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학교 폭력 문제가 새삼 쟁점이 되고 있다. 어딘지 익숙한 몇 가지 패턴이 반복되는데, 미디어는 호들갑을 떨고 사회는 덩달아 안달하며 교육계는 여전히 무능력하다. 이때 으레 등판하는 구원투수가 바로 대중문화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인터넷 연재 웹툰 단속에 나섰다고 한다. 폭행, 따돌림 등을 정밀히 묘사함으로써 학교 폭력을 부추긴다는 게 이유다. 사회가 만들었고 따라서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대중문화에 떠넘기고 침소봉대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전혀 없다. 애먼 대중예술 작가들만 불똥을 뒤집어쓰고, 우리 시대는 예의 무능력함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보면 참으로 낯선 풍경일 것이다. 폭력 문제가 쟁점이 될 듯하다가도 어찌해서 이내 표현의 자유라는 쟁점으로 탈바꿈하는지를 말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치밀한 사유 끝에 합리적 결론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서 원래 문제를 상상적으로 해소하는 주술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단순무식한 사고방식이 어째서 순조롭게 통용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어떤 누구도 그 폭력이 누구에 대한 폭력인지, 그리고 어떤 폭력인지를 질문하지 않는다. 그저, 대체 누가 폭력을 부추겼느냐는 질문에만 집중할 뿐이다. 그리하여 애꿎은 마녀사냥이 되풀이되고 그 탓에 우리 사회의 폭력적 관계는 유지·재생산된다. 제1의, 제2의, …, 제n의 아해‘들’은 무섭다 그러면서 도로를 질주한다.
물론 나는 폭력이 일부의 문제이고 대다수 청소년들은 선량하다는 식의 순진한 반론을 펼칠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은 꼰대들의 편견과는 반대로 미디어가 재현하는 폭력 양식을 뛰어넘어 새로운 폭력을 고안할 정도로 창조적이기 때문이다. 물고문을 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희희낙락하는 모습은 청소년 폭력이 점점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정확히 말하면, 청소년 폭력 문제는 더 이상 제어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참에 아예 급진적으로 폭력은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단언할 요량이다. 비폭력이란 그저 사회적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오히려 학교 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폭력을 억제·조절·전환할 만한 규범적 폭력이 부재하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폭력이 있어서 문제가 아니라 폭력이 부족해서 문제다. 교사들의 체벌이나 대중문화 규제 같은 물리적·외설적 폭력이 아니라 한다면, 폭력은 아직도 모자라다.
이게 바로 ‘누구에 대한 폭력인지, 그리고 어떤 폭력인지’를 물어야 하는 이유다. 어차피 폭력 자체는 연령에 관계없이 상수이며 보편적 현상이다. 10대들의 폭력은 가족-학교-미디어의 트라이앵글에서 구조적으로 창출되는 변수 따위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문제는 청소년 폭력이 또래 내부의 하층 회로에 국한됐다는 점, 그것이 전형적으로 약자와 타자를 향한 괴롭힘이라는 점에 있다.
이렇게 보면 사태가 완연히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지금 청소년 폭력은 불행하게도 성인들이 자행하는 폭력과 너무도 닮아 있다. 집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식에게,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직장에서 관리자가 노동자에게 가하는 폭력 말이다. 그것도 하필 어머니와 자식, 학생, 그리고 노동자가 행사할 수 있는 대항 폭력과는 정반대다. 그렇다면 관건은 폭력의 관계이자, 그 방향성이 아니겠는가!
이런 전환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시대의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솔직히 집단적 괴롭힘, 교사 체벌, 대중문화 규제 같은 외설적 폭력을 방치하는 게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소년 폭력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려면 그들이 폭력적 에너지를 실현할 통로와 표적을 열어줘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나 많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비용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나아가 폭력의 표적이 지금같이 또래 내부에서 찾아지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만약 그 모든 것이 개방돼 사회체제가 표적이 되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적어도 아직은 그럴 자신이 없는 듯하다. 그건 당사자인 청소년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폭력은 그렇기에 더더욱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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