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이면 좀 가만히 있으라.”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향해 삿대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기관보고 사흘째인 7월2일 새누리당 의원들이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박근혜 대통령 관련 발언을 문제 삼으며 국정조사를 중단했을 때다. 이날은 해양경찰이 보고할 차례였다. 여야 간에 언성이 높아지자 세월호 유가족이 “싸우지 마라” “나갈 거면 그냥 나가라”고 말렸다. 이때 조 의원이 “당신 뭡니까”라고 맞서며 이렇게 말했다. 유경근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야당이 잘못했다는 그게 진도에 있는 가족들이 나자빠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가. 500명 부모들이 그냥 싹 다 죽어 없어질까? 그럼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나”라며 울부짖었다. 그의 말에 주변 유가족들까지 함께 오열했다. 국정조사 모니터링단장을 맡고 있는 전명선 부위원장은 “기관보고 때마다 참담한 심경을 가눌 수 없고,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분노만 자꾸 쌓여간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2박3일 밤샘농성으로 이끌어낸 국회 국정조사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자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더욱 힘을 쓰고 있다. 국정조사 기간인데도 7월2일부터 2주간 버스를 타고 전국 주요 도시를 다니며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는 것도 그래서다(상자 기사 참조).
<font size="3">여야 지도부, 16일 본회의 특별법 처리 합의 </font>세월호 특별법 초안은 여야 의원들과 대한변호사협회 등에서 각각 내놓았다. 공개된 법안 초안들을 보면, 핵심 내용은 일맥상통한다. 첫째, 독립기구를 설립해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한다. 둘째, 피해자 배·보상 및 국가 지원 방안을 수립한다. 셋째, 재발을 방지하고 안전한 사회를 구현한다. 여야 지도부는 7월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자는 원칙에 합의한 상태다.
정작 세월호 유가족들은 피해자 배·보상 조항을 특별법에서 빼자고 요구했다. 지난 7월2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특별법’ 공청회에서 가족대책위를 대표해 토론자로 나선 전명선 부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돈이라고 (일부 사람들이) 말한다. 우리는 정당한 경제적 보상이나 배상을 원하지 않는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사회가 안전하게 되는 게 으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픔을 느끼는 사람은 우리로서 충분하다.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일어나게 해선 안 된다.” 배·보상 조항 탓에 반대 여론이 형성돼 특별법 제정이 어려워질까봐 우려하는 목소리다.
실제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는 일부 움직임이 포착됐다. 국가가 세월호 유가족의 생계를 평생 책임진다는 내용의 보상안이 들어 있다는 주장을 펴면서 말이다. 한 누리꾼은 “특별법에 반대한다”며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단원고 학생들이 국가를 위해 학도병으로 지원해서 배 타고 전쟁터로 가다가 침몰해 사망한 일이라도 되나? 다른 참사나 국가유공자의 유가족과 형평성에 맞는 올바른 (배·보상) 대책인가?”
세월호 특별법의 배·보상안은 정말 형평성을 잃었을까? 대한변협이 공개한 초안을 보면 그렇지 않다. 배상금은 피해 정도에 따라, 보상금은 생활 형편을 고려해 지급한다고 돼 있다. 기준은 민법 등 관련 법령을 따르거나 대통령이 정하기로 했다. 한 글자 차이지만 배상과 보상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보상은 국가의 ‘합법적인 행위’로 특별히 희생된 개인에게 손실을 갚아주는 제도다. 토지수용 보상이 대표적 사례다. 반면 배상은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발생한 손해를 보전해주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는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발생한 손해이기에 우선 배상금을 지급하고, 사회적 배려 차원에서 보상금을 추가로 지급하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배·보상을 받으면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보고 손해배상 청구권 및 구상권은 정부에 넘겨진다. 특별법 초안을 만든 김희수 변호사는 “국가가 책임지고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우선 지급하도록 규정한 것”이라며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이미 천명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font size="3">배·보상안, 새정치 ‘포괄적’ 새누리 ‘엄격한 잣대’</font>박근혜 대통령은 5월19일 대국민 담화에서 ‘국가 구상청구권’으로 세월호 사고 피해자에게 신속히 보상하고 악덕 기업의 재산을 대신 몰수할 뜻을 내비쳤다. “국가가 신속히 먼저 보상하는 특별법을 정부입법으로 즉각 제출해 사고 책임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겠다. 구상권 행사가 안 돼 피해자들이 또 한 번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당론으로 발의할 계획인 세월호 특별법의 배·보상안은 더 포괄적이다. 첫째, 희생자·실종자·생존자를 비롯해 이들의 배우자와 형제자매, 안산시 단원고 학생과 교직원 등을 피해자로 정의한다. 이들을 ‘세월호 의사상자’로 지정해 이에 해당한 예우를 갖춘다. 둘째, 전액 국비로 지원하는 상담 프로그램과 국립중앙의료원 안산병원을 설치한다. 셋째, 피해자들이 휴직할 수 있도록 사업자에게 3개월 임금의 평균 금액을 유급휴직 지원금으로 준다. 이 밖에도 전해철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단원고를 교육특구로 지정해 희생된 단원고 2학년생뿐 아니라 1학년과 3학년, 희생 학생의 형제자매가 대학 입시 때 특례를 받을 수 있는 조항을 넣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새누리당은 보·배상을 총괄하는 보상심의위원회를 따로 구성하자고 주장한다. 의사상자 인정도 곤란하다는 태도다. 배·보상안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가해자에게서 손해배상금을 받기 전에 미리 국가가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지만, 그 손해배상액 산정은 민법 등 관계 법령의 규정만을 따르도록 한다. 그러면 단원고 피해 학생들은 충분한 보상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학생의 경우 도시 일용직 노동자의 최저임금 기준으로 손해배상금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김희수 변호사는 “유가족의 입장을 반영한 슬기로운 대안을 찾을 것”이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국가의 불법행위를 밝히는 과거 특별법에서 보상안은 생색내기에 불과했다. 국가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합당한 배·보상을 하지 않았다. 4·16 사고에서는 달라져야 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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