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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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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인가 정치인가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가 취소된 이유는
‘음악으로 애도할 수 있다’를 몰라서가 아니라 지자체 정치 공방에 희생된 것
등록 2014-05-28 15:35 수정 2020-05-03 04:27
세월호 사고는 우리 사회 곳곳의 후진적 요소를 들추고 있는데,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 취소 사태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뷰민라’에서 공연하고 있는 밴드. www.mintpaper.com

세월호 사고는 우리 사회 곳곳의 후진적 요소를 들추고 있는데,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 취소 사태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뷰민라’에서 공연하고 있는 밴드. www.mintpaper.com

도저히 실제 상황이라고 믿기 어려운 참사가 또 발생했다. 필자는 사고 당일 오전 사무실에서 그날 오후에 예정됐던 지방 재판을 준비하면서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 속보를 접했다. 그 직후 도착한 버스터미널에서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없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들었던 터라 약간 안심하면서 지방으로 향했다. 그러나 희망 섞인 안심은 금세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필자 또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사회 안전 시스템의 공백과 치부를 다시 한번 아프게 확인해야만 했다. 희생자에게 진심 어린 애도를 다시 표한다.

‘통곡 속 풍악놀이’ 예비후보 성명

안전 시스템 말고도 이번 사고는 우리 사회 곳곳의 후진적 요소를 들추고 있는데,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 취소 사태도 그중 하나로 생각된다. 올해로 같은 장소에서 5년째를 맞는 인디음악계의 봄 페스티벌인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가 공연장을 대관한 문화재단 쪽의 일방적인 통보로 공연 하루 전날 취소됐다. 문화재단 쪽의 취소 사유는 물론 세월호 참사로 인한 애도였다.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에는 10cm, 데이브레이크, 디어클라우드, 버벌진트, 언니네 이발관, 옥상달빛, 요조, 자우림, 페퍼톤스 등 59팀이 4일에 걸쳐 출연하기로 돼 있었고 4년 동안의 경험에 비춰보면 ‘요란한’ 축제가 아님은 분명한데, (대중)음악과 애도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명분하에 공연장 대관을 취소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음악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대부분 재단 쪽의 일방적인 취소에 아쉬움을 보였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 같은 스포츠 경기, 뮤지컬·영화·클래식 같은 대중문화예술 공연은 예정대로 열렸고 심지어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 공연일 전후로 뉴트롤스, 제프 벡, 존 메이어 등 해외 뮤지션들의 콘서트까지 큰 호응 속에 열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히 ‘음악으로도 치유받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대중)음악인들의 아쉬움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이렇게 아쉬움을 남긴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 취소 사태는 문화재단 관계자들이 음악으로도 애도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몰라서였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며, 그런 점에서 문화재단 관계자들이 한편으론 억울한 심정이 들 수도 있겠다. 문제는 공연장을 대관하기로 했던 문화재단이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설립됐고, 이사장도 해당 지자체장이 겸임하는 사실상의 지자체 산하기관이며, 해당 지자체장도 직접 당사자인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바로 코앞에 다가온 정치 현실 때문이었다. 특히 공연 이틀 전까지도 합의되지 않았던 공연 취소가 급작스럽게 이뤄진 것은 상대방 정당 지자체장 예비후보의 ‘세월호 통곡 속 풍악놀이 웬 말인가’ 성명과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번 사태는 결국 재단 관계자들의 무지나 무책임 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정한 애도와 기원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 앞에 무너진 문화 환경의 수준과 현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 사건과 다름없다.

이렇게 지자체가 설립한 문화재단이 설립 목적에 부응하지 못하고 정치 지형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의 변동에 따라 가끔씩 어이없는 실수를 해서 세수를 축내는 것은 해당 지자체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당연한 결과다. 이번 경우처럼 지자체가 설립한 문화재단의 대부분은 설립시의 기본 재산을 지자체로부터 출연받고 이후로도 수시로 출연받는다. 지자체장이 재단의 이사장을 겸임하거나 이사의 임면을 좌우하고, 재단의 예산 집행이나 업무 집행은 해당 지자체의 감독을 받는데 실제는 승인을 받아 이뤄지게 돼, 결국 지자체장이나 지자체 의회 내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정치 지형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메인 제작지원사의 갑작스러운 증발

필자는 2010년 3~5월 MBC에서 방영된 24부작 주말드라마에 대한 제작지원 계약 관련 소송을 2010년 7월께부터 약 1년6개월간 1심부터 항소심까지 진행한 적이 있다. 이 드라마는 지금으로부터 딱 4년 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직전에 방영된 드라마였기에 아니러니하게도 많은 지자체들로부터 관심을 받았고, 실제 다수의 지자체로부터 제작지원을 받았다. 외주제작 드라마의 경우 외주제작사가 드라마 제작비 전부를 조달해야 하기에 간접광고(PPL) 계약이나 제작지원 계약을 통해 제작비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평소 지자체나 지자체 추진 축제 등을 홍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드라마의 제작지원이 일상적인 일이었으나 다수의 지자체가 한 드라마에 동시에 제작지원을 하는 일이 흔하지는 않았다. 당시 이번과 같이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조금 과장하자면) 제작사로서는 때아닌 ‘반짝 특수’가, 지자체장들에게는 자신의 치적을 자연스럽게 노출시킬 ‘합법적 선거 홍보’의 장이 마련된 것이었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높은 유력 지자체의 경우 지자체 관할하의 문화재단 등이 있었기에 재단의 가용 예산을 활용하게 되면 지자체가 직접 나서야 하는 법률적·경제적 부담조차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독자 문화재단을 관할하에 둔 유력한 지자체와 협의해 해당 문화재단을 그 드라마의 메인 제작지원사로 하는 합의가 이뤄졌다. 이에 따라 양 당사자는 제작지원 계약서 초안을 주고받으며 해당 지자체나 문화재단이 노출되는 대본 수정, 촬영, 제작발표회를 진행해 드라마 방영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그런데 문화재단은 드라마 1회 방영을 앞둔 시점에서 돌연 제작지원 계약서 내용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석연치 않은 태도를 보이다가 드라마 1·2회가 방영된 뒤 아무런 합리적인 사유나 협의 없이 돌연 제작지원 취소 통지를 제작사에 보내왔다. 제작사로서는 제작지원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메인 제작지원사가 갑자기 증발해버리는 경제적 손실을 입은 것도 충격이었으나(방영 중이던 드라마에 대한 피해는 물론 종영 뒤 해당 제작사는 이 타격으로 존폐의 기로에 처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협력관계를 이어가던 재단 쪽과 지자체 관계자들이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꾼 이유를 당시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미스터리였다.

현직 지자체장이 탈락하자

후일 변론 과정에서 확보한 문화재단 이사회 의사록을 보면서 미스터리의 일단이 풀리게 되었다. 재단 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현직 지자체장이 유력 다수당의 공천에서 탈락하게 된 시점을 전후로 이사회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뀐 것이 그 이유였다. 비정(?)하다고도 볼 수 있는 냉엄한 정치 논리가 정치나 선거 일정과 전혀 무관해야 할 문화기관까지 좌지우지하고 결국 누군가 영문도 모른 채 그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한국형 블랙코미디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애도’가 아니라 ‘선거’ 때문에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를 취소한 것이 아닌가, 정치적 이해관계가 건강한 정서와 문화의식을 억압한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든다.

남상철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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