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문화를 두고 흔히들 교육제도의 병폐와 수험생 개인의 스트레스를 언급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입시 문제는 명백히 가족 문제다. 이상화된 중간계급 가족을 봤을 때, 고3을 중심으로 온 가족의 대소사가 돌아가는 상황은 낯설지 않다.
내내 말썽을 부리던 녀석이라 하더라도 고3이 돼 공부하는 시늉이라도 보이면 상전으로 대우받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 사춘기를 틈타 그렇게 짜증을 내고 반항해도 받아주지 않던 부모였는데, 이상하게도 고3이 되니까 다 들어준다. 어디 그뿐일까. 원서 마감 시간에 맞춰 마우스를 클릭하고 온 가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도, 그리고 합격자 발표 시간에 맞춰 온 가족이 가슴 졸이는 것도 ‘입시가족’에겐 중요한 의례다.
사실 양상만 다를 뿐 입시가족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구한말 혹은 일제시대에) 교육을 통해 가족 전체가 계급이동을 할 수 있다는 신화가 생긴 이래, 성년을 앞둔 ‘그들의 현재와 미래’는 곧잘 ‘가족의 현재와 미래’와 동일시된다. 그들의 성적은 가족의 현재를 평가하는 지표가 되고, 학력과 학벌은 가족의 미래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 것이다.
다만 오늘날 입시가족이 과거와 다른 점은 이 모든 양상의 저변에 ‘계산가능성’ 같은 경제학적 원리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대학과 학과를 고르려면, 과거엔 ‘소신 지원’이란 명목으로 강한 신념을 갖거나 복채를 들고 점집을 찾는 게 고작이었지만, 요즘은 학원이나 입시설명회를 찾아가 ‘온 가족’이 철저히 분석하고 최종 결정을 내린다. 실제로 ‘엄마-고3’ 커플이 입시전문가 앞에 앉아 학과 배치표를 놓고 계산기를 두들기며 ‘불확실한 미래’를 결정하는 일은 흔한 풍경이 됐다.
이뿐만 아니라 입시가족 풍토가 경제학적이기까지 하다. 자녀 교육을 위해 ‘기러기’와 ‘노래방 도우미’로 변신하는 아빠와 엄마는, 가족의 ‘기대주’에게 실로 아가페적인 ‘투자’를 쏟아붓는다. 이런 ‘비용’은 자녀가 학력과 학벌을 확보하고 ‘고소득’을 얻게 될 것이라는 ‘기대수익’으로 벌충되거나 배가된다. 시쳇말처럼 가장 확실한 ‘노후보장’인 셈이다. 나아가 자식이 입신출세한다면 운명공동체로서 가족 전체의 ‘계급상승’도 노려볼 만하다(작은따옴표 속의 단어들은 수사가 아니라 진실이다).
이 틈바구니에서 10대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들은 (지금의 20대가 그러한 것처럼) 부모에 대한 경제적·정서적 ‘채무’ 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다. 부모에게서 받은 지원의 대가로 자신의 청춘을 ‘저당’ 잡히고 그런고로 가족이라는 울타리 바깥으로 탈출하는 ‘리스크’를 감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어디, 경제적 측면에서만 그러겠는가. 부모들이 기러기로 날고 노래방을 뛰는 마당에, 10대들이 느낄 정서적 부채감은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세태를 단순히 비웃기만 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여기에는 촌극은 물론이거니와 비극, 그리고 부조리극의 요소가 묘하게 섞여 있기 때문이다. 촌극이라 함은 당연히 오늘날 가족의 유대가 경제적 이해관계를 통해 관철된다는 점 때문이다. 비극적 요소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다. 어느 기러기 아빠의 외로운 죽음,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엄마의 고단한 삶, 심지어 전국 1등을 강요한 엄마를 살해한 사건 같은 일 말이다.
공교롭게도 이런 문제들은 정치적 부조리 요소도 포함한다. 왜냐하면 10대가 부채 의식 속에서 평생에 걸쳐 부모에게 빚을 갚으려 할수록, 그들은 가족이라는 인큐베이터 안에 갇히게 됨으로써 세계의 바깥을 향해 창조적으로 도약할 가능성이 점점 좁아지기 때문이다.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교육을 위한 투자와 헌신이 역으로 가장 비교육적 효과를 낳다니 말이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가족주의는 야만이어서 그런 것일까. 어쨌든 10대는 자기 자신과 가족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할 수밖에 없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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