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에게 진료받는 여성.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수백 명의 환자 기록을 보고 하루에도 몇 명씩 시험관 시술과 응급수술을 하는 의사가 환자별 이력을 숙지하고 있을 리 없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취약해진 마음을 파고드는 건 불안과 의심이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는 내 고정 질문이었고, “일상생활 편하게 하세요”는 의사의 단골 멘트였다. 진료실 밖에서 나처럼 1~2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여성의 간절함을 알기에 더는 묻지 못하고 방을 나왔다. 며칠 또는 일주일을 초조하게 기다리다 3분, 아니 1분 진료를 마친 뒤 돌아서는 내 마음은 대체로 허탈함이 채웠다.
지금 운동해도 되는 걸까, 이 영양제는 먹어도 되는 걸까, 여행은 가도 되는 걸까. 삶의 중심이 ‘원인 불명의 난임’ 치료에 매여 있다보면 불안과 의심은 계속 자란다. 전문가의 말 한마디가 필요한 순간이다. 이 불안과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무지로 인해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의사에게 하나라도 더 물어 답을 듣고 그대로 따르는 일이라는 것을 시험관 도전 고차수인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가족을 제외하면 난임 환자들이 가장 의지하는 이도, 가장 서운한 이도 주치의와 간호사 등 의료진일 것이다. 신뢰감이 쌓이는 양방향의 의료 커뮤니케이션이 부재한다면, 난임 여성들은 쉽게 길을 잃고 의료진 역시 의료 행위가 지루한 설명을 요하는 노동일 뿐이며, 보람을 찾기 어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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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난임 치료로 병원 대기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나 조명, 소파의 질감이 내 집처럼 익숙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새로운 의사와의 만남이다. 주치의와 쌓은 라포르(신뢰관계)를 기대할 수 없고, 나같이 고차수 환자의 경우는 나의 병 이력을 먼저 의사에게 알려줘야 한다는 조바심이 나기 때문이다.
연말이나 연초, 명절, 혹은 주치의가 장기 연수나 여행을 가면 대체 의사가 진료한다. 그날도 대신 만난 한 의사가 내게 주치의가 남긴 처방에 기초한 진료를 했다. 이 연재글의 2화(제1532호 참조)에서 소개했듯이, 부부가 힘든 과정을 거쳐 채취한 난자와 정자를 결합해 만든 수정란을 내 자궁에 이식하는 중요한 시술을 하는 첫 번째 진료였다.
“(주치의가) 처방해주고 가신 대로 진행할게요.”
몇 시간 전에 살펴본 내 초음파 사진을 보며 처음 본 의사가 말했다. 나는 내 불안감을 달래줄 의사의 말이 더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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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령이고 난소 기능도 좋지 않고 자궁도 수술한 적이 있어서 일반적이지 않은 환자인 걸 알아요. 오늘 본 초음파상에 특별한 이상 소견은 없었을까요?”
내 질문에 의사는 그제야 과거 기록들을 다시 보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아, 이력이 있으시구나.”
침묵이 이어지다 의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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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 선생님 다음주에 오시니까 그때까지는 이 정도 약만 쓰시고 일단 지켜보죠.”
간절했던 나는 의사에게 그래도 괜찮을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물었다. 그러자 의사가 내게 물었다.
“원하시는 게 뭐죠?”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더 할 말이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 섞인 말이 터져나왔다.
“여기 다니는 환자들이 원하는 건 다 똑같겠죠.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더 드릴 말씀이 없네요.”
나는 더 이상 그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지 않았다.
이전 병원에서 이런저런 실패를 경험하고 지금의 주치의를 처음 만났던 시간을 돌아보니, 비슷했다. 수백 명의 환자 기록을 보고 하루에도 몇 명씩 시험관 시술과 응급수술을 하는 의사가 자신이 진료하지도 않은 환자별 이력을 숙지하고 있을 리 없었다. 피검사 수치, 수술 이력 등 이미 확인된 사실만이라도 공유하면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과거 이력을 자세히 볼 만큼의 여유는 항상 없어 보였다. 상담실부터 의료진에게 여러 번 설명했는데도 전혀 반영되지 않으니, 개인적으로는 매우 서운했다. 공장에서 제품 도장 찍듯이 환자들에게 같은 처방을 내리는 것은 의사로서 무책임한 행위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 상태를 계속 환기시키는 데 주력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내 정보가 주치의에게 쌓였고, 그제야 주치의가 하는 말이 내게 더 와닿으며 나도 주치의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의사가 전문직이 아닌 서비스업 종사자였던 걸까라는 질문을 완전히 버릴 수 없었다.
