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알몸 졸업식’이 열린다. 그런데 웬걸, 학교 정문 앞에는 경찰들이 진을 치고 기자들은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취잿거리를 찾는다. 이번 졸업 시즌에도 아마 그러지 않겠느냐 하는 추측이다.
사회학적으로 봤을 때, 졸업식과 입학식 사이의 며칠은 의미심장한 시간이다. 그것은 교도소 수감자가 사회에서 감옥으로 들어가기 전의 시간과 흡사하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 기간에는 사회인도 아니고 죄수도 아닌, 동일성(Identity)이 지워진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중학생과 고등학생 사이, 혹은 고등학생과 성인 사이에 그들은 정지된 시간을 살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교복을 벗고 알몸으로 자기들만의 졸업식을 치른다는 건 단순히 병리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충만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밀가루·달걀·가위·식용유·간장·연겨자 등을 구입하고 ‘의례’(Ritual)를 치를 만한 비교적 인적이 드문 곳을 물색한다. 가위로 옷을 찢는다. 드러난 알몸은 밀가루와 달걀, 간장과 겨자로 범벅이 된다. 심지어 그 몰골로 도로를 질주하기도 한다.
사회문제라는 문제의식만 여과시켜놓고 보면, 사실 나는 근래에 이렇게 아방가르드한 퍼포먼스를 본 적이 없다. 놀랍도록 급진적이지 않은가. 남녀 가릴 것 없이 옷을 벗다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졸업식이라 선언하다니! ‘엄빠’(엄마·아빠) 같은 사람들에겐 기겁할 소리겠지만, 그들의 졸업식은 나름의 진정성을 지닌다. 공식 의전을 거쳐 각종 상장과 증서를 나눠받는 졸업식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말이다. 소름 돋는 과거에 안녕을 고하고, 그들 자신이 무규정 상태에 있음을 선포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알몸 졸업식은 단순히 학교 폭력 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것은 폭력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기합을 주고 사진을 찍는 등 온갖 수단으로 서로를 어른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당사자들은 이 의례를 단순한 폭력을 넘어서는 어떤 것으로 여긴다. 영화에서 보듯, 협곡을 지나 절벽을 기어 올라가서 독수리의 깃털을 뽑아오면 성인으로 인정해주는 부족사회의 전통도 있지 않은가. 그들 사이에서는 진정한 친구, 진정한 패밀리가 되는 통과의례가 바로 알몸 졸업식이다.
이 의례 중에 수치심을 견디느냐, 아니면 나가떨어지느냐 하는 문제는 결정적 차이를 가져온다. 알몸 졸업식이란 견디면 시험이 되고, 견디지 못하면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간혹 미디어에서 ‘피해 학생’을 동원해 알몸 졸업식을 비난하는데, 이 피해 학생이란 시험에 떨어진 낙오자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알몸 졸업식을 단순히 ‘문제아들의 일진 돋는 현상’이라 일반화하기엔 어려운 점이 있다. 왜냐하면 ‘견디면 합격, 못 견디면 낙오’라는 공식은 이미 익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들은 이들의 세계관과 의례를 이해 못하겠다고 토로하지만, 반대로 그들은 성인들이 주관하는 졸업식을 이해 못한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알몸 졸업식과 성인들의 정상 졸업식은 단지 서로가 서로를 불편해할 뿐인 하나의 거울 이미지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 둘은 서로를 너무 닮아 있다.
한국 사회는 이들의 하위문화적 의례에 대해 진중하게 숙려할 의사가 전혀 없는 듯하다. 그저 단속에 급급한 수준이다. 이번 졸업 시즌을 맞아 각 시도의 교육청은 알몸 졸업식과 ‘전쟁’을 선포하고 채찍과 당근으로 무장하고 있다. 채찍: 지역 경찰을 동원해 이들의 ‘폭력’을 더 큰 폭력으로 제압한다. 당근: 참여형·축제형 이색 졸업식을 유도해서 학교문화를 선도한다.
여기서 ‘이색 졸업식’이란 학부모 시 낭송에 교복 물려주기 같은 상상력에 기대고 있다. 놀랍지 않은가. 10대들은 학교문화의 폭력성을 따라잡았지만, 성인들의 상상력은 막나가는 10대들을 전혀 따라잡지 못하니 말이다. 고작해야 때려잡는 데만 성공할 뿐이고.
이번 ‘전쟁’은 어떻게 될까. 졸업 시즌이 다가온다. 따라잡을까, 때려잡을까.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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