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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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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 국제전형, 그 예정된 파국

전·현 정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검경 조사 받고 있는 ‘1+3 국제전형’…

무책임한 교육부 뒤에서 대학은 자신만만, 폭탄돌리기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학부모에게
등록 2014-10-15 16:04 수정 2020-05-03 04:27

“나는 중앙대 학생이 아니다.”
중앙대의 ‘1+3 국제전형’을 통해 미국의 한 대학교로 유학 간 학생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중앙대 학생이라는 인식은) 아예 없고 이제 미국 대학교 학생”이라고 했다. 1+3 국제전형 문제로 전·현 정부의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들이 검경 수사를 받게 되면서 제도의 허상이 다시 부각된 직후였다. 본교 학생인지 분명치 않은 학생들을 선발해 외국 대학으로 유학 보내고 그 수익을 대학과 유학원이 나눠갖는 구조는 1+3 국제전형이 ‘예정된 파국’을 피할 수 없었던 단면을 보여준다.

“일종의 기부입학제 아니냐”

이명박 정부 말기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던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왼쪽)과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 3개월 만에 사퇴한 송광용 전 교육문화수석. 두 사람은 최근 ‘1+3 국제전형’ 문제로 잇따라 검경 수사를 받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이명박 정부 말기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던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왼쪽)과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 3개월 만에 사퇴한 송광용 전 교육문화수석. 두 사람은 최근 ‘1+3 국제전형’ 문제로 잇따라 검경 수사를 받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최근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이 경찰에 입건됐다. 그가 실시한 ‘1+3 국제전형’이 고등교육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그의 입건 직전에 급작스럽게 사퇴한 송광용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도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박범훈 전 총장은 중앙대의 마지막 직선제 총장이자 첫 임명제 총장이며, 전 재단의 마지막 총장이자 두산 재단의 첫 총장이다. 대규모 학문단위 구조조정과 교지 탄압, 학생 징계 등 두산 재단의 광폭 행보를 책임지고 수행한 총장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는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 더 잘 알려진 사람이다. 2011년 2월 총장 임기가 끝나기 무섭게 취임해 2년간 역임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선거캠프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폴리페서’ 논쟁을 촉발하고 대선 직후에는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지명(이후 고사)됐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번 사건은 대학 총장 경력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라는 ‘힘’이 대학의 탐욕과 만난 결과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총장 임기 중에 문제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전형을 도입해 ‘돈벌이’를 하고, 이후에는 교육문화수석으로서 제도 유지를 위해 교육부에 압력을 넣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1+3 국제전형은 유학원과 연계한 일종의 유학 프로그램이다. 한국 대학에서 1년간 교환학생 자격으로 어학 및 교양 과정을 이수한 뒤 협약을 맺은 외국 대학의 2학년으로 편입해 나머지 3년을 다닌다. 수능을 반영하지 않고 낮은 비중의 고등학교 내신성적과 높은 비중의 심층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외국 대학이 요구하는 어학점수에 미달하거나 대입시험을 보지 않아도 해당 전형으로 편입이 가능해 일각에서는 일종의 기부입학제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이 한 해 동안 지불해야 할 돈이 2천여만원에 달했다. 이 돈을 유학원(35%가량)과 한국 대학(50%가량), 외국 대학(15%가량)이 나눠갖는다.

‘유학 브로커’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이 전형이 개설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교육부의 ‘대학 자율화’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교육부가 2008년 8월 ‘국내 대학과 외국 대학과의 교육과정 공동운영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국내 대학과 외국 대학의 공동명의 학위 수여를 가능하게 하면서 빈틈이 생겼다. 당시 교육부는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교육과정을 평가함으로써 단순히 외국 대학 학위 취득만을 위한 수단으로 제도가 악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의지는 말로만 남았다. 2010년을 전후해 중앙대를 포함해 송 전 수석이 총장으로 있던 서울교대와 서강대, 한양대, 한국외국어대 등이 교육부의 승인 없이 전형을 개설했다. 중앙대는 박 전 총장이 재임 중이던 2010년 3월부터 전형을 신설했다.

