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0년쯤 지나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이른바 ‘다문화’ 청소년들이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다문화 청소년이란 탈북 새터민 청소년, 해외 한인 가정 청소년, 국제결혼 가정 청소년, 이주노동자 가정 청소년 등을 의미한다. 어릴 적 별 뜻도 모르고 불렀던 노래 가사가 “우리는 한겨레다. 단군의 자손이다”라고 했을 때, 바로 그 한겨레와 단군의 자손이라는 범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되는 존재들인 셈이다.
이들에게 삶의 질곡이 어떨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속인주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 자녀의 경우에는 그저 주민등록증 발급만이 삶의 유일한 탈출구로 여겨지곤 한다. 대개의 청소년에게 민증이 어른이 되는 길인 데 비해, 이들에게 민증은 어른이 된다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한국인임을 인정받는 길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삶은 번민과 공포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경험하는 문화적 이질감이 또래 내부에서의 따돌림, 한국어 능력 부족으로 인한 학업 부진, 정체성 문제에서 오는 심리적 혼란 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영화 에서처럼 “야, 니네 엄마 베트남에서 왔다며? 얼마 주고 왔대?”라는 식의 추궁은 이들에게 지금 당장의 곤란은 물론이거니와 성인이 돼서도 남을 트라우마가 된다. ‘원한’은 그렇게 쌓인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중등교육 과정에서부터 체계적으로 이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사에 따르면, 이른바 다문화 자녀의 초등학교 재학률은 80%에 이르지만 고등학교 과정에선 26%에 불과하다. 학교 입학 절차가 까다로워서, 한국어를 못 알아들어서, 공부를 따라가기 힘들어서 등등 표현은 다양하지만 내용은 단 하나다. 현행 입시교육에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교 처지에서 이들은 따돌림을 유발하고 평균 성적만 까먹는 애들로 인식되기 일쑤다. 이런 체제에 대응하는 길은 일찌감치 탈학교하거나 엎드려 잠을 청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선 거의 ‘저학력=저소득’ 아니던가. 게다가 애초부터 저소득 가정의 자녀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실업 아니면 불안정 노동이다. 사회적 성공에 대한 꿈이 제한적인 그들로서는 공포와 원한이 하나의 감정이 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 방리유 사태가 어쩌면 남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인지, 이런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다문화 교육이 유행이다. 잠깐 살펴보자. 교육의 개략적인 방향은 이렇다. 학습 부진아 특별 교육을 실시한다, 한국어반을 운영한다, 대학생 멘토를 활용한다, 다문화 대안학교를 설립한다, 상급학교의 입학 기회를 확대한다 등등. 이렇게만 하면 소외받는 다문화 청소년도 (적어도 청소년기에는) 잘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종례가 끝날 즈음 교사가 갑자기 한마디 한다. “다문화 아무개야! 집에 가지 말고 남아라. 한글 공부해야 한다.”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제 이름을 잃은 아이의 새 이름은 그저 다문화다. 이는 단순히 해당 교사의 교육 역량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오늘날 다문화 청소년들이 주류 사회에 적응해야만 하는 주체이자 갱생 프로그램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확실히 이건 난센스다. 다문화 교육이라면 응당 모든 국민이 받아야 할 텐데, 실상 그 대상은 다문화라는 청소년에 국한해 있고 내용도 사회적 약자를 갱생하는 데 머무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가 다문화를 배우는 게 아니라 다문화에게 우리를 가르치려 든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까닭에, 이들은 지금 우리 사회가 (단일문화와 다문화 사이에서) 어떤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드러내주는 존재라 할 만하다. 이제 10년쯤 지나면 그들이 어떤 하위문화적 대응을 해올지 주목해봄직하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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