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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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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작업 엇갈린 증언

세월호 선원 재판 14차 공판에서 “급변침 전 배 흔들렸다”는 증언 나와…

부상 입은 동료 두고 고무단정 올라탄 무책임한 선원들
등록 2014-09-18 15:09 수정 2020-05-03 04:27

세월호 선원 재판(광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임정엽)이 중반을 넘어섰다. 9월2~3일 열린 13차, 14차 공판에는 피고인인 선원들이 증인석에 앉았다. 원래 재판부는 이틀간 기관장을 제외한 기관부 선원 6명의 증언을 들을 예정이었으나 검사 쪽과 피고인 쪽의 질문이 많아 3명의 증언을 듣는 것으로 끝났다. 이틀간 증언한 선원은 1기관사 손아무개씨, 3기관사 이아무개씨, 조기수 이아무개씨다. 남은 선원들의 증언은 9월 말로 미뤄졌다.

법정에 선 최초 탈출 세월호 선원들

검사 쪽의 질문은 주로 사고 당시 기관실 내 선원들이 어떻게 행동했는가, 그리고 사고 직후 기관부 선원들이 어째서 승객 구조 활동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데 모아졌다. 기관부 선원들은 사고 뒤 세월호 3층 좌현 기관부 선원용 객실 앞 복도에 7명 전원이 모였다가 해경 고무단정을 타고 탈출했다. 세월호에서 최초의 탈출이었다.

세월호 선원 재판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선원들이 증인석에 앉아 사고 당시를 진술하기 시작했다. 4월16일 오전 10시21분 세월호에서 먼저 탈출한 선원이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123정에서 통화하고 있다. 뒤늦게 구조된 승객 6명이 구명정에서 123명으로 옮겨타는 모습이 뒤쪽으로 보인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세월호 선원 재판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선원들이 증인석에 앉아 사고 당시를 진술하기 시작했다. 4월16일 오전 10시21분 세월호에서 먼저 탈출한 선원이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123정에서 통화하고 있다. 뒤늦게 구조된 승객 6명이 구명정에서 123명으로 옮겨타는 모습이 뒤쪽으로 보인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3기관사 이아무개(25·여)씨는 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승선한 배가 세월호였다. 이씨는 조기수 박아무개씨·이아무개씨와 함께 사고 당시 기관실에서 당직 근무 중이었다. 기관실은 세월호의 최하단에 있고, 당직 근무자들은 주로 컨트롤룸에서 기기 작동, 오일, 압력 상태 등을 점검하거나 기관실을 순찰하며 필요한 작업을 한다.

검사 쪽은 3기관사 이씨에게 사고 당일 한 작업에 대해 추궁했다. 검사는 세월호 선내에서 발견, 복원된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재생했다. 이 CCTV에 선원으로는 유일하게 이씨만 등장하는데, 이씨는 4월16일 아침 8시께부터 약 30분간 청테이프를 엔진 실린더와 연결된 파이프 주변에 네모나게 붙이고 있다. 인터넷상에선 이씨가 세월호 사고와 관련된 ‘수상한’ 작업을 한 것 아닌가, 혹은 세월호에 사고 이전에 심각한 기기 이상이 생겨 고치고 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검사: 피고인, 저 영상의 인물이 피고인 맞습니까?

이씨: 예.

검사: (CCTV 기록상) 아침 8시경으로 보이는데 실제로도 저 시간이 맞나요?

이씨: 제 기억으로는 7시50분쯤부터 사고 5분 전까지 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검사: 메인 엔진 옆 검은색, 연두색으로 이뤄진 파이프에 청테이프를 사각형 모양으로 붙이고 있는 것 맞나요?

이씨: 예. 페인트칠을 하기 위해 테이프 작업을 한 것입니다.

검사: 왜 페인트칠 하기 전에 테이프를 붙이나요?

이씨: 전날 기관장님이 파이프의 발 디디는 부분이 지저분하니 검은색을 덧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검은색 부분과 주변 연두색 부분의 경계를 깔끔하게 하자고 하면서 테이프를 네모로 붙여놓고 페인트칠한 다음 테이프를 뜯어내자고 해서 저렇게 했습니다.

