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머리카락은 빛을 내어 남자들을 흥분시킨다. 그게 여자가 베일로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이다. 만약 베일을 쓰지 않는 게 더 문명화된 것이라면, 동물들이 우리보다 더 문명화됐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란 출신의 작가 마르잔 사트라피의 만화 에 나오는 장면이다. 1979년 팔레비 국왕을 축출하고 종교혁명을 완수한 호메이니 정권은 여성들이 의무적으로 베일을 써야 한다고 공포한다. 이에 따라 정부 관료가 TV에 출연해 정부 방침을 발표하면서 하는 말이 바로 위의 설명이다. 당시 10살이던 작가는 그러한 지시에 따라 학교에서 베일을 쓰기 시작한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 이에 대한 반작용이 유럽을 비롯한 서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font color="#C21A8D">수녀복은 허용, 서구의 차별</font>
지난 7월13일 프랑스 하원은 정교분리를 출범시킨 혁명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부르카·니캅 등 이슬람 여성의 얼굴 전체를 가리는 베일의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찬성 355표, 반대 1표의 압도적인 표차다. 원래 이슬람에서 사용하는 여성용 베일에는 히잡·차도르 등 얼굴을 내놓는 것들이 있고, 부르카·니캅 등 얼굴 전체를 가리는 종류가 있다. 프랑스 하원은 그중 얼굴을 가리는 베일의 착용을 금지한 것이다.
법률로 부르카의 착용을 금지한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2004년부터 이미 공립학교에서 종교적 의미를 갖는 의상이나 장신구를 착용하는 것이 금지돼 있었다. 독일은 16개 주 중에서 8개 주가 히잡 등 종교적 의상의 착용을 제한하는 법률을 가지고 있다. 교사가 학교에서 이슬람교에서 사용하는 베일을 쓰는 것은 금지된다. 그러나 그중 5개 주는 수녀복 등 기독교 계통의 종교적 의상을 착용하는 것은 허용한다. 히잡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위법이지만, 수녀복을 입고 교단에 서는 것은 괜찮은 것이다. 기독교적인 서구 문화 전통을 보여주는 것은 교사의 윤리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네덜란드에서도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등 이슬람 의상을 입는 것을 금지하는 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고, 덴마크에서는 같은 내용의 법이 발의되었다. 영국의 경우 법률을 만드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베일 착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뜨겁다. 외무장관을 지낸 잭 스트로는 언론을 상대로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착용하는 이슬람 여성은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해친다”고 발언했고,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이슬람 여성의 베일이 “분열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부르카의 착용을 금지하는 근거는 다양하다. 우선 9·11 이후 급격히 대두된 안전상의 이유가 있다. 얼굴이나 신체를 가리는 종교적 의상은 테러리스트 적발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덴마크에서 부르카 금지 논쟁이 촉발된 것도 베일을 쓴 여기자가 공항 검색대를 아무런 제지 없이 통과한 사실이 보도되면서부터다.
유럽 국가들이 주로 교육 현장에서 부르카의 착용을 금지하다 보니 교육적인 이유도 근거로 제시된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눈을 맞출 필요가 있는데 니캅 등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쓰면 그것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 통합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얼굴을 가리는 부르카나 검은 천으로 몸 전체를 가리는 차도르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눈에 확 들어온다. 종교적 표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소통을 거부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속하는 공동체와는 별개의, 분리된 집단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를 내세우든 개인이 의상을 선택하는 데 국가가 개입하려는 시도는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인권단체들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부르카 등 베일은 여성이 착용하는 의상이라는 이유로 성적 차별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특히 독일과 같이 이슬람 의상을 금지하면서도 수녀복 등 기독교 계통의 옷은 허용하는 국가가 있다는 점을 들어 명백한 종교 차별이라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슬람 국가에서는 서구의 이러한 경향에 강한 비판을 가한다.
