고 강의실에서 행해지는 ‘교육’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알 수 있다. 정치는 교육의 연장선에 놓일 수 없지만 취업은 놓일 수 있다는 뜻이다. 성균관대 관계자 가라사대, 대학은 역시 취업을 위한 관문이었다. 대학 당국이 이렇게 솔직하게 대학의 본분을 밝히다니!
고려대에서 열린 성신여대 신입생 환영회대학이 강의실 대여를 거부한 것은 비단 세월호 유가족한테만은 아니다. 성균관대 생태주의 자치동아리 ‘녹턴’은 올해 초 세미나 개최를 위해 세월호 기획단과 동일한 절차를 거쳐 강의실을 대여하려 했다. 그러나 학교 쪽으로부터 ‘확인되지 않은 단체’에는 강의실을 대여해줄 수 없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녹턴은 객관적이지 않은 학교의 강의실 대여 방침에 항의했지만 끝내 거부당했다. 성균관대의 ‘확인된 단체’라고 할 수 있는 중앙동아리 ‘노동문제연구회’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려고 했으나 학교 쪽은 역시 ‘민감한 사항’이라며 강의실 대여를 거부했다. 이를 취재해 기사화하려던 은 지난해 10월 주간교수와의 마찰로 정간을 당했다.
지난해 4월 덕성여대에서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등 진보 인사들이 참여한 강연회를 불허했다. 덕성여대 학생처장은 공문을 통해 “해당 강연회는 정치활동으로 보일 수 있어 불허한다”고 밝혔다. 2008년 서강대에서도 진중권 교수의 강연회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학교는 ‘정치색이 짙다’며 대형 강의실 대여를 거부했다. 결국 학교 인근 광장에서 강연회를 진행해야 했다.
2012년 성신여대 신입생 환영회는 엉뚱하게도 고려대에서 열렸다. 행사를 주도하던 사회대 학생회에 학교가 ‘정치적 내용이 들어간 행사는 강의실을 대여해줄 수 없으니 무슨 내용의 행사인지 밝히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학생회는 ‘행사 검열’이라며 반발했다.
올바른 시민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 중 하나는 사회와 정치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갖는 것이다. 사회학과와 정치외교학과를 둔 학교가 사회와 정치 자체를 터부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성균관대의 세월호 간담회 사태는 학교가 사회와 정치를 교육이란 잣대로만 재단해 좁은 틀 안에 가두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죽은 활자로만 공부하는 사회와 정치가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학생들이 살아가는 동시대 사회의 양상을 분석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한 배움이며, 또 배움을 가능케 하는 것이 대학의 기능이다. 말이 흐르는 곳이 대학이다.
학교가 교육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좁혔다고 해서 학생들이 받을 교육의 범위까지 좁혀지진 않는다. 대학 안에서야말로 사회·정치적 이슈를 일상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강의실이 그런 공간이 될 수 없다면 다른 공간을 제공하면 된다. 적어도 서로가 정치성 정도는 확인해볼 수 있는 공간, 혹은 정치성을 고민해볼 공간이 있어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학교의 논리대로 강의실이 ‘순수 학습’만을 위한 공간이라면, 학생들이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한다. 강의실이 면학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 곧 학생 자치를 위한 공간이 없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간담회 기획단에서는 학교로부터 ‘그런 공간은 없다’는 대답만을 들었다. 성균관대 안에서 학생들이 학교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한정돼 있고 그나마 있는 장소도 협소하다.
면학을 위한 공간만 있는 학교그렇다면 대학생은 어디에서 정치를 경험해야 하는가. 언제부터 대학은 정치라는 말을 무서워했나. 성숙한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려면 끊임없이 정치를 경험해야 한다. ‘정치’라는 단어는 끊임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야 하고, 대학생들은 가는 곳마다 정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경험은 소수의 유별난 사람들이 평범한 대학생들과는 동떨어진 장소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희망제작소의 김미경 연구원은 정치교육 연구논문에서 정치가 평생교육으로 진행되는 독일의 사례를 들며 “정치교육은 지식 습득을 넘어 생활 속에서 체험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교육은 인생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쿨하지 못하고 지긋지긋한’ 것으로 여겨지는 ‘정치’라는 단어는 골방에서 밝은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 일상의 경계 밖으로 내몰린 정치를 대학생의 일상적 공간인 캠퍼스로 복귀시켜야 한다. 모두가 한마디씩 보탤 수 있는 광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광장은 대학생 삶의 구석구석이며, 그들의 터전인 대학이어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의 말이 흐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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