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났다. 조금 과장 섞어 말하자면, 지금 대한민국은 청소년 알바 천국이다. 어떤 청소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면 그의 정체는 뭘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폭주족이라 답했겠지만 이제는 확증하기 어렵다. 알바생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사이에 ‘청소년+오토바이’의 뜻하는 바가 바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통계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이래로 청소년 알바가 급증해왔다. 배달 알바, 재택 알바, 매장관리·판매 알바, 서빙·주방 알바 등등.
10대들은 알바를 해야만 한다. 왜 할까. 표면적으로는 휴대용 동영상 재생기를 구입하겠다는 의견이 제일 눈에 띈다. 인강(인터넷 강의)을 들으려면 PMP 등이 반드시 필요한데, 부모에게 손 벌리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씁쓸한 현실이다. 간혹 형이나 누나의 대학 등록금을 보태기 위해서라든지 부모에게 선물을 사주기 위해서라는 대답도 있는데, 이쯤 되면 대견하기까지 하다.
물론, 대다수의 알바는 소비를 주목적으로 한다. 동영상 재생기는 십중팔구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감상으로 용도 변경되기 일쑤다. 그 외에도 고가 화장품이나 전자담배 혹은 노스페이스 패딩 등을 목적으로 해서, 또래 사이의 유행을 따라잡(거나 선도하)기 위해 알바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성 친구에게 선물을 주려고 알바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문화적 품위를 유지하고 제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기를 두고 ‘과시적 소비’ 운운한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왜냐하면 20대와 달리 10대들의 알바는 주로 또래집단 내의 ‘상대적 빈곤’ 문제와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오해와 달리, ‘다 있는데 나만 없어’는 매우 비극적인 감정이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일정 정도 구조적 원인도 포함돼 있는 셈이다. 표준적으로 부과되는 소비수준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이를 감당하려면 제 발로 알바를 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알바생들은 그렇게 해서 노동 현장에 투신하게 되는데, 주지하다시피 노동의 현주소는 비극적이기까지 하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임금 탈취: 60%가 넘는 알바들이 최저임금 이하의 시급을 받고, 그마저도 떼이는 경우가 있다. 초과 노동: 업무시간 외의 잔무 처리는 아예 정산도 되지 않는다. 위험 노동: 업종에 따라선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작업장 폭력: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으로 감시받거나 반말과 욕설을 듣곤 한다. 성추행: 10대 여성은 종종 희롱을 당하기도 한다. 간접 고용: 배달의 경우엔 아웃소싱을 하기도 해서 알바생의 안녕과 복지는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기가 찰 노릇 아닌가. 그동안 불안정 노동은 이주민, 고령자, 싱글맘, 저학력자, 장애인 등의 문제로만 인식돼온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거기에 청소년도 등재돼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최근에 ‘청소년 알바 10계명’이나 ‘1318 행복일터 캠페인’ 같은 처방책이 나오고 있다. 청소년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정부와 비정부기구(NGO) 등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진짜로 제기하려는 문제는 이런 캠페인이 운이 좋아 당장의 현안을 해결하더라도 구조적으로는 어떤 쟁점들이 은폐된다는 점에 있다. 첫째는 착취의 문제다. 10대들의 노동력을 탈취(Dispossession)하지 말자는 캠페인은 도덕적 차원에서는 해될 것이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성인들의 노동력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으로 착취(Exploitation)하자는 의견이므로 미심쩍은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분명 우리 대다수는 왜 탈취와 폭력은 안 되고 착취는 양해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전혀 고려를 못하고 있다.
둘째, 노동 학습(Learning to labour)의 문제다. 청소년들의 알바가 돈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그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자본주의 정신을 일찌감치 학습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 역시 별 검토를 거치지 못하고 있다. 셋째, 분과적 사고체계의 문제다. 전술했듯이 알바의 동기가 소비생활에 있었던 만큼 구조화된 관점이 필요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를 노동의 문제로 국한해 접근하곤 한다. 관점의 분절성 역시 간과되는 게 현실이다.
어쨌거나 오늘날 10대는 알바를 해야만 한다. 총체적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극한의 사유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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