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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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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合) 없는 합의

야당 자신이 제시한 안에서 한참 후퇴한 안에 합의…
협상 막바지 유가족이나 당 내부 협상팀과 논의 전혀 이뤄지지 않아
등록 2014-08-12 16:54 수정 2020-05-03 04:27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오른쪽)와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지난 8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세월호 특별법 처리에 합의한 뒤 웃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오른쪽)와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지난 8월7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세월호 특별법 처리에 합의한 뒤 웃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길고 지루했던 여야 간 세월호 특별법 줄다리기가 지난 8월7일 어이없이 끝났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자신들이 그동안 “꼭 필요하다”고 외치던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권을 지켜내지 못했다. 거기서 한 단계 물러선 방안인 특검 도입에서조차 야당의 특검 추천권을 포기해버린 채 새누리당의 안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세월호 특별법에 덜컥 합의했다. 야당을 믿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을 하던 유가족들은 뒤통수를 맞았다. 갑작스럽고도 선뜻 이해하기 힘든 이 합의는 어떻게 나온 걸까.

무기 든 채 공격도 못하고 끝난 싸움

애초 여야 원내 지도부는 지난 7월10일 기자회견을 통해 세월호 특별법을 7월16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7월1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협상에서 여야는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놓고 공회전을 거듭했고 결국 본회의 통과는 불발됐다. 이후 이어진 협상에서도 새정치연합은 이렇다 할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새누리당에 질질 끌려다녔다. 새정치연합은 처음에 수사권과 관련해 “진상조사위 조사관 일부가 특별사법경찰관 권한을 갖고 독자적인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지만 새누리당은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든다”는 이유로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새누리당의 강한 반대에는 진상조사위가 청와대와 여당에 책임을 묻게 되는 상황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이런 비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야당은 결국 한발 물러서 절충안으로 특검을 제시했다. 김무성 대표가 지난 7월24일 여야 4자 회동에서 야당에 특검 추천권을 주는 방안을 제안했던 것을 내세우며 특검 추천은 야당 또는 진상조사위에서 하겠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특별법 협상 여당 간사인 홍일표 의원은 “우리와 상의한 것이 아니다”라며 김 대표의 제안을 일축했고, 결국 야당은 특검 추천권까지 내주며 껍데기뿐인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했다.

합의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수사권·기소권 불가’라는 초기 입장을 강경한 태도로 고수했고, 세월호 특별법 문제를 유가족들이 요구하지도 않은 보상·배상 문제로 치환해 논점 흐리기에 나섰다. 협상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야당에는 정부·여당의 방어를 뚫고 민의를 대변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은 협상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한 채 애초 자신들이 제시한 안에서 한참 후퇴한 합의안에 사인을 해버리는 선택을 했다. 여당 대표가 먼저 약속한 제안조차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힘 빠진 합의였다.

더 큰 문제는 협상 막판에 유가족이나 당 내부 협상팀과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그동안 세월호 특별법 협상 실무를 맡아온 새정치연합 의원들과도 상의하지 않은 채 8월7일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개인적인 ‘결단’으로 덜컥 합의를 했다. 비판 여론에 대해, 박 원내대표는 “우리가 그동안 다각도로 여당에 특검 추천권을 야당에 달라고 얘기했으나 들은 척도 안 했다. 중요한 건 진상조사위 구성에서 야당과 유족 숫자가 얼마나 많으냐다”라고 말했다.

덜컥 합의한 박영선 원내대표 향한 비판 거세

그러나 박 원내대표의 판단과 달리 당 안팎에서는 협상 결과를 비판하는 후폭풍이 거세다. 희생자 가족과 시민사회, 정의당·녹색당 등 진보정당은 물론 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합의안의 폐기와 재협상이다. 이 후폭풍을 박영선 원내대표 겸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은 어떻게 헤쳐나갈까.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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