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들의 밥, 머리와 옷, 게임과 노래같이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이 종종 복지 패러다임이나 권력관계, 그리고 진보-보수의 이념 문제로 번지곤 한다. 그만큼 사회적 관심사가 된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은 일종의 정치 언어인 셈이다.
지난 9월8일,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서울시교육청 공청회를 들여다보자. 이 조례안이 통과되면 내년 3월부터 서울시 중·고등학생의 두발과 복장이 자율화되고 이제는 학원에서도 체벌이 금지되며 학생들의 학내 집회·시위도 허용된다. 그렇다면 이후의 갑론을박은 비교적 명약관화하다.
청소년인권론이라면 장발·파마·염색은 기본이고 슬림핏 셔츠에 데님룩 배기팬츠마저도 반갑기 그지없다. 누가 아니꼽다 해코지라도 할라치면 교육청에 신고할 수도 있고, 정 안 되면 친구들을 모아 집회를 열 수도 있다. 반대로 청소년보호론의 반대 논리는 구구절절하다. 복장을 자율화하면 5공 시절처럼 학생들 사이에 빈부 격차가 ‘나타난다’, 일선 ‘학교의’ 자율성이 침해받을 수 있다, 성인과 구분이 어려워 ‘보호단속’이 어려워진다 등등.
그렇다. 이게 바로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학생인권’을 이런 맥락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다른 모든 것들이 아니라 하필이면 ‘두발과 복장’이(그리고 집회가) 그 모든 쟁점의 핵심인 것이다. 언론이 형성한 프레임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두발과 복장은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인 몸의 문제라는 점에서 민감하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말인즉, 우리가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다른 정치를 구상하기도 전에, 이미 두발·복장 자율화라는 프레임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대다수 성인은 방종에 다다를 10대들의 스타일을 우려하고 있고, 반면 때아닌 자유를 얻게 된 당사자 10대들은 (비수도권 학생이 수도권 학생을 부러워할 정도로) 기쁘기 그지없다. 결국 이렇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 중 아무도 ‘학생인권조례’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오늘날 10대를 ‘둘러싼’ 찬반 논란만이 있을 뿐이지, 10대가 실제로 ‘실행하는’ 정치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다. 이런 주장이 많은 사실을 의미할 수 있을 텐데, 어쨌든 여기서는 조례안에서 두 가지 정도만 주목해보도록 하자.
첫째, 세간에 축소된 채로 알려진 것과 다르게 서울학생인권조례(안)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점은 학습권에 대한 보장이다(사실 두발과 복장 자율화 정도는 경기도교육청에서도 이미 시행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조례안은 △상대평가에 대한 거부권 보장 △과도한 선행학습 금지 △학생회의 학생인권 보장 기구로 위상 강화 △향후 교육정책에 학생인권영향평가 실시 △이에 대한 기타 관리·감독관의 직권조사 등을 명시하고 있다. 매우 전향적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청소년들이 정치적 발언의 기회를 가지게 됐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곤 한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둘째, 세간에 왜곡된 채로 알려진 것과 다르게 조례안이 현재로선 전적으로 인권친화적이고 급진적인 것만은 아니다. 각종 조치들에 붙은 단서 조항 때문이다. 보수 진영의 반대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서울학생인권조례 초안에는 ‘학칙 또는 학생회의 규제’ ‘교과과정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같은 말들이 들어가 있다. 세간에 인식되는 것과 달리, 조례안에서 말하는 조치는 인권론과 보호론을 절충한 반쪽짜리 자유인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번 조례안을 급진적인 교육감이 국면 타개를 위해 내놓은 무리한 조치 내지는 정치적 승부수로 해석하곤 한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어쩌면 이 두 가지 맹점은 오늘날 청소년에게 정치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합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주 광범위하고도 암묵적인 합의 말이다. 적어도 현대 한국 사회의 청소년 문제에는 좌우남북은 없고 그저 위아래만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위로부터의 청소년 보호론이냐 아래로부터의 인권론이냐 하는 양자택일 프레임이 그 사실을 여실히 증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청소년’이란 말은 정치의 굉장히 모호한 지점을 건드리는 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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