엔진 실린더 연결 파이프에 왜 청테이프를?

검사는 혹시 파이프에서 공기가 새서 청테이프를 붙인 건 아니냐고 질문했다. 즉, 중요한 기기 결함은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씨는 자기가 테이프를 붙인 곳은 색깔만 검은색과 연두색으로 다르지 이음새가 아니어서 공기가 새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검사가 재차 “용접을 해야 하지만 일단 청테이프로 막고 제주에 입항하면 수리하려던 것 아니냐”고 질문하자 이씨는 “청테이프를 아끼려고 절반으로 쪼개 붙였는데, 급박한 상황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선원들의 작업과 관련해 더 많은 CCTV 기록이 남아 있었다면 사고 원인 규명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어째서 CCTV가 조타실 등 다른 작업 현장엔 없는지 그 이유를 밝힐 필요가 있다.

당직 선원들이 기관실 컨트롤룸에서 잠시 쉬는 동안 세월호가 좌현으로 기울었고 선원들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들은 조타실의 기관장 박아무개씨로부터 “빨리 탈출하라”는 지시를 받고 D데크(1층)와 C데크(2층)를 지나 B데크(3층)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사고 당시 정황에 대한 조기수 이아무개(54·남)씨의 증언은 다른 승객, 선원들과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검사: 당직 근무 중에 배가 이상한 점이 있었나요?

조기수 이씨: 예. 8시40분에 배가 옆으로 흔들렸습니다. 사고 5분 전에 배가 옆으로 흔들리다가 슬슬 넘어지면서 냉장고도 넘어지고….

검사: 주요 기관에는 이상이 없었나요?

이씨: 정상이었습니다.

검사: 사고가 발생한 걸 어떻게 알았나요?

이씨: 배가 좌우로 흔들려서 알았습니다.

사고 전부터 배 흔들렸다는 이씨

다른 선원이나 생존 승객들은 대체로 “배가 특별한 징후가 없다가 갑자기 휙 기울었다”고 말했는데 조기수 이씨는 사고 5분 전부터 배가 “좌우로 흔들렸다”고 증언했다. 이씨가 진술 내내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이 증언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 증언은 세월호의 전복 원인에 대한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검찰은 4월16일 아침 8시48분 이전에는 세월호가 별 이상 없이 운항했고 갑자기 급변침한 것이 사고 원인이라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실제 배가 사고 이전부터 좌우로 흔들렸다면 다른 사고 원인이 있거나 적어도 검찰의 설명보다 원인이 훨씬 복합적일 수 있다.

하지만 사고 원인이 무엇이냐와는 별개로, 승객을 두고 탈출한 기관부 선원들의 무책임한 모습은 지켜보는 방청객들을 분노하게 했다. 1기관사 손아무개(57·남)씨는 선원 생활 28년의 베테랑이면서도 당시 너무 당황해서 상황 판단을 못했다고 대답했고, 자주 “기억이 안 난다”며 말을 머뭇거렸다.

검사: 왜 평소 비상시 훈련받은 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습니까?

손씨: 조타실에서 아무런 지시가 없었고, 기관장님도 아무런 지시를 안 했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심지어 미끄러져 중상을 입은 동료 직원인 조리부 김아무개씨와 이아무개씨를 복도에 남겨둔 채 나왔고 해경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다. 그들이 해경 고무단정에 올라탄 지점에서 선수 쪽으로 20여m만 가면 3층 로비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있다. 출입구를 열고 승객들에게 “해경이 왔으니 빨리 나오라”고 한마디만 하면 되었으나, 그들은 자신들만 고무단정에 올랐고 신원도 밝히지 않았다. 복도에 남겨놓은 동료 직원들은 그곳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이가 없는 잔인한 추석”

14차 공판이 끝날 시점, 경기도 안산 단원고 고 제세호 학생의 어머니가 피해자 진술로 “아이가 없는 잔인한 추석을 맞게 됐다”며 “억울하게 죽은 아이의 눈물을 닦게 진실을 밝혀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오준호 작가·번역가·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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