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명진 기자
3천만 명 고객을 보유한 농협에서 때아닌 전산 마비가 며칠째 이어졌다. 원인은 한 노트북. 한 협력사 직원의 노트북에서 삭제 코드를 누군가 실행해 3천만 명이 발을 동동 굴렀다. 명령어는 모든 파일 삭제 명령. ‘버튼을 누가 눌렀나’를 두고 설왕설래다. 협력업체 직원이 “아무 짓도 안 했다. 억울하다”고 외친다. 검찰에서는 다른 누군가가 그 직원의 컴퓨터를 만지지 않았나 조사 중이다. 협력업체 직원에게 서버 관리를 통째로 맡겼다는 것도, 버튼 하나로 일상이 뒤죽박죽됐다는 것도, IBM 직원만이 농협의 전산망을 좌지우지할 주요 업무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들끓는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이때 농협 회장이 나섰다. 감수성이 대단하다. 자신과 부하 직원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분이다. “나도 피해자예요.” “기자들이 당한 것이나 내가 당한 것이나 똑같아요.” “직원들을 달래서라도 빨리 복구해 고객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문제 삼지 않았어요.”
한국 최고의 호텔은? 어려운 질문이다. 한국에서 최고의 감수성을 가진 호텔은? 바로 신라호텔, 호텔신라다. 그중에서도 신라호텔의 뷔페식당은 고객을 배려한 감수성이 으뜸이다. 그곳 드레스코드, ‘한복 착용 출입 금지’. 우리는 이제야 알았다. 한복은 위험한 옷이었다. 부피감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알았다. 위험한 10대 집단, 민족사관고(교복이 한복), 위험한 정치인 강기갑(강달프, 한복인지 마법사 옷인지 확인 요망).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혼식도 위험 요소가 곳곳에 있다. 앞으로는 전통혼례는 안 된다, 위험하니까. 폐백도 생략이다. 위험하니까. 안전한 신라호텔, 안전한 대한민국, 감수성 만세.
그리고 알았다. 안전한 군대 자위대, 50주년에 술잔치가 벌어져도 오케이, 사요나라! 기모노는 오케이, 부피감이 없으니. 감수성 넘치는 사장이 나섰다. “민망하다.” “고개를 못 들겠다.”
또 파겠다고 나섰다. 이번에는 지류, 하천이다. 국가하천 61개 중 43개가 대상이다. 나머지 18개는 이미 4대강 사업 안에 포함돼 있으니 이 땅의 모든 하천을 뒤엎겠다는 것이다. 지방하천 3772개도 삽질의 대상이다. 우리는 안다. 한번 실행되면 좀처럼 막을 수 없다. 인정사정 없는 일방통행의 감수성으로 “천지개벽” 외치며 22조원을 쏟아부었다. 4대 종단이 나서서 중단을 요구했던 일이다. 그들의 감수성에 쓰이는 주재료는 콘크리트, 동네 곳곳의 실개천을 콘크리트로 치장할 돈은 20조원이다. 밀어낸 유기농단지 위로 자전거길 만들고, 그 곁에 댐 세워 레저활동을 하도록 배려하는 마음, 그 마음의 정체는 무엇인가. 마늘밭 100억원에 놀란 가슴, 20조원으로 달래라는 그분의 감수성 넘치는 배려인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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