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에 추억을 곱씹는 가을이 왔어요. 그런데 곱씹어도 너무 씹었나봐요. ‘복고’ 타임머신을 탄 것 같아요. 신문 1면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튀어나오고, 곳곳에서 “빨갱이를 잡자”고 시끄러워요. 아예 장발을 하고 나팔바지를 입을까봐요. 복고 트렌드 따라가기 너무 어려워요.
복고 열풍을 타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캐릭터도 머리를 들이밀어요. ‘똘이 장군’, 의 ‘철이’는 귀엽기라도 해요. 얼마 전 고개를 내민 이는 바로 법조계의 민폐 캐릭터 ‘흡사마’, 이동흡(62)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에요. 올해 초 헌법재판소장 후보에 올랐던 강경보수 성향의 흡사마는 ‘화통한 성격’으로 유명했어요. 지난해 9월 헌법재판관을 퇴임할 때까지 주요 사건에서 웬만하면 정권을 옹호해주는 ‘쿨함’ 덕에 ‘합헌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었으니까요. ‘알뜰한 생활 습관’도 몸에 ‘흡’(吸)했다지요. 재판활동 보조 비용으로 받은 ‘특정업무경비’ 2억5천여만원을 이자가 붙는 머니마켓펀드(MMF) 계좌에 모아둘 정도였으니까요. 물론, 그렇게 불린 돈은 보험료·신용카드대금 등에 쓰는 ‘횡령의 창조적 발상’을 이끄신 분이에요.
그랬던 흡사마가 이번에는 변호사 개업을 선언했다가, ‘개망신’ 당했어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9월11일 이 전 재판관 변호사 등록 신청을 거부하기로 했어요. 서울지방변호사회를 통해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하지 않으면 서울에 있는 법무법인에서 일하거나 개인 법률사무소를 차릴 수 없어요.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등록 거부 사유에 대해 “비난받을 행동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장직을 포기하였음에도 변호사직은 포기할 수 없다는 태도는 변호사직의 고귀한 가치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말했어요. 어쩌면 흡사마는 “그때 좀더 버틸 걸 그랬다”고 후회할지도 몰라요. 이제 그만 ‘흡’(吸)할 생각 버리고, 그냥 좀 쉬세요. 그러다 숨 넘어가요.
여기 좀 쉬어야 할 분 또 있어요. 한국공항공사 사장 후보 3명 가운데 1명으로 나온 김석기(59)(사진)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에요. 2009년 취임하자마자 집회·시위에 대해 ‘무관용’ 대응을 캐릭터로 내세우다가, 취임 이틀 만에 벌어진 ‘용산 참사’에서 철거민 농성을 과잉 진압해 사퇴한 인물이죠. 그는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사퇴한 뒤에도 일본 오사카 주재 총영사도 하고, 국회의원도 꿈꿨어요. 김 전 청장, 쉴 줄 모르는 캐릭터예요. 그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향해 내달리는 가운데, 지난 9월12일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용산 참사 당시 망루와 남일당 4층 옥상에서 추락해 가까스로 생존한 철거민 2명의 재판이 열렸어요. 법원은 이들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 혐의에 대해, 원심의 징역 4년형을 파기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어요. 김 전 청장님, 복고 캐릭터라고 하기엔 용산 참사의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러니 좀 쉬세요. 웬만하면 쭈~욱 말이죠.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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