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 인권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2024년 10월29일 서울 서초구 법원 삼거리에서 발달장애인 투표용지 보장 차별구제청구소송 탄원서 제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일반 투표용지는 오로지 문자로 이뤄졌다. 선거 공보물이나 펼침막과 견주면 대번에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문자 세계의 유권자가 아닌 존재들로서는 건너기 어려운 간극이다.
2024년 12월18일 서울고법 민사1-3부(부장 이은혜)가 아주 새로운 투표용지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발달장애인 박경인·임종운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청구 소송에서 “공직 선거에서 원고들이 요구할 경우, 문자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정당 로고나 후보자 사진 등으로 정당 이름과 후보자 기호·이름 등을 알 수 있도록 돕는 투표 보조용구를 제공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원고들은 2022년 1월 소송을 냈다. 점자 투표용지나 수어통역을 이용하는 시청각 장애인과 달리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이 전무한 현실을 그렇게 환기시켰다.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은 2023년 8월 원고들의 청구가 현행 공직선거법에 위배된다며 각하했다. 국회 입법이 먼저라는 취지였다. 이와 달리 2심은 모든 유권자의 보편적인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에 적극적인 책임을 요구했다.
당장 사진 같은 비문자 정보가 들어간 투표용지를 볼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다음 대통령 선거가 2년 안팎 앞당겨져 2025년 봄에 치러진다면 현재 투표용지로만 투표하는 수밖에 없다. 2심 재판부가 “이 사건 판결 확정일부터 1년이 지난 날 이후 시행되는” 선거에서부터 적용하라고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법원이 다시 한번 판단을 뒤집는다면 다른 선거에서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다른 나라의 사례는 대법원의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만,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이집트(가나다순) 등 50여 개국에서 발달장애인 등 인지·언어 이해에 어려움이 있는 유권자를 위한 보조 수단이 마련돼 있다고 한다. 더 많은 민주주의가 더 나은 민주주의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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