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 일본의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시작한 유행어라고 하는데, 어쨌든 이 말은 13~15살 정도에 겪어봄직한 정서 구조를 의미하며, 나아가 그러한 정신세계를 ‘초딩’이라는 말처럼 비하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중2병이란 사춘기 시절에나 어울리는 철없는 망상 정도가 되겠다.
기왕에 병이라는 말이 붙었으니 ‘증세’를 살펴보자. 인터넷에 떠도는 중2병 테스트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오글거리는 멘트를 많이 적어놓는다’ ‘혼자서 중얼거린다’ ‘뭐든지 네거티브하게 보는 성향이 깊다’ ‘나는 큰 상처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가래침 뱉는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등등.
직관적으로 보더라도 소외감, 허세, 자기망상 같은 요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아가 중2병 그들에게는 ‘난 상처투성이야’ 같은 소외감마저도 허세나 자기망상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우울하고 세상이 진창일지언정,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포텐’(잠재력)을 터뜨려 대량살상이나 혁명 같은 것을 달성하겠다는 판타지가 바로 중2병인 셈이다.
중2병 현상은 일본 서브컬처(애니메이션·만화·게임·라이트노벨 등), 특히 그중에서도 에 원류를 두는 세카이계(セカイ系)의 묵시록적 세계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세카이계 서브컬처에서 주체는 과잉된 자의식을 바탕으로 위기에 빠진 세계에 직접적으로 도전하곤 하는데, 이는 중2병의 정서 구조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를테면 중2병 보유자들은 자신이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현실에 어떤 제약조건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우울증에 걸렸다 생각해도 실제로 우울증이 어떤 것인지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세계와 직접 만날 수 있고 세계를 자기 손으로 괴멸시키거나 개조할 수 있다고 믿을 뿐이다. 바로 그런 유사성 때문에 같은 작품에서는 여주인공이 세카이계의 오타쿠 친구를 중2병 증세라고 몰아세우기도 한다. 곧, 과잉된 자의식에 빠진 나‘님’이 별다른 사실관계나 인과적 접근법 없이 그저 진창일 뿐인 음모이론적 세계와 조우하는 것이다.
확실히 중2병이라는 증상은 개인적이거나 심리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이다. 좁게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대중문화를 통해 세계관을 형성한다는 의미 때문이고, 넓게는 그러한 세계관이 그들로 하여금 또래관계나 교육환경 같은 현실사회가 아니라 형언 불가능한 세계로 도피케 한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10대들이 자기만의 판타지에 빠져 사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중2병은 요즘 시기에 고유할뿐더러 보통의 판타지와는 분명 다른 맥락이 있다. 자의식-현실-판타지의 연결고리에서 현실이라는 중간항이 삭제된다는 점 때문이다. 라캉주의식으로 말하자면 상징계가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바로 이 점이 요즘 중2병의 고유성을 설명해준다. 중2병 보유자들은 어떤 현실적 매개도 없이 그저 실재의 불구덩이만 찾아다닌다.
이렇게 현실의 언어와 동떨어진 이들의 중2병은 세간의 해석처럼 그저 허세나 무개념에 불과한 것일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사회화가 덜 됐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중2병을 대할 때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라든가 ‘어머, 나 아직 중2병 아니야?’ 혹은 ‘어째 저렇게들 철이 없데?’라며 그냥 스쳐지나가곤 한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진짜 문제는 바로 이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허세의 시기를 졸업하고 중2병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그 시절 그렇게 혐오하던 무지몽매로서 사회화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과소화된 자의식만 가지고 죽은 지식을 답습하는 입시 기계가 되는 것이다. 현실을 넘어서고자 했던(하는) 희구는 단지 허세나 무개념으로 치부된 채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 미래의 인재에게는 자연스럽게도 판타지, 꿈, 상상력, 창의력 같은 것이 형성되기 어렵다. 이를 두고 공부 오타쿠 레알(REAL) 돋는 고1병이라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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