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사실 중 하나가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제출한다고 해서 바로 경찰이 출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집에 도둑이 들거나 폭행을 당하는 등 급박한 사태가 벌어지면 112 신고를 해서 경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이럴 때는 고소장을 제출하지 않는다. 고소장을 작성해 제출하는 사건은 대개 급한 일은 아니고 내용이 복잡한 경우가 많아서 최소한 수개월에 걸쳐 조사를 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보통이다. 만일 고소장을 제출할 때마다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를 체포한다면 사업 관계로 다툼이 벌어지거나 빌려준 돈을 갚지 못하는 등 일상적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잡혀가는 사람이 생겨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예외가 하나 있다. 바로 간통 사건이다. 최근에는 간통죄에 대해 위헌 주장이 강해지면서 처벌 강도가 낮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간통 피의자는 글자 그대로 ‘끌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절도·도박죄보다 엄벌에 처하는 간통죄
간통 사건이 경찰서 문을 넘기까지 전형적인 모습은 대략 이렇다. 남편이나 아내의 수상쩍은 행적에 애태우던 배우자가 어느 날 결정적인 증거를 잡게 된다. 처음 한두 번은 용서하고 넘어가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서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간통죄로 ‘집어넣겠다’는 결심을 한다. 남편 혹은 아내의 뒤를 밟아 여관에 들어가는 장면을 포착하면 경찰에 신고를 한다. 간통죄는 친고죄이기 때문에 즉석에서 고소장을 작성해 제출하고 동시에 이혼소송도 신청해야 한다. 고소장을 받은 경찰관은 피해자와 함께 방문을 두드리며 들이닥친다. 일가친척이 함께 나서는 경우도 많다. 방 안에 있던 두 남녀는 혼비백산해 옷도 제대로 갖춰입지 못한 채 이불 속으로 숨는다. 대개 사진을 찍어서 수사기록에 첨부하는데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현장에서 분을 참지 못한 피해자가 손찌검을 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몇 년 전까지 간통 피의자는 거의 예외 없이 구속되었고 재판에서도 실형이 선고되었다. 전형적인 사안의 경우 징역 8개월에서 1년 정도를 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우리 형법상 간통죄는 다른 죄에 비해 그렇게 형이 높은 죄가 아니다.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법정 최고형이 징역 3년인 상습도박, 5년인 위증, 6년인 절도, 7년인 장물취득 같은 죄보다 훨씬 무겁게 처벌받는 때가 많았다. 도둑질을 하거나 장물을 취득해도 초범은 대개 실형을 선고받지 않는다. 구속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간통죄를 저지르면, 결혼 생활이 이미 사실상 파탄에 이른 상태거나 배우자로부터 장기간 폭행에 시달리는 등 특별한 정상참작 사유가 없는 한, 거의 예외 없이 구속을 하고 ‘옥살이’를 시켜왔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물론 현재 서구에서 간통죄를 처벌하는 법규정이 있는 나라는 이탈리아 정도밖에 없다고 하지만(이탈리아 형법은 아내가 간통을 하면 무조건 처벌하지만, 남편의 경우는 첩을 두어야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실제로 이 조항이 적용되는지는 의문이다), 과거 많은 문화권에서 간통은 성폭행보다 훨씬 무겁게 다루어졌다. 법과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일부 국가에서는 아직도 돌팔매질에 의한 사형을 당하거나 채찍질을 당할 수 있는 범죄가 간통이다. 사회에서 용인되는 형식으로 맺어지지 않은 남녀의 성적 관계는, 그것이 합의하에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강렬한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도덕적 엄숙주의가 지배하던 17세기 미국 보스턴의 청교도 사회에서 간통을 저지른 남녀는 어떤 인생을 살게 되었을까? 그 시절의 간통 얘기를 다룬 소설이 너새니얼 호손의 다.
주홍색 A자가 새겨진 묘비여주인공인 헤스터 프린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을 유럽에 남겨둔 채 보스턴으로 온다. 뒤따라올 예정이던 남편은 소식이 두절됐고 헤스터는 혼자 산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임신을 하고 딸을 낳는다. 누군가와 성관계를 가진 것이다. 간통죄를 저지른 헤스터는 평생 부정을 상징하는 ‘A’자를 가슴에 달고 다녀야 하는 형을 선고받는다. 아이를 안은 채 처형대에 올라 마을 사람들의 질타를 받던 헤스터의 눈에 나이 든 남자가 들어온다. 죽은 줄 알았던 헤스터의 남편이, 하필이면 아내가 간통죄로 단죄받는 그 시각에 돌아온 것이다.
헤스터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밝히지 않는다. 처형대 위에서도 답변을 거부했고 의사가 된 남편이 감옥으로 찾아와 캐물었을 때도 대답하지 않았다. 남편은 누군지 모르는 연적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그는 헤스터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집요하게 불륜의 상대방을 찾아다닌다.
헤스터의 연인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젊은 목사 딤즈데일이었다. 처형장에도 입회했던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자기 아이가 뭇사람들로부터 질타받는 것을 보면서도 보호해주기는커녕 오히려 헤스터를 꾸짖는 설교를 해야만 했다. 양심의 가책과 내심의 갈등으로 그는 점점 쇠약해진다. 이러한 딤즈데일의 병을 헤스터의 남편이 치료해주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딤즈데일이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날 이후 그는 교묘한 방법으로 딤즈데일을 괴롭힌다.
