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과 스펙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답: 둘 다 중요하다. 교내 상(賞)과 교외 상 중 어느 상이 더 좋은 평가를 받을까. 답: 어느 것이 됐든 적성과 꿈에 관련된 구체적 노력이 중요하다. 봉사활동 누계시간이 63시간 정도면 괜찮을까. 답: 이 세상을 구제할 수 있고 도와줄 수 있고 배려할 수 있는 인성과 가치관의 측면에서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드러내야 한다.
교육방송 <tv>에서 오가는 문답들이다. 학생들은 궁금해하고 입학사정관과 장학관들은 고민을 해결해준다. 카메라는 각종 상장과 표창장, 증명서들을 훑는다. 학생들은 ‘체계적으로’ 독서활동을 하고 봉사활동을 하며 동아리활동을 한다. 자기 PR도 빠지지 않는다. “저는 월드비전을 통해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자신이 후원하는 어린이의 사진을 들고 나와 ‘인증’을 받고자 한다. 뭔가 조짐이 이상하다.
‘잘나가는’ 10대들에게 스펙 쌓기는 가장 중요한 화두다. 토익이나 토플 점수가 몇 점인지, 각종 대회에서의 수상 경력은 어떠한지, 희망 분야와 관련된 자격증은 있는지, 이런 고민거리는 취업을 앞둔 20대만이 아니라 대입을 앞둔 10대들에게도 일상의 문제가 되고 있다. 입시문화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스펙의 시대가 도래한 것은 입학사정관제 이전에 대학별로 전형이 다변화된 시점부터다. 글로벌 인재 전형이니 리더십 특별 전형이니 하며, 입시생을 평가하는 독특한 기준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영어 점수, 수상 경력, 자격증, 동아리활동, 각종 포트폴리오 등으로 대변되는 스펙이 바로 그것이다. 10대들로서는 그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입시의 일상이 재조직될 수밖에 없다.
2순위는 참여정신의 발현이다. 세세하게는 동아리나 학생회 임원 경력부터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스펙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면 참여의 장은 학교 바깥으로까지 확장된다. 각종 시민사회단체 자원활동은 물론이고 선거관리위원회나 청소년정책 학생참여위원회 등에 참여한 경험까지 말이다. 여기서는 한두 가지의 에피소드를 곁들여 자신이 얼마나 참여의식이 강했는지, 그리고 주도성 있게 조직력을 발휘했는지 등을 보여주는 것이 내러티브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그렇게 봉사와 스펙, 그리고 참여와 스펙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는 10대들의 가장 중요한 성공 지침이 되고 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사회적 자본을 축적한 10대들은 또래 사이에서, 그리고 전체 사회에서 ‘개념’ 있는 인재로 인정받곤 한다. 그렇다. ‘불편한 진실’의 실체는 (단순히 아프리카 어린이의 얼굴이 스펙의 일부라는 사실을 넘어) 봉사와 참여라는 덕목이 스펙이라는 상징적 자본과 결합했을 때에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순수한 것이었고 또한 당위적으로 그래야 할 ‘사회적’인 봉사와 ‘정치적’인 참여가 어떻게 해서 스펙과 같은 ‘자본’으로 치환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쉽지만은 않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입시 규율은 과거와 같이 학생들을 무한경쟁의 세계로 단순히 몰아넣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적 덕성과 정치적 참여를 강조한다는 점을 봐도 알 수 있다. 이 ‘잘나가는’ 10대들은 자신의 사회성과 시민성에 자긍심을 가지며 아마도 평생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특정한 과정들을 통해 축소되고 물신화되는 현상을 보자면 불편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덕성과 참여를 평가한다지만 어쩌면 사회성과 시민성의 위기는 더욱 커져만 가는 것은 아닐까. 물론, 어떤 질문의 여지도 없이 스펙은 계속 쌓여간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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