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 앞길에서, 피고인들은 유모차부대 회원들과 함께 ‘유모차부대’ 깃발을 앞세우고, ‘아이들아 미안하다. 우리들이 지켜낸다’라는 피켓을 들고 유모차를 끌고 가면서 구호를 제창하고, 도로를 점거한 채 행진하였다.”
이 내용은 2008년 여름 이른바 ‘유모차부대’의 일원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엄마들의 공소사실 중 일부다. 콕콕 마음에 남는 것이 ‘아이들아 미안하다. 우리들이 지켜낸다’라는 피켓의 문구다.
도시락, 유모차… 절실함과 진정성 ‘부대’2008년 여름, 서울의 거리는 여름 햇살보다 더 뜨거운 촛불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그 여름의 촛불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같은 해 4월18일, 광우병 우려로 수입이 제한돼 있던 30개월 이하 미국 소의 모든 부위 수입을 허용하고, 30개월 연령 제한 조치를 포기하며, 미국 내 도축장에 대한 검역 권한마저 포기하는 내용으로 미국과 미국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에 합의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국민적 저항으로 시작됐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규모로 두 달 가까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행됐으며, 그 형식 또한 과거의 시위나 집회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촛불집회가 들불처럼 번져간 것은 어린 중·고등학생들이 단상에 올라 어른들의 책임을 물으며 안전한 먹거리와 민주주의를 말한 것을 시작으로 어른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두 달여 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집회에 참여해 행진했고, 청계광장 인근은 해방구가 되어 몇 날 며칠을 시민들이 모여 밤을 지새우며 난장을 벌이고, 토론을 하며, 음악을 연주했다. 당시 과거 어느 집회에서도 볼 수 없던 시위대를 보게 되었는데 바로 ‘유모차부대’였다. 인터넷 육아카페 등에서 육아정보를 교환하던 엄마들이 아이들의 먹거리 안전과 관련한 문제에 부딪히고, 정부가 이를 해결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거리로 나섰던 것이다. 마치 소풍을 오듯이 도시락을 싸들고 유모차에 풍선을 달고 거리에 나선 모습은 평화롭다 못해 천진하기까지 했으나, 그 어느 시위대보다 절실함과 진정성을 갖춘 모습이었다. 유모차부대는 여경들의 호위를 받으며 ‘엄마가 뿔났다’ 등의 귀여운 구호를 외치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그때 나는 인권침해감시단으로 촛불집회에 자주 나갔는데, 2살 된 아이의 엄마였던 나는 어느새 유모차부대 엄마들과 같은 마음이 되어 속으로 구호를 되뇌곤 했다.
어느 보수 논객은 유모차부대 엄마들에 대해 아이들을 시위대의 도구로 쓴다면서 공산분자의 발상이다, 잔인한 여자들이다, 친엄마가 아니다, 아이를 빌려온 것이 아닌지 조사해봐야 한다는 웃지 못할 글을 게재해 엄마들을 화나게 만들기도 했다. 일상으로 돌아간 유모차부대 엄마들에게 1년여가 지날 무렵 난데없이 날아든 소환장은 이들을 다시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수사기관은 촛불집회 참여 당시의 사진을 채증해 엄마들의 신원을 확인한 뒤, 1년여가 지날 무렵에야 이들을 소환했고, 엄마들은 젖먹이 아이들을 데리고 수사기관에 조사를 받으러 다녀야 했다.
엄마, 크기를 알 수 없는 용기의 소유자나는 조사받던 그녀들 옆에 변호인으로 앉아 있었는데, 전혀 주눅들지 않는 그녀들의 모습에 감동받았다. 조사를 받다가 아이에게 젖을 먹여야 한다며 수사관의 퇴장을 요구하고 기저귀를 갈고, (고가의 수입 유모차) 스토케를 태우던 ‘된장엄마’인 자기를 거리로 나가게 한 게 누구냐며 당당하게 나오던 그녀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도대체 엄마들이란 크기를 알 수 없는 용기의 소유자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엄마들에 대한 혐의사실(경찰의 통제로 이미 폐쇄된 도로 및 갓길로 행진한 것)이 일부 인정된다 해도 기소유예 정도로 간단히 마무리할 수도 있었으련만 검찰은 벌금형의 약식기소를 했고, 엄마들은 정식재판 청구로 이에 맞섰다. 엄마들에 대한 재판 중 일부는 관련법의 위헌성 문제 때문에 수년간 재판이 중지된 상태로, 재판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엄마들이 다시 거리로 나서고 있다. 2014년 4월30일. 한 엄마의 제안으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서울 강남역에 모여 첫 침묵시위를 한 것을 시작으로 유모차부대, ‘앵그리맘’이라 불리는 엄마들이 거리로 나섰다. 이들의 소망은 아이와 함께 안전하게 살고 싶다, 아이를 위해 침묵하지 않겠다는 소박한 것이었다. 이들의 소망은 2008년의 그녀들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그녀들을 거리에 세운 감정은 세월호 엄마들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선 동일시의 감정이다. 그런데 자유청년연합, 미디어워치 등 애국 보수를 표방하는 일부 단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아이들을 학대하고, 인권유린을 일삼는 유모차부대의 아동학대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유모차부대 엄마들을 아동학대죄로 고발했다고 한다. 보수단체들의 이러한 발언은 2008년 유모차부대 엄마들에 대해 ‘공산분자의 발상이다’ ‘가짜 엄마다’라는 등의 비난을 하던 보수 논객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이런 동일한 상황이 기시감이 아니라 정녕 사실이라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보수와 진보 모두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사는 나라를 꿈꾸는 것 아닌가. 엄마들이 왜 거리로 나섰는지에 대한 보수(모든 보수가 같지는 않을 것이지만)의 상상력은 ‘아동학대’로밖에 연결되지 않는 것인가. 엄마들을 고발할 것이 아니라, 왜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죽어가야 했는지 집요하게 파헤쳐 발본색원하고, 깊이 새겨진 상흔이 조금이나마 아물 수 있도록 한마음 한뜻으로 위로하는 것이 진보든 보수든 이 나라의 국민이라면, 사람이라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을 외치며 거리에 선 엄마들에게 아동학대라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세월호의 엄마·아빠들은 큰 소리로 울지도 못한다. 큰 소리로 세상을 저주하고 욕을 하며 슬픔을 풀어내야 하는데, 조금만 크게 울어도 소리를 질러도 진짜 유가족이 아니라는 둥, 불순세력이 끼어 있다는 둥 막말을 하니 어디서 슬픔을, 그 큰 한을 풀 수 있겠는가.
2008년처럼 끝나지 않기를2014년 유모차부대의 엄마가, 세월호의 참사가 2008년과 같이 끝나지 않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2008년과 2014년의 상황이 자꾸만 동일하게 맞춰져가는 것은 그저 나의 기시감에 불과하기를 소망한다. 세월호 참사는 철저하게 진상이 규명될 것이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연루된 모든 자들은 엄히 처벌되고, 사고의 원인과 제도의 허점을 찾아내 다시는 이런 참담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적·물적 제도 개혁이 시행될 것이며, 이는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된다. 세월호의 생존자와 피해 가족들은 국가와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위로를 받으며 서서히 상처를 회복해간다. 유모차를 끌고 나왔던 엄마들은 이제 안심하고 자녀를 양육하며, 아이들은 안전한 세상에서 건강하게 성장해 어른이 된다. 이것이 나의, 우리 모두의 소박하지만 간절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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