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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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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박’ 잊은 퇴선 명령

광주지법 형사11부 해경 증인신문 이어가…“배 안에 승객들이

대기 중이란 사실을 알았다면 작전 자체가 바뀌었을 것”
등록 2014-08-20 14:41 수정 2020-05-03 04:27
4월16일 세월호 사고 해역에 출동한 해경은 배 안에서 대기 중인 승객을 뒤로하고 선장·선원을 먼저 구했다. 해경은 조타실에서 나온 이들이 세월호 선원인 줄은 몰랐다고 설명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4월16일 세월호 사고 해역에 출동한 해경은 배 안에서 대기 중인 승객을 뒤로하고 선장·선원을 먼저 구했다. 해경은 조타실에서 나온 이들이 세월호 선원인 줄은 몰랐다고 설명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27분. 세월호 사고 해역에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소속 헬기 B511이 도착했다. 뒤이어 제주지방해양경찰청 소속 B513 헬기, 목포해경 소속 경비정인 123정(100t급·당시 탑승 인원 13명),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소속 헬기 B512 등이 사고 현장으로 집결했다. 세월호에서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가 보내진 시각은 같은 날 오전 10시17분. 골든타임으로 일컫는 약 50분 동안 해경은 어떤 구조 활동을 펼쳤던 것일까.

승객들 있는 걸 알고도 퇴선 방송 안 해

세월호 이준석(69) 선장과 선원 등 15명에 대한 재판을 진행 중인 광주지법 형사11부(재판장 임정엽)는 8월12일부터 13일까지 사고 해역에 출동한 목포해경 123정 승조원 6명과 헬기 B511·B512·B513 탑승 항공구조사 4명에 대한 증인신문을 이어갔다. 배 안에 많은 승객들이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123정 정장 김아무개(53) 경위는 승객을 배 밖으로 유도하는 퇴선 방송을 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4월28일 전남 진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퇴선 방송을 직접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 경위는 상부에서 내린 선내 진입 명령도 이행하지 않았다.

검사: 선내에 승객이 아직 많이 있는 걸 알고 있었나?

김 경위: 그렇다.

검사: 선내에 진입해 승객을 구조하라는 지시는 한 바 없는가?

김 경위: 없다.

검사: 왜 안 했나?

김 경위: 상황이 너무 급했다. 그때 조류가 여덟물이고 배가 우리가 봐도 앞쪽으로 넘어오는 것 같다. 그 상황에서 승조원한테 올라가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검사: 해경 여러 명이 도와서 선내 진입을 할 수 있지 않았겠나?

김 경위: 그것까진 생각 못했다. 당시 배가 빨리 넘어갔기 때문에, 안전상 선내 진입 지시를 할 수 없었다.

검사: 선내 진입 훈련을 받은 적 없었나?

김 경위: 한 번도 없다.

검사: 9시48분경 해경 상황실로부터 세월호에 대한 선체 진입 명령을 받은 적이 있나?

김 경위: 받았다.

검사: 왜 선체 진입 명령 지시를 하지 않았나?

김 경위: 그때 당황해서 깜빡 잊었다.

(방청석에서 탄식 소리)

판사: 잊은 건가, 아니면 상황이 진입할 수 없다고 판단한 건가?

김 경위: 통신을 받았는데, 잊었다. 당시 기울기가 60~70도여서 우리 직원이 조타실에 (올라가려 했지만) 실패했기 때문에 그 말을 못했다.

검사: 검찰 조사 당시 퇴선 유도 방송을 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나?

김 경위: 죄송하다. 그때 상황이 급박해서, 퇴선 명령을 한지 안 한지 기억을 못했다. 퇴선 방송 한 걸로 보고를 했고. 그때 빨리 뉘우치고 했어야 하는데.

검사: 거짓말했다는 건가?

김 경위: 그렇다.

아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

123정은 사고 해역에 도착하기 전인 오전 9시3분과 5분 사이에 세월호와 교신 시도만 했을 뿐 직접 교신을 하진 않았다. 세월호 선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도착 이후에도 선장·선원을 구조만 했을 뿐, 이들에게 사고와 관련된 어떠한 정보도 물어보지 않았다. 해경들은 당시 조타실 쪽에서 구한 사람들이 세월호 선원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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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세월호와) 교신을 통해 침몰 상황에 대해 내용을 주고받은 사실은 없나?

김 경위: 우리는 세월호과 교신을 못했지만, 진도 VTS에서 세월호와 교신해서 출발 시간, 도착 시간 등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검사: 증인이 세월호 상황에 대해 정보를 얻는 게 중요하지 않나?

김 경위: 그것은 우리가 미숙한 것 같다.

검사: 승객이 갑판에 보이지 않았다면, 퇴선 방송을 하거나 선내에 진입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김 경위: 퇴선 방송을 못한 것은 인정한다. 그래서 우리가 단정으로 가면서 큰 소리를 지르고 했기 때문에 (선체) 도착과 동시에 승객들이 나와서 구조하게 됐다.

검사: 조타실에서 구조한 사람들이 선원인 줄 몰랐나?

김 경위: 당시 7명을 구조했다. 여자 셋, 남자 넷. 그런데 구명(조끼)을 입었고, 스즈키복(정비복)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배가 이 정도 침몰됐으니 승객들이 조타실까지 진입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검사: 조타실에서 구조된 사람들이 선원이라고 밝히진 않았나?

김 경위: 그런 보고를 받은 적 없다.

123정 정장인 김 경위는 당시 사고 현장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상공에 뜬 헬기에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그는 “헬기가 위에서 상황을 파악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아 아무런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헬기를 탄 항공구조사들은 8월13일 법정에 나와 출동 당시 ‘침몰 중인 여객선이 있다’는 정도의 정보만 들었을 뿐, 승객 수 등 구조와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는 전혀 듣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구조 현장에 나갔다는 설명이다. 이들 역시 승객이나 선원들로부터 배 안에 많은 승객이 남아 있다는 정보를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 헬기에서 외부와 교신을 하는 이들은 조종사 두 명이다. 그러나 항공구조사들이 일단 헬기에서 내려온 뒤엔 무선 교신을 할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사고 현장에 투입된 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B511 헬기는 세월호 상공을 한 번 돌았다. 구조를 요청하는 승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당 헬기를 탄 항공구조사 박아무개(45)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그렇게 큰 여객선이 침몰하는 상황인데 밖에 사람이 전혀 없어서 당황했다”며 “배 안에 승객들이 대기 중이란 사실을 알았다면 작전 자체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B512 헬기를 타고 오전 9시45분께 사고 현장에 도착한 권아무개(35) 구조사도 “침몰 선박에서 인명을 구조해본 경험이 있지만, 세월호같이 퇴선 명령이 이뤄지지 않아 승객이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경우는 처음 봤다”고 밝혔다.

“배 안에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해경은 올해 2월 해양사고시 신속한 인명 구조를 위해 인천·동해·목포·부산·제주에 항공구조팀을 신설했다. 항공구조사는 특공대 경찰관 가운데 선발된다. 그러나 이들도 세월호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승객들을 계속 밖으로 구조했기 때문에 내부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안에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박아무개 구조사) “이미 70도 이상 기울어진 배 안에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안에 있는지 여부를 듣지 못했다.”(권아무개 구조사)

이틀간 법정에 선 해경 가운데 ‘선내 진입 훈련’을 받았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광주=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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