치료의 갈림길에서 고민 중인 내게 주치의가 종종 이렇게 말할 때마다 그 사실은 다시 상기됐다.
“○○○(내 이름)님이 선택하세요.”
조언만 할 뿐 이 모든 결정은 당신의 선택이고 책임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려준다. 그의 말대로, 나는 의료진에게 무슨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걸까.
그럴 때 의료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의사나 병원을 바꾸라는 조언을 들으면 내심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의느님까지는 아니어도 그의 판단과 결정으로 달라질 수 있는 건 많았다. 그런데도 너무 쉽게 ‘바꿔’를 말하는 세상이 된 데는, 의료진 스스로 전문가로서의 책임감을 보이기보다 어차피 의료행위는 소비자가 더 잘 맞는 의료진을 선택하는 것이란 생각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질문하고 싶었다. 의사는 소비자가 물건을 고르듯 선택하는 대상이어야 할까. 적어도 의료진 자신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의사의 여성 생식기관 검진. 온라인 난임 카페에서는 의사와 나눈 대화에서 상처 입은 수많은 난임 여성의 의료진 성토 발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머리를 묶지 않은 나를 처음 본 의사가) 스타일 바꾸니 더 좋네요. 머리숱만 보면 임신도 잘돼야 하는데.”
“하하 그런가요.”
당황스러워 겉으로는 웃고 말았지만, 진료실을 나오면서 생각하니 기분이 나빴다. 친구끼리도 하면 안 되는 말들이었다. 1년 가까이 지켜본 내 주치의는 ‘직설적이지만 뒤끝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에, 그리고 나도 의사의 말 중 의미 있는 말만 골라 듣는 훈련이 돼서인지 그냥 지나갔다. 하지만 이런 대화를 직장에서 했다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할 정도의 발언에 가깝다. 온라인 난임 카페에서는 의사와 나눈 대화 속에서 상처 입은 수많은 난임 여성의 의료진 성토 발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밭이 좋아야 씨가 잘 자란다” “나이도 많은데 욕심이 많다” 등 부글부글하며 의료 커뮤니케이션의 개선점에 대한 고민을 쏟아낸다.
난임 환자들이 병원에 원하는 건 서비스 산업에 요구되는 친절함만일까. 아니라고 확신한다. 난임 치료가 외과 진료처럼 병증 부위를 제거하는 식의 치료가 아니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수차례 실패 경험을 하면서 깨달았다. 의느님은 없었다. 나도 저차수 환자였을 때는 시험관 시술을 도전하기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 부담이었다. 그러나 시험관 시술은 정말 심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임신이란 삼신할머니,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등 모든 신의 영역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자신감이 없어지고 정신적 뿌리가 흔들리기도 한다. 이런 취약한 이들에게 의사의 말 한마디는 힘이 세다.
또 환자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의료진을 만나는 것만큼 환자에게 복 받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모든 의료진이 그러고 싶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더 커서일 것이다. 이미 산업화된 난임병원에서 의료진 역시 시간에 쫓기고 사람에 치여 실수하고 관성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구조적 모순을 개선하지 않는 이상 그런 의료 커뮤니케이션상의 문제가 쉽게 발생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님,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고생 많이 하셨네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유산하고 찾아갔던 한 대학병원에서 처음 만난 산부인과 전문의가 초진할 때 내게 처음 건넨 말이다. 꾹 참아왔던 눈물이 흘렀다. 그 뒤 나는 그 병원과 그 교수 소식을 신문 기사 등으로 접하면 더 관심 있게 지켜본다. 내가 출산하러 간다면 그 교수님께 찾아가고 싶다.
“○○○님, 오래 준비하신 만큼 이번에는 잘됐으면 좋겠어요.”
호방하고 거침없는 나의 시험관 병원 주치의도 시술 때마다 베드 위에 누운 내 손을 잡아주며 이렇게 말을 건넨다. 잠시나마 불안과 의심이 잠든다. 의료진과의 교감 속에서 수많은 여성이 난임 치료를 버틸 힘을 또 얻는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는 간호사를 볼 때 그들의 직업을 존중하게 된다.
난임 환자들이 싸우는 가장 힘든 적은 외로움과 자괴감이 키운 불안과 의심이다. 이를 가장 잘 상쇄시켜줄 수 있는 이들이 의료진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물론 전문가로서의 책임감 없는 친절함만은 사절이다. 그러나 같은 직업인으로서 유추해보면 책임감이 있는 전문가는 자신의 일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친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난임여성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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