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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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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는 청소년을 욕하는 사회

청소년이 욕설을 쓰는 맥락을 보지 않고 욕하는 청소년을 무조건 비난하는 캠페인만 벌이는 어른들의 공화국
등록 2011-10-20 11:02 수정 2020-05-03 04:26
» 법무부 법질서 캠페인 광고에 등장한 2NE1 멤버들이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연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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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께서 살아오셔서 우리 청소년들의 욕 수준을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며칠 전 어느 칼럼의 맺음말이었다. 실제로 지난 한글날을 전후해서 교육계와 미디어의 핫이슈 중 하나는 청소년들의 언어문화에 관한 것이었다.

먼저 실태조사가 있었다. 청소년들 70%가 욕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하루 종일 100번 이상의 욕설을 내뱉는다. 진단이 나온다. 대다수는 욕의 언어학적 기원에 대해 잘 모른다. 따라서 처방이 내려진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생 언어문화 개선 프로그램’이란 제하의 종합대책(일선 학교 언어문화 개선 특별수업 실시, 교육방송 공중파 다큐멘터리 방영, 10대가 직접 참여하는 사용자제작콘텐츠(UCC) 공모전 개최 등)을 발표했다. 마지막으로, 이 일련의 ‘조사·진단·처방’을 정당화하는 수사가 붙는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종대왕이 아시면 얼마나 노하실까?’

욕이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 문화정치적 해학성을 갖지 않는 한 욕은 잘못된 표현임이 분명하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욕을 교양 없고 비속하다 해서 그릇된 것으로 보지만, 정확하게 말해 욕은 성적으로 그리고 인간학적으로 문제적인 발언이기 때문에 그릇된 것이다. ‘씨발’과 ‘졸라’, 그리고 ‘니미 씨발’과 ‘병신’ 등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우리 대다수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여전히 가끔 사용하는 사람들은 조금 답답한 감이 없지 않다. 만약 이 말들이 없으면 어쩌면 미쳐버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욕의 기능적 속성 중 하나는 개인이 느끼는 유·무형의 압박을 언어로 내뱉음으로써 대상화하고 이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육두문자가 종종 웃음의 소재가 되는 것도 이런 까닭이 아닌가.

욕의 기원을 이야기해주면 10대들의 반응은 대략 두 가지다. ‘그렇다면 써선 안 되겠군’ 하며 순응하거나, ‘나나 내 친구는 그런 의미로 쓴 말 아닌데’ 하며 미심쩍어하는 게 보통이다. 이 미심쩍음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화자가 청자의 가족 상황이나 신체 상태를 가리켜 욕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청소년들의 욕 문화에서 관건은 욕 자체가 아니라 욕설이 사용되는 ‘맥락’에 있다. 그런데도 ‘조사·진단·처방·정당화’의 프로그램들은 욕이 어떤 동기에서, 어떤 관계에서,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 사용되는가를 전혀 묻지 않는다. 그들의 표적은 ‘욕하는 청소년’이지 ‘욕 권하는 사회’는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10대들의 욕이 사회적으로 주목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980년대 초였다. 국민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찍은 직후였다. 다음은 당시 신문에 실렸던 인터뷰 기사 중 일부분이다. “우리 아빠엄마요? 돈 없다고 늘 싸워요. 때리지는 않지만 말로요. 아빠가 화나면 ‘에이 빌어먹을 ×’이라고도 욕하고 ‘××년’ ‘뒈져라’, 뭐 그런 거예요. 그런데 아저씨는 그런 거 왜 물어보세요. 잘못한 것도 아닌데… 씨파.”

당시 10대 욕 문화에 대한 진단은 그래도 사려 깊은 것이었다. ‘이전에 욕은 어른들 고유의 문화였지만, 지금은 청소년들의 문화로 전이되고 있다’는 판단이 대표적이다. 즉, 책임은 성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핵가족화와 경제위기를 지탱해줄 만한 대안적 규범이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아노미에 빠진 건 10대 청소년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라는 것이다.

그렇다. 애초에 청소년 욕 문화는 주류 문화의 부산물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10대들의 욕 문화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은 (전통적 맥락에선) ‘금기를 통한 도덕률’과 (현재적 맥락에선) ‘청소년의 무지’라는 두 가지 근거에만 기초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캠페인’을 하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청소년은 절대 무지하지 않다. 적어도 정말로 개념 없는 몇몇 녀석들을 제외한다면, 욕설은 또래 내의 관계에서만 나타날 뿐이지 또래 외부의 관계에서는 전혀 발화되지 않는다. 정확한 어원과 언어학적 의미는 모를지언정, 욕이 나쁘다는 도덕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방영되는 드라마 에서 주인공 세종은 백성을 살리는 군주가 되기로 마음먹고 그들의 언어를 배운다. 거기서 제일 먼저 학습한 단어가 바로 ‘지랄’이다. 드라마긴 하지만, 어쨌든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께서 살아오셔서 우리 청소년들의 욕 수준을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도 10대들에게 욕 권하는 사회를 보고 한마디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다. “지랄.”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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