감옥에서 나온 지 7년이 지난 어느 날 숲 속에서 딤즈데일을 만난 헤스터는 딸과 함께 바다 건너 유럽으로 떠나자는 제안을 한다. 딤즈데일은 제안을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새로운 희망을 갖지만, 계획을 알아챈 남편은 같은 배로 따라가려고 한다. 그들이 자유를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장기간의 고뇌로 극도로 쇠약해진 딤즈데일은 경축일에 설교를 마친 뒤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헤스터와 딸을 데리고 처형대에 올라 자신이 불륜의 상대였음을 고백하고 숨을 거둔다. 옷을 풀어헤친 그의 가슴에는 ‘A’자가 새겨져 있었다. 복수를 이어가기 위해 딤즈데일을 만류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헤스터의 남편은 허탈감에 빠져서인지 1년 뒤 모든 재산을 헤스터의 딸에게 남기고 죽는다. 딸을 데리고 유럽으로 건너간 헤스터는 몇 년이 지난 뒤 보스턴으로 돌아와 혼자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나란히 묻힌 딤즈데일과 헤스터의 무덤 앞에는 검은색 바탕에 주홍색 글자 ‘A’가 새겨진 묘비가 세워진다.
인권침해 빈번한 간통죄 수사배우자를 두고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갖는 간통을 올바른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간통 사건을 다루다 보면 피해자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본다. 자녀에게도 쓰라린 기억이 남는다. 이혼이 금지된 것도 아닌데 결혼 관계를 유지한 채 간통을 하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성인 남녀가 합의하에 맺는 관계에 국가가 형벌권을 휘두르면서 개입해야 하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실제 상황에서 의외로 인권침해적 조사가 빈발하는 것이 간통죄 수사다. 여관에서 잠을 자다가 붙잡힌 남녀는 대부분 혐의를 인정하지만, 일단 부인을 하게 되면 사건의 성격상 입증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나온 피의자들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리기도 곤란하기 때문에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수치심을 자극하는 조사 방법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쉽게 말하자면 “여자를 데리고 여관에 들어가서 그냥 잠만 잤다니, 당신 고자야?”라는 질문을 던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부당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5공 치하에서 상부의 압력을 무릅쓰고 ‘형제복지원 사건’을 수사하는 등 특수전담 검사로 한 시절을 풍미한 김용원 변호사도 그의 저서 에서 제발 간통 피의자에게 수치심을 주는 조사는 그만두자고 하소연한 일이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간통죄를 유지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형법상 간통죄는 ‘성풍속에 관한 죄’의 일종으로 규정돼 있다. 사회의 성풍속을 지키기 위해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는 성인 남녀를 감옥에 집어넣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올바른 성풍속’이 존재하기는 할까. 가부장적 풍조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 과거에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박현욱은 라는 소설을 통해 한 여자를 아내로 둔 두 남자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그린다. 세 사람은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고 만족스러워한다. 세계 3대 공상과학소설(SF) 작가 중 한 명인 로버트 A. 하인라인은 서기 2075년의 달세계를 그린 소설 에서 여러 명의 남편과 여러 명의 아내가 한 가정을 이루는 ‘가계 결혼’을 그럴듯하게 묘사한다. 비약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현재의 일부일처제도 사회적 조건이나 다수의 선호에 따라 유지되는 것 아닐까. 그와 다른 형태의 관계를 가진다고 해서 단순한 비난을 넘어 ‘처벌’을 하는 것이 과연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까.
불이익을 주는 다른 방식도 이미 있어재작년에 헌법재판소는 간통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다. 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지만, 법률이 위헌 결정을 받으려면 6명의 위헌 의견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간통죄가 유지되게 된 것이다.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혼인관계를 보호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간통을 처벌하는 것은 적절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형벌로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그렇게 유지되는 혼인은 부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엄격한 간통죄가 있었음에도 의 헤스터 부부, 딤즈데일과 딸은 모두 불행한 삶을 살았다. 헤스터가 이미 남편과 파탄 상태에 이른 이상 차라리 딤즈데일과 딸을 데리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 아니었을까.
초임 검사 시절 왜 간통 피의자는 예외 없이 구속하고 실형을 받게 해야 하느냐고 상사에게 물어본 일이 있다. 그분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금 검사, 그런 상황에서 누가 복수를 하고 싶지 않겠나.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줘야지”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 대답이야말로 간통죄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처 입은 피해자의 마음을 풀어주고 대신 복수를 해주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간통죄의 역할이다. 그렇지만 정말 그런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형벌이 아닌 다른 수단을 써야 하지 않을까.
어느 나라에나 간통을 저지른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는 제도는 있다. 이혼을 당할 수 있고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 사회적 비난도 받는다. 타이거 우즈의 불륜이 드러났을 때 그는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형벌로 개인의 사생활이나 부부관계를 유지하려는 나라는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로맹 가리는 에서 전쟁이나 테러 행위에 비한다면 성적 일탈은 무한 배나 수긍할 수 있다고 하면서 “누구도 나로 하여금 성적 행위 속에서 선과 악의 기준을 보도록 만들지는 못하리라”라고 말한다. 그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더라도 복수를 위한 제도는, 이제는 폐지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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