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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정기의 그들

멀티방 청소년 출입금지법 발의 등으로 어쩌지 못하는 10대의 성… 왜곡된 성문화 바꿀 ‘페미니즘’ 성교육 필요
등록 2011-06-24 13:53 수정 2020-05-03 04:26
영화 <몽정기>는 청소년과 대학생의 성을 유쾌하고 솔직하게 다루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영화 <몽정기>는 청소년과 대학생의 성을 유쾌하고 솔직하게 다루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조금 철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10대 성문화를 다룬 영화 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컵라면의 밑바닥을 뚫는다. 그 구멍에 끊는 물을 붓고 면발이 불어터지길 기다린다. 이윽고 컵 용기가 다 찰 정도로 면이 붇는다. 그다음엔 구멍 사이로 성기를 넣고 자위행위를 한다(다만, 면이 아직도 뜨겁다면 대략 난감하다). 아마도 의 ‘파이’를 모방했을 이 장면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10대에게 성은 더 이상 외설이 아니다.’ ‘성은 일상이다.’ ‘그/녀에게 성을 허하라.’

각종 실태조사에 따르면, 1318 청소년 중 적게는 5%에서 많게는 17%까지 (삽입 섹스로 추정되는)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한다. 거짓 응답하거나 응답을 피한 경우까지 고려해보면 그 ‘실태’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게다가 첫 경험을 하는 연령도 남녀 각각 14살과 14.5살이라고 하니, 10대의 성행동이란 어엿한 ‘정상’ 문화인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10대의 성을 자꾸만 규제하려고 한다. 최근에는 몇몇 국회의원이 멀티방 청소년 출입금지 법안을 발의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멀티방이 예전의 비디오방처럼 10대의 탈선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에게 멀티방이란 비교적 저렴한 ‘노래방+DVD방+게임방’일 뿐이다. 물론 업소에 따라 은밀한 만남 뒤 샤워까지 할 수 있다지만, 언제나 그렇듯 규제 대상은 업소가 아니라 청소년이 되고 있다.

멀티방을 출입 금지시키면 10대의 ‘탈선’은 끝나는 것일까. 성은 효과적으로 억제될 수 있을까. 답은 물론 ‘아니오’다. 은밀한 어떤 것을 목적으로 멀티방을 내왕하던 10대들은 소식이 알려지자 벌써부터 두 가지 꼼수를 내놓는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그냥 삐대거나 딴 데 가면 되죠.” 말인즉슨, 조금의 공을 들여 민증을 위조하거나, 대실료 2만원 정도의 무인모텔을 이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최적의 장소는 두말할 나위 없이 식구들이 비워둔 빈집이다(그렇게 그/녀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 한다).

사실 10대의 성문화는 기성세대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단지 나이에서 밀리는 하위문화일 뿐이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성에 대한 문화적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고백하는 것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진짜 문제는 어른한테 있는 셈인데, 실망스럽게도 어른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다만, 이렇게 ‘쿨’하게 글을 쓰는 나로서도 종종 판단이 어려운 대목이 있다. ‘10대의 성을 해방시키자,’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사자인 10대들이여, 당당히 권리를 외쳐라’라고 권하는 게 만사형통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억압된 성만큼이나 왜곡된 성도 문제다. 그/녀들의 성관념과 성행동이 어른들을 빼다 박았다는 점에서, 특히 10대 여성의 신체는 종종 폭력과 갈취, 그리고 그로 인한 2차 피해에 노출되기 쉽다. 불행하게도, 그녀들은 또래 남성에 비해 강제에 의한 성관계나 원조교제를 통한 성관계 경험이 많은 게 사실이다. 나아가 원치 않는 임신이라도 하게 된다면, 다소 미심쩍은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위기 청소년’(이른바 ‘청소년 문제’로 소년원이나 쉼터에 머무르는 청소년을 말한다)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10대의 성이 타자로부터 억압받지 않는 성, 그리고 스스로 왜곡하는 성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묘수가 있을까. 우리가 기댈 데라곤 페미니즘 교육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무턱대고 연소자를 단속하며 성을 억압하지도 않고, 인간을 성적 대상으로 삼아 성을 왜곡하지도 않는, 그런 대안적 윤리 말이다. 지금으로선 상상 가능한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물론 단서 조항은 있다. 페미니즘 교육의 급선무는 10대보다는 어른들이라는 점이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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