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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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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중흥의 사명이 사라진 이후

청소년이 공적 주체로 성장할 가능성이 사라진 국민교육 시대 이후의 딜레마… ‘사명’이 불가능한 시대에 파편화된 연대의 회복은 어떻게 가능한가
등록 2012-02-25 13:43 수정 2020-05-03 04:26

마지막 연재이니 유종의 미를 좇아 종장에 어울릴 법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과거 주입식 교육의 정점에 아마 ‘국민교육헌장’이 있지 않을까 싶다. 한 구절, 아니 한 글자만 틀리게 암송해도 체벌을 당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국민교육헌장’이 유명무실해진 것은 공교롭게도 ‘세계화’가 제창되던 1994년쯤이었다. 어쨌든 군부독재가 끝났으니 군사적 규율화는 효력이 사라졌고, 세계화가 당면 과제인 마당에 10대를 국민으로 호명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국민체조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혹은 이미 사라졌다). 2000년대를 목전에 두고 한국방송과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주도해 ‘새천년 건강체조’가 제정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의 주도로 ‘청소년체조’가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국민’교육의 시대가 끝난 것이다.

확실히 우리는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듯하다. 이제 10대들은 더 이상 단순하게 국민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기왕 체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만 놓고 보면, 이제 그들은 국민이 아니라 건강한 육체 혹은 규범화된 청소년으로나 호명되는 셈이다. 그들에게는 민족을 중흥할 의무가 없고, 조상의 빛난 얼을 되살릴 숙명이 없으며, 자주독립이나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사명도 없다.

혹자는 교육에서 군사적 규율이 사라진 것은 옳은 일인데 왜 이리 호들갑이냐 할 법도 하다. 알다시피 ‘국민교육헌장’ 따위는 교육계가 아니라 행정부의 독단에 의해 추진됐고 그 결론도 ‘반공’ 정신 등으로 접합되는 등 문제의 소지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화 시대, 그리고 21세기를 맞아 청소년을 ‘국민’으로 호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우리는 20년 가까운 세월을 돌이켜보건대, 국민교육이 사라짐으로써 어떤 효과가 생겼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10대들은 과거와 같이 공적 주체로서 성장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민교육 체제는 민족이 됐든 인류가 됐든 ‘참여’와 ‘봉사’를 운운하며 10대를 공적 공간으로 편입시켰다. 그것은 말 그대로 ‘사명’이었다.

오늘날 10대에게는 그런 사명이 전혀 없다. 그들은 단지 건강한 신체를 가지면 되고, 그래서 사회적 규범에 종속돼 건전한 노동력으로 성장하면 그뿐이다. 그리하여 제 한 몸 건사해 행복하고 안정적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고 ‘사명’일 따름이다. 실제로 오늘날 교육은 이렇게 가르친다. “이게 다 니들한테 득 되는 길이야.”

국가를 중심으로 국민이라는 집합적 동일성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 10대들은 (그저 분열증적 민족의식만 지닌) 낱낱의 욕망덩어리로만 존재할 뿐이다. 연대가 불가능한 교실, 그것은 ‘자연상태’와 다를 바 없다. 그 공간에서 녀석들은 서로 선을 긋고 적을 만든다. 폭력과 야만은 그렇게 구조화된 셈이다.

어떤 인간도 사회적 관계 없이는 생존할 수 없기에,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관계망을 구축하려 한다. 별다른 건 없다. 이미 어른들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국가나 민족의 자리에, 상품이나 ‘스펙’ 같은 각종 물신만 있을 뿐이다. 선진문명 대한민국에서는 오로지 이들을 통해서만 야만적 폭력이 잠시 중지될 수 있지 않은가. 그것도 아주 잠시.

이게 바로 ‘요즘 애들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라는 푸념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대답이 될 것이다. 그들은 과거의 10대와는 다른 삶의 조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난 1년 동안 이어진 ‘18 세상’을 이런 물음으로 마무리할까 한다. 사명이 불가능한 시대에 ‘연대’는 어떻게 회복될 것인가. 물론 과거와 현재와는 전적으로 다른 연대여야 하겠지만 말이다.

*‘김성윤의 18 세상’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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