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직후,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전문가 11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에 침몰 원인 분석을 의뢰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선임 심판관 출신 허용범(63) 자문단 단장은 9월16일 광주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임정엽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세월호 선장·선원에 대한 15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자문단 분석 내용 일부가 외부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월호 침몰에 대한 자문단 분석 결과는 이렇다. “복원성이 매우 불량한 세월호 조타수가 조타기를 오른쪽으로 과하게 돌렸고, 화물 이동으로 인한 충격이 더해져 침수·침몰로 이어졌다.” 참사 당일 세월호의 과적 상태 등을 고려해보면 조타기를 35도까지 돌릴 경우 20도 내외의 횡경사(배가 회전할 때 선체 반대쪽으로 기우는 것)가 나타날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사진에 찍힌 커튼의 모양과 선체 외관 등으로 볼 때 세월호는 왼쪽으로 30도가량 기울어져 있었다. 배가 30도까지 기울어진 요인은 횡경사로 인해 화물이 이동하면서 선체에 충격이 가해진 결과라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뒷받침한다.
사라진 29초 동안의 세월호 AIS 자료자문단 분석은 세월호 사고 전후 선박자동식별장치(AIS)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이 자료를 통해 선수방위·선회각·선회각속도·전진속도 등을 알 수 있다. 어떤 식으로 조타가 이루어져야 사고 당시 항적이 나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세월호 시운전 기록을 검토했다. 그 결과 35도 전타로 시운전을 했을 때와 사고 당시 항적이 유사했다. 사고 당시 조타는, 최대 35도까지 조타기를 돌렸을 때와 유사한 효과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해양수산부에서 취합한 세월호 사고 전후 AIS 자료에는 정보가 빈 구간이 있었다. 최종 AIS 자료에도 29초간 정보가 누락돼 있다. 이 시간대에 정전 가능성 등이 제기된 바 있다. 허 단장은 AIS 자료 누락은 드문 일이 아니며 데이터 조작이나 정전 가능성, 조타기 고장도 없었다고 밝혔다.
검사: AIS 신호가 끊긴 것은 세월호 정전이나 조타기 이상, 주발전기 이상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허 단장: 선원과 면담 당시, 우선회할 때 메인 엔진이 돌아갔다고 했다. 발전기가 돌아갔다는 의미다. 3등 항해사도 조타기 알람이 울려 껐다고 했다. 조타기가 중립으로 가 있었다는 것도 발전기에 이상이 없었다는 의미다. 진도나 목포 해상교통관제센터는 수십·수백 척의 (AIS) 데이터를 받는다. 데이터가 충돌하는 경우, 안테나나 경사도에 따라 수시로 없어진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검사: 사고 이전이나 이후 AIS 자료에 특이사항이 있었나?
허 단장: 사고 원인에 영향을 미칠 만한 특이사항은 없었다.
세월호가 외부 물체와 충돌해 좌초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계속되고 있다. 해양경찰청이 심상정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영상을 보면 침몰하는 세월호 바닥에 약한 마찰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허 단장은 세월호가 외부 물체와 충돌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초당 60cm 조류에도 영향받은 조타검사: (선체 사진을 제시하며) 하얀 부분이 보이나? 암초 등과 충돌한 흔적으로 보이는가?
허 단장: 항적상 (충돌이 아닌) 정상적인 선회각도를 보였다. 단순한 변색이 아닌가 생각한다.
재판장: 쾅 소리가 난 다음에 사고가 있었다는 일부 승객 진술이 있다. 분석 결과는 배가 기울고 난 다음에 화물이 떨어졌다는 것인데.
허 단장: 조사 기록을 보니 쾅 하는 소리가 배가 기울기 전이냐 후냐 왔다갔다 하더라. 쾅 소리가 난 요인은 외부 물체와 화물 두 가지로 나눠봐야 하는데, 배 선수 왼쪽, 선미 상부나 하부, 마지막까지 수면 위에 있었던 선수 부분에 충격 흔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선체 내부 물체가 쾅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배가 돌기 전에 풍랑을 만난 것도 아니므로, 배가 기울어진 뒤 쾅 했다는 진술이 맞다고 보았다.
조타수는 왜 큰 각도로 조타기를 돌렸다는 것일까. 자문단은 조타수가 5도 타각으로 우현 변침을 시도했지만, 배가 움직이지 않자 최소 15도 이상의 각도로 조타기를 돌렸다고 보았다. 허 단장은 조타기를 5도 돌렸을 때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조류’를 지목했다. 사고 지점인 병풍도 부근에서 조류가 바뀌었는데, 이러한 정황을 조타수가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변호인: 사고 당시 유속(물이 흐르는 속도)이 초당 60cm밖에 안 됐다. 이 정도 조류로 조타가 안 됐다는 것인가?
허 단장: 당시 조류는 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배 성능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물의 밀도는 공기의 800배다. 배 면적이 넓을수록 미는 힘이 커질 것이다.
변호인: 대형 여객선도 이 정도 조류에 영향받나?
허 단장: 받는다.
변호인: (배가) 오른쪽으로 계속 쏠리니까, 조타수는 좌현으로 타를 사용했는데, 사고 직전에는 타가 안 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허 단장: 조타수를 만났을 때 직접 물었다. 고장났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조타기가 돌아가긴 했는데 원하는 대로 (배가) 안 돌아간 건지. ‘타 효과가 안 먹었다는 이야기죠?’ 했더니 ‘그게 맞습니다’라고 했다.
허 단장은 세월호를 운항해서는 안 되는 위험한 배라고 설명했다. 세월호 선장 신아무개씨가 3등 항해사 등에게 복원성이 약하므로 5도 이상 타각을 쓰지 말도록 교육했다는 진술이 이런 상황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는 운항 중 충돌 위험이 생겨도, 급하게 방향을 바꿀 수 없으므로 섬과 좁은 수로를 이리저리 피해야 하는 항로에선 운항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준석 선장에게 ‘도대체 이런 배를 불안해서 어떻게 탔느냐’고 했다.” 정상적인 배라면 좌우 35도까지 조타기를 돌려도 횡경사가 복원돼야 한다.
살인·유기의 고의, 언제 발생했는가?재판부는 9월17일 공판에서 공소장 변경을 요구했다. 재판장인 임정엽 부장판사는 검찰 쪽에 “통상 살인 행위의 경우에는 고의 발생 시기를 적시한다. 피고인들에게 살인의 고의나 유기의 고의가 언제 발생했는지 증거 조사를 기반으로 제시해달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준석 선장, 1등 항해사, 2등 항해사, 기관장 등 4명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승객이 아닌 숨진 선원까지 구호 의무를 진다고 본 법률 근거 △배가 기울면서 다친 경우는 ‘유기’ 행위와는 관련이 없으므로 피해자 상해 정도를 구체화해줄 것 △사고 지점이 좁은 수로로 분류되는 맹골수도에 해당하는지 △3등 항해사의 조타 지시 방법이 과실에 해당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보완해달라고 주문했다.
광주=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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