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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쿨하게 걸쳐라

백팩을 어깨에 메지 않고 팔뚝에 걸치고 다니는 청소년…선배세대와 차별화, 학교환경 변화가 담긴 새로운 그들의 스타일
등록 2011-12-15 10:55 수정 2020-05-02 19:26

교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10대들. 그런데 요즘 그들의 복색에서 작지만 제법 흥미로운 변화를 볼 수 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백팩을 어깨에 메는 게 아니라 팔뚝에 걸친 채로 활보하는 모습이 등장한 것이다. 어떤 이는 한쪽 끈을 반쯤 내리고, 또 어떤 이는 양쪽 끈을 모두 내린 채 다닌다. 어쩌다 이런 행동이 유행하는 것일까.

지난 10월5일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 동작구 상도동 상도종합사회복지관 강당에서 열린 ‘2012년 복지 분야 예산안 합동설명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지난 10월5일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 동작구 상도동 상도종합사회복지관 강당에서 열린 ‘2012년 복지 분야 예산안 합동설명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왜 가방을 이렇게 메죠?” 질문을 받자 “그냥 편해서요”라고 답한다. 하긴 어깨끈 흘려 메는 게 별 대수로운 일도 아니니 ‘그냥’이란 답이 나올 만도 하다. 이게 무슨 중요한 사회적 문제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도 ‘그냥’이라고 넘기기엔 꽤나 많은 학생들이 백팩을 요상하게 메고 다니지 않는가. 얼핏 봐도 거추장스럽고 우스꽝스러운데 말이다. 심지어 허리에 무리를 줘서 건강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왜들 이렇게 기술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가방을 메고 다니는 걸까. 좀더 합리적인 이해를 위해, 우선은 이런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일단 전반적으로 (패션의 의미에서) 가방끈이 길어졌다. 2000년대 초·중반 이른바 강북 스타일로 일컬어졌던 교복룩에서, 백팩은 마치 ‘거북이 등껍데기’처럼 뒷목 가까이 끈을 조여 메는 게 필수였다. 그러나 요즘은 어깨끈을 길게 늘이는 게 대세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 첫째는 선배 세대 스타일에 대한 거부감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화를 해보면, 과거의 ‘거북이 등껍데기’ 스타일은 ‘찌질’하게 여겨지는 게 일반적이다. ‘찌질함’이란 표면적으론 양식적 측면에서의 진부함을 꼬집는 언어지만, 심층적으로는 라이프스타일과 같은 사회적 측면으로까지도 이어진다. 이를테면 ‘왜 저렇게들 사나 몰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때마침 대안적 스타일로서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명품 색(Sack) 스타일이 차용됐다는 점이다. 긴 가죽끈과 작은 색으로 특징지어지는 스타일이 지금 친구들의 교복룩을 통해 재연되는 셈이다. 달리 말해, 명품 색 스타일을 차용하면 선배 세대의 찌질함을 상상적으로 그것도 럭셔리하게(?)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백팩의 어깨끈이 전반적으로 길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궁금증은 채 가시지 않는다. 단순히 끈만 길어진 게 아니라 팔뚝에 걸칠 정도로 요상하게 메고 다니면 거추장스럽지 않을까. 그렇지만 걱정 말라는 답이 이어진다. “어차피 별로 안 무거워요.” 어지간해선 교실마다 사물함이 있고 급식을 챙겨먹고 있으니, 과거와 같이 책이나 도시락으로 가방 무게를 걱정할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능성마저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가방 때문에 등에 땀이 차는 걸 막을 수 있고, 지하철 계단 같은 데에선 엉덩이 쪽을 색으로 눌러서 짧은 치마로 인한 속옷 노출도 방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미적 측면에선 어떨까. 선배 세대의 바짝 조인 짧은 끈이 스타일적으로 추해 보인다 했을 때, 끈을 길게 해서 팔에 걸치고 다니는 것 역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에 조금은 복잡한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세계에선 성인 세계에 일반화돼 있는 미적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도 편하고 자유로운데…” “그게 쿨하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라는 반응들을 접하다 보면 그런 추측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들이 생각하는 ‘멋짐’이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시각적 멋짐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신체적으로 느끼는 편안함과 더불어) ‘가방은 이러저러하게 메야 한다’는 사회적 약속을 깨뜨림으로써 얻는 쿨한 ‘멋짐’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상이 부과하는 어떤 불편함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바람을 백팩을 통해 드러낸다고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어떤 친구의 답변이 멋들어지게 뒤통수를 친다. “에이, 그러는 아저씨도 가방 이상하게 멨잖아요.” 가만 보니 나는 1990년대 스타일로 백팩을 한쪽 어깨로만 메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제야 궁금증을 중지하기로 마음먹었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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