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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눈물에 응답하라

단식 40일째 병원으로 이송된 김영오씨
등록 2014-08-26 18:00 수정 2020-05-03 04:27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기소권을 주는 내용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을 해온 김영오씨가 단식38일째인 지난 8월20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분수대까지 걸어갔다가 경찰에 가로막히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기소권을 주는 내용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을 해온 김영오씨가 단식38일째인 지난 8월20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분수대까지 걸어갔다가 경찰에 가로막히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고목처럼 생기를 잃은 몸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딸을 잃은 지 129일,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며 단식을 시작한 지 40일. 살아 있는 것들이 살아남기 위해 유지해야 할 모든 생체 수치가 정상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지난 8월22일 아침 8시, 구급차량에 실려 서울시립동부병원으로 이송된 김영오(47·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2학년10반 김유민양의 아버지)씨의 몸에 남은 것은 그 한 방울의 눈물뿐인 것처럼 보였다.

단식 과정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점이 단식 35~40일차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달라며 김영오씨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자 그의 건강을 우려하는 시민들 사이에는 단식 중단을 청하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제발 단식 그만하시고 건강 회복하셔서 같이 싸워요.” “기운 차려서 특별법 제정 다 함께 꼭 이루어내야지요.” 1만5천 명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동조단식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김씨의 주치의인 이보라 시립동부병원 내과 과장은 “정상인의 혈당 수치가 80~120mg/dℓ인데, 8월21일 밤 김영오씨의 혈당 수치는 67mg/dℓ, 병원에 와서는 55mg/dℓ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심각한 현기증을 유발한다. 간 수치도 정상 범위를 벗어나 있다”고 설명했다.

무너진 몸보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무너진 기대다. 30일 넘도록 꼿꼿이 앉아 자리를 지켜왔던 김영오씨가 광화문 천막을 내리고 몸져누운 것은 국회가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을 발표한 8월19일 이후다. 8월20일 아침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다녀갔지만 감정만 격앙됐다. 오후에는 휘청이는 몸을 지팡이에 기대 청와대로 향했다. 몸싸움이 벌어져 크게 체력이 소진됐다.

청와대에서 돌아나오는 길에 김영오씨가 기자들에게 말했다. “나도 남은 작은딸하고 밥을 먹고 싶어요. 오늘 문자가 왔어요. ‘이제 그만하라’고. (박근혜 대통령이) 만나주면 무릎 꿇고 빌 거예요. 내 새끼들을 위해. 대통령도 한 번은 만나주겠죠.” 유민 아빠의 실낱같은 기대는 아직 응답받지 못하고 있다(8월22일 기준).

이날 유민 아빠는 장기간 단식한 환자에게 필요한 비타민 등을 보충하는 수액을 투여받았다. 병원에서 준비한 200cc의 미음은 거부했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이 그의 뜻을 대신 전했다. “유민 아빠는 ‘특별법 제정 전까지 돌아갈 수 없다. 저를 걱정해주는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면 유민이를 볼 낯이 없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가족들은 이날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박 대통령의 결단을 다시 촉구했다. “박근혜 대통령님, 우리 가족들을 죽이지 마십시오. (중략) 면담 한 번 해달라는 요구가 그렇게 무서웠습니까. (중략) 이런 때 대통령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르시는 듯합니다.” 박 대통령은 100여 일 전 눈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국민의 사과를 구했다. 이제 죽음을 각오한 아버지의 눈물에 대통령이 답할 때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서지원 인턴기자 iddg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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