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이사장님께.
이사장님께서 얼마 전 에 쓴 칼럼 잘 읽었습니다. ‘인문학이 바로 서야 대학이 산다’(6월30일)는 제목의 글이었지요. 인문학과 구조조정이 수차례 단행된 중앙대 학생으로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는 제목이었습니다. “모 대학의 2014년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신 대목은 특히 의아했습니다. 이사장님께서는 설문에 따르면 “인문학 신입생 가운데 전과를 원하는 학생이 52%로 절반을 넘고, 복수전공 희망자는 80%에 육박한다”면서 “사회와 대학이 심각한 부조화 속에 놓여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 칼럼이 나오기 며칠 전 중앙대는 ‘사회가 원하는 인재 육성을 위한 설문조사’(6월2~27일)를 시행했습니다. 학과에 만족하는지, 전과를 하고 싶은지, 전과를 하고 싶다면 어느 학과로 하고 싶은지를 묻는 ‘직설적인 질문’이었습니다. 학내에선 이 설문 결과가 향후 대학 구조조정의 지표로 사용될 것이란 소문이 돌았습니다.
학과 구조조정 비판 목소리에 재갈
설문조사가 끝나고 일주일 뒤인 7월4일 학내 커뮤니티에 ‘학문단위 구조개편 방향에 대한 의견 수렴’이란 글이 올라왔습니다. 작성자는 행정부총장님이셨습니다. 부총장님께서는 “80% 가까이 복수전공을 희망하는 학생이 있는 분야도 존재한다”며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는 앞으로 우리 대학 학문단위 편성과 학사운영 방식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주기에 충분한 자료라고 생각한다”고 밝히셨습니다.
복수전공 희망 학생 80%. 이사장님께서 인용한 설문의 수치와 비슷해 보입니다. 중앙대 이사장님께서 중앙대를 ‘모 대학’이라고 표현하시며 이 설문 결과를 인용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총장님께서는 “이(설문조사의 시사점)에 관해서는 이사장님께서도 6월30일자 칼럼을 통해 의견을 밝히신 바 있다”고 부연하셨습니다.
이사장님의 칼럼을 읽으며 특히 숨이 막힌 대목이 있었습니다. “공학이 만들고, 경영학이 팔고, 인문학이 비판한다.” 대학은 무엇이고 인문학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해 이사장님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이사장님께서는 인문학이 갖는 비판적 기능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중앙대 학생으로서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학에 입학해 지금까지 크고 작은 구조조정을 두 차례 경험했습니다. 그때마다 학교본부는 비판하는 학생들에게 징계 위협을 가하거나, 실제로 징계했습니다. 비판적 목소리를 낸 교지는 전량 강제 수거하고, 발행 예산을 전액 삭감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최근에는 꾸준히 학교본부의 비판자로 활동하던 철학과 김창인씨가 학교를 자퇴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인문학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혹시 마지못해 비판적 기능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건 아닌지요?
‘인문학이 바로 서야 한다’면서도 이사장님은 이상한 결론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세 단계 구조를 줄여서 공학도나 경영학도에게도 복수전공의 문을 넓혀 인문학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의도 혹은 목적은 다음 문장에서 밝히셨습니다.
마음 놓고 학문할 수 있는 기반을“이렇게 되면 대학에서 많은 인문학 관련 학과를 두지 않고도 인문학의 저변을 확산시켜나갈 수 있으며, 국가적으로도 속도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이 된다. 그 교육을 담당할 인문학자는 대학원에서 양성하면 되기 때문에 인문학 관련 학과는 대학원으로 이동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타당한 구조다.”
대학에서 인문학과를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사장님께서는 이렇게 풀어내셨습니다. “단순히 진학만을 목표로 하는 학생은 경쟁이 심한 경영·경제 계열이나 공학계열보다는 언어·문학이나 인문학 쪽을 선택한다”는 말씀에선 인문학과 학생들을 바라보는 이사장님의 생각을 재확인할 수 있어 답답했습니다.
이사장님께서 말씀하시는 ‘인문학’이 어떤 인문학인지 궁금합니다. 칼럼 서두에 “인간미가 부족하다는 지적과 함께 인격적 소양과 올바른 성품 등을 더 가르쳐야 한다는 사회적 필요”가 최근의 ‘인문학 열풍’을 낳았다고 하셨습니다. 그것들은 분명 ‘인문학적인’ 교양입니다만, ‘비판하는 인문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비판하는 인문학’은 인간을 세계와의 연관 속에서 성찰하고 빠르게 발전하는 세계에서 느릿하게 균형을 잡아가는 학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진실로 죽어가고 있는 인문학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는 지속적이고 튼튼한 물적 기반 위에서만 가능한데, 바로 그 기반이 파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를 꿰찬 것은 성찰이 결여된 경쟁 논리입니다. 방법이 조금 틀렸어도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편의주의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불러온 원인이 바로 그런 것들 아니었습니까? 이윤으로 뭉친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 사람과 화물을 조금이라도 더 싣기 위해 선체를 개조하고 서류를 위조한 청해진해운, 자극적인 기사로 시청률과 구독률을 올리려는 언론들…. 그들은 그 논리를 성실히 따랐고, 잘못하고 있다는 성찰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보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이사장님 말씀처럼 인문학이 바로 섰다면, 우리 사회가 인문학이 비판하는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우리는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을 만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이사장님께 생각을 바꿔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아는 한 박용성 이사장님은 (그것이 어떤 방향이든 간에) 대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발언해온 사람 중 한 분입니다. 대학 교육에 대한 이사장님의 지대한 관심을 정말 옳은 방향으로 표출해주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엔 인문학을 바로 세우는 일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그것이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학이 맡아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놓고 학문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십시오. 구조적으로 지금의 대학은 어떤 학문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인문학은 물론 경영학과 공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르치는 교수는 평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논문의 질보다는 양에 매달려야 합니다. 낮은 등급을 세 차례 받으면 교수 연구실을 회수하기까지 합니다. 배우는 학생은 학문에 대한 관심이 아닌 더 ‘학점을 잘 주는’ 강의를 택합니다. 어떤 강의는 수강생이 100여 명에 육박해 교수와 말 한마디 나누기 어렵습니다. 대체 이런 조건 속에서 인문학뿐만 아니라 어느 학문이라도 마음 놓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인문학과 학생들의 미래가 걱정되기 때문에 그들의 터전을 빼앗겠다는 이사장님의 생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건 걱정을 없애주기 위해 더 큰 걱정을 안겨주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학과를 없애는 것은 불안이라는 이름의 불구덩이로 그들을 밀어버리는 일일 뿐입니다. “4천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고 밤을 새우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학을 다녔는데도 졸업하고 일할 곳이 없는 참담한 현실”에 놓인 학생들이 걱정된다면 그 현실을 바꾸자고 말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아르바이트하지 않고 학문에 몰두할 수 있도록 등록금을 낮추고, 대학 졸업자들이 일하고 싶다면 언제든 일할 수 있도록 청년 일자리를 늘리자고 말하는 것이 더욱 설득력 있습니다. 이사장님께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영향력이 있지 않습니까.
주변 친구들이 처음 꺼낸 말 “괜찮겠냐?”은 필명으로 글을 쓰고, 저도 이 편지를 필명으로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장님의 칼럼을 비판하는 편지를 쓴다 하니 주변 친구들이 처음 꺼낸 말은 “괜찮겠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물음에 중앙대의 현실이 담겨 있습니다. 이 현실이 비판과 자정의 마지막 보루인 인문학과라는 기반마저 잃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김펄프 중앙대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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