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따 뻐정에서 만나.” 버스정류장의 경음화된 준말이다. “니가 선문해. 문무잖아.” 각각 선(先)문자와 문자무제한의 준말이다. “저 새끼, 레알 아벌구야.” REAL로 ‘아가리만 벌리면 구라’라는 뜻이다. “넌내반 닥본사야.” “아닥공이던데.” 드라마 를 ‘닥치고 본방송 사수’해야 한다는 얘기에, 그거 봤는데 ‘아가리 닥치고 공부’나 할걸이란 생각밖에 안 들더란 응답이다.
10대가 낯설거나 무섭게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언어가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는 데 있다. 무분별해 보일 정도로 언어를 파괴하고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저속하기 이를 데 없을 말장난으로 희희덕대는 풍경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 당사자인 10대들마저도 광폭할 만한 은어 생성 속도에 어리둥절해할 정도다.
얘네들, 왜 이런 걸까. 궁금하다 보니 저마다 성급한 답을 내놓는다. 대개는 인터넷 채팅문화나 휴대전화 문자문화 덕분에, 언어의 경제적 효용성과 세대적 독자성, 그리고 문화적 유희성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딱히 틀린 답은 아니지만 진실을 직면코자 하는 이들에게는 그렇다고 속시원한 답도 아니다.
돌이켜보면 기성세대도 10대 시절 은어를 만들며 살았고, 어른이 된 지금도 지근거리의 집단 내에서 은어를 사용하고 있다. “오소느슬 미시티싱 어서때새써서?” 개인 휴대전화는커녕 무선전화기도 흔치 않던 시절, 부모의 눈치를 피해 10대들은 글자마다 ‘ㅅ+중성+종성’을 덧붙여 저들끼리의 ‘외계어’를 창조하기도 했다(초성은 ㅅ이 아니어도 좋다). 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근대 교육이 성립한 이래로 10대들의 은어는 거의 상수였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개구리가 된 기성세대는 올챙이들의 언어 세계에 당황해하고 지극히 ‘에바’(에러+오바)스럽게도 세대 간, 세대 내 소통 불가능성을 염려한다. 나아가 표준말마저도 저속한 은어에 오염(?)되거나 구분 불가능하게 되는 것 아니냐며 부정적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렇기에 종종 ‘올바른 언어 습관’ 운운하며 예의 ‘꼰대’스러운 엄숙함으로 사회 분위기를 정립하려는 건 당연한 수순일 수 있겠다. 뭐, 결과적으론, 10대들의 문화적 권리니 뭐니 다 필요 없이 언어세계를 표준화하고 획일화해야만 맘 편하다는 발상인 셈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오염이니 소통 불가능이니 하더라도 표준말의 세계와 은어의 세계는 사회공간적으로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원리적으로 은어는 표준말을 참조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맛있다(마싣따)가 틀린 발음이었다가 이제는 ‘마딛따’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표준말의 세계란 그다지 확고부동한 것만도 아니다. 표준말의 세계는 외형적으로 약간 변형될지언정 절대로 무너지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10대들의 언어적 창조성에 주목해보길 권하고 싶다. 약어·혼합어·완곡어·역어(逆語)·역변어(逆變語)·영어차용어 등등의 언어 생성 과정에 더해, 집단 내에서 어휘나 표현이 보편화되는 사회화 과정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10대들은 각종 훈육을 통해 권력 관계를 내면화하고 복종심을 배우는 입시교육 시간에서보다 이미 더 많은 것을 익히고 있는지 모른다. 예컨대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나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등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정서구조 같은 것을 감지할 수 있지 않던가. 또 은어에 욕설이 섞여 있다면 거기서부터 그네들 삶의 조건과 거기서 견뎌내려는 시도들을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은어 자체가 창조 활동의 산물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열광만 하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단순한 말장난을 지나 기성세대의 세계관에 담긴 부덕함이나 무지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곤 하기 때문이다. 외모지상주의(닼서=다크서클), 인종주의(흑형=흑인남성), 성차별주의(걸레=문란한 여성), 소비주의(엄카=엄마 카드) 등등이 그러한데, 바로 그 까닭에 표준말을 타고 달리는 이 '은어 게임'의 진실은 여전히 까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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