합격 듣자마자 폐쇄 명령 접한 13학번 지원자

교육부는 방관했다. 관련 규제 법령이 미비하다는 이유였다. 2010년 중순에야 중앙대에 전형 운영의 법적 근거를 요구했다. 대학은 자료 제출을 거부했고, 교육부는 이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정권 말기인 2012년 11월 말에 가서야 전형 폐쇄 명령을 내렸다. 전형이 국내 학위와 무관하므로 앞서 공동명의 학위 수여를 가능하게 한 규정의 취지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중앙대는 폐쇄 명령을 받아들였다. 전형 합격자가 발표된 이후였다.

대학은 자신만만했고 교육부는 무책임했다. 대학에 법적 근거를 요구한 이후 전형 폐쇄 명령을 내리기까지 2년의 기간 동안 박 전 총장이 교육부에 힘을 쓰지 않았겠느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수사 시기가 조금만 빨랐다면 현직 교육문화수석으로서 불명예 퇴진하는 주인공은 송 전 수석이 아닌 박 전 총장이었을 수도 있다.

폭탄돌리기 게임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전형에 지원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몫이었다. 유학을 위한 가장 좋은 길이라며 홍보했던 프로그램은 교육부와 협의도 되지 않았을 만큼 위태로웠다. 특히 2013학년도 전형에 지원한 이들(13학번)은 합격 소식을 들은 바로 다음날 교육부의 폐쇄 명령 소식을 접해야 했다. 꼼짝없이 합격이 취소될 판이었다.

학부모와 합격자 학생들은 ‘교과부 폐쇄 명령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과 ‘전형 폐쇄 명령 취소소송’을 내는 등 긴 법정싸움에 돌입했다. 이듬해인 2013년 1월에는 학부모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했다. ‘교육부 방침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대학본부와 ‘대학이 책임지고 학생들을 보호하라’는 학부모가 맞섰다. 농성 둘쨋날 가처분 신청이 일부 인용되는 것으로 판결이 났고, 셋쨋날 취소소송이 확정될 때까지 원안대로 학생들을 보호하겠다는 대학본부의 입장이 나왔다. 농성은 3일 만에 끝났다.

지난 9월 취소소송은 항소심에서 각하 판결로 마무리됐다. 그사이 전형을 통해 마지막으로 입학한 13학번은 국내 1년 과정을 마치고 미국의 C대학으로 편입했다. 소송을 제기한 학생들이 “이미 중앙대에서 학점 취득을 마치고 이를 인정받아 C대학에 다니고 있어 폐쇄 명령 취소 여부에 따라 법률적 지위에 아무런 변동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각하의 이유였다. 폐쇄 명령은 그대로 유지돼 전형은 되살릴 수 없게 됐다. 사태는 별다른 피해자 없이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다.

업무 담당은 모르쇠, 소식 접하는 유일 통로가 언론

하지만 사태를 만든 장본인들이 아직 남아 있다. 판결 2주 뒤 박 전 총장이 입건됐다. 대학본부는 사태를 완전히 잊은 것처럼 행동했다. 관련 업무를 담당한 대학 국제교육팀은 후속 처리를 묻는 의 질문에 “이미 종료된 업무”라는 말만 했다. 중앙대 학생들이 사태의 추이를 접할 수 있는 통로는 외부 언론이 유일했다. 언론의 대학평가 결과는 발표 즉시 홍보하면서, 정작 알리고 해명해야 할 문제에는 침묵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송 전 수석이 단순히 고등교육법을 위반해 사퇴했다고 보기엔 ‘사안이 너무 가볍기 때문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자와 교육기관이 고등교육법을 위반한 것만 해도 결코 가벼운 일은 아닐 것이다.

1+3 국제전형 사태는 단순히 대학본부가 법적 절차를 착오해 일어난 일이 아니다. 대학을 장사의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는 대학본부의 사고방식이 빚어낸 필연적 결과다. 그런 사고방식을 성찰하지 않으면 언제 또 비슷한 사태가 터질지 모른다. 지금의 침묵과 방관은 정당하지 못하다. 경찰 조사와 별개로 중앙대 차원에서 경위 조사와 책임자 처벌, 그리고 대학본부가 입버릇처럼 내세우던 ‘대학 이미지’를 추락시킨 박 전 총장에 대한 납득할 만한 조처가 필요하다. 대학은 교육기관이란 당연한 사실을 포기하지 않겠다면 말이다.

김펄프 중앙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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