<font color="#C21A8D">여성에게 베일 벗기를 강요한 왕조</font>
언뜻 보기에 이러한 주장은 모두 타당한 것으로 들린다. 특정한 종교를 믿는 여성들이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얼굴을 가리는 베일을 쓰겠다는데 국가가 무슨 근거로 막겠다는 것인가. 기독교적 전통을 가진 나라에 그 나름의 문화가 있는 것처럼 이슬람 사회에도 마찬가지로 자신들만의 규범이 있을 수 있지 않나. 일각에서는 ‘테러와의 전쟁’이 선포된 이후 은연중에 이슬람교 신자 전체를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차별하려는 음모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부르카·히잡 등 베일을 쓰는 여성의 생각은 어떨까. 이란에서 태어나 자라고 서구의 생활도 겪었던 여성 마르잔 사트라피가 스스로의 삶을 만화로 그린 에서는 그 생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이란이 ‘페르시아’라는 이름을 버리고 ‘이란’이라는 국호를 선택한 것은 1935년 리자 샤 국왕 때의 일이다. 리자 샤는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의 꼭두각시였다. 풍요의 땅인 이란은 오래전부터 외부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내부의 폭군들도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데 한몫 단단히 했다. 작가의 아버지는 어린 마르잔에게 이란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2500년간의 폭정과 굴종”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 시작은 페르시아의 왕들이었고, 다음으로 서쪽으로부터 아랍의 침공이 있었으며, 뒤를 이어서 동쪽으로부터 몽고의 침략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근대 제국주의였다.” 근대 제국주의가 앞세운 것이 바로 리자 샤 국왕이다. 그는 서구 문화를 도입해 여성이 차도르를 착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리자 샤의 뒤를 이은 국왕이 바로 팔레비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1941년에 즉위한 그는 1953년 석유 국유화를 내세우면서 개혁을 추진한 총리 모사데크와 대립하다가 영국으로 달아났지만, 미중앙정보국(CIA)의 조종을 받은 친위 쿠데타에 힘입어 사흘 만에 권좌에 복귀한다. 그때부터 25년간 이란 국민은 잔인하고 폭압적인 팔레비의 통치에 시달린다.
폭정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어린 시절의 작가가 기억하는 사건만 보더라도 끔찍하기 짝이 없다. 팔레비 정권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극장의 문을 잠그고 불을 지른다. 그곳에서만 400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9살이던 마르잔이 가정부를 따라 몰래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검은 금요일’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군인이 그랬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1979년 호메이니가 이끄는 혁명이 성공하고 팔레비가 망명하자 모든 이란 국민은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 역사상 가장 큰 축제”가 열린 것이다. 3천 명이 넘는 정치범이 석방되었고, 그중에는 마르잔의 삼촌 아누쉬도 있었다. 반정부 활동을 하다가 소련으로 도망갔던 아누쉬는 귀국하자마자 체포돼 9년 동안의 수감 생활을 했다. 아누쉬를 비롯한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시대를 꿈꾼다. 비록 혁명은 종교의 이름으로 일어났지만, 민중이 중심이 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아누쉬는 이렇게 말한다. “(국민을 통합시켜서 혁명을 일으킨 것은 종교의 힘이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나라를 운영하는 방법을 모르지. 그들은 다시 모스크로 돌아갈 테고, 프롤레타리아가 다스린다! 이건 필연이야!! 이게 바로 레닌이 에서 설명한 것이지.”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모스크로 돌아가지 않는다. 폭군은 사라졌지만, 종교의 이름으로 또 다른 절대권력이 탄생한 것이다.
<font color="#C21A8D">여성에게 베일 쓰기를 강요한 이슬람 혁명</font>팔레비가 미국으로 망명했을 때, 그가 순금 수도꼭지를 사용했었다는 것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호메이니를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은 그런 부패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올 것을 강요하는 점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혁명 당시 풀려났던 정치범들은 재수감되거나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9년 만에 석방됐던 아누쉬 삼촌은 러시아의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되었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 사건을 뛰어넘어 이란 사회를 근본적으로 어둡게 만드는 것은 종교적 교리의 강제다. 교육부는 모든 대학에 휴교령을 내린다(이 휴교령은 2년간 계속된다). TV에 출연한 교육 공무원은 이렇게 말한다. “교육 시스템, 그리고 교과서의 내용 등 전 교육 과정이 퇴폐적입니다. 모든 것이 개조되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타락의 길이 아닌, 이슬람이 이끄는 진리의 길로 이끌어야 합니다.” 이제 어린 마르잔은 베일을 쓰지 않고는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었다. 여성들은 거리에서 ‘그 바보 같은 스카프 두르기’를 거부한다는 전단지를 돌리지만, 갑자기 나타난 턱수염을 기른 남자들로부터 “스카프 아니면 몽둥이지!”라는 구호와 함께 폭행을 당한다. 술을 마신다는 의심을 사면 경찰에 체포된다. 마이클 잭슨 배지를 달고 다니던 마르잔은 혁명수호대 여성분과 대원들에게 끌려갈 뻔한다. 만일 잡혀갔으면 그는 부모도 모른 채 며칠간 갇혀 있었을 것이다. 데이트가 금지되는 것은 물론이다. 젊은 남녀가 공공장소에 함께 있으면 혁명수호대에 끌려가 채찍질을 당할 수 있다.
마르잔은 우여곡절 끝에 대학까지 졸업하지만, 결국 이란을 떠나게 된다. 작가는 머리말에서 “나는 이란이라는 한 나라가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이 벌이는 잘못된 행동으로 판단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막상 조국을 떠나기 전에 동료에게 이런 말을 한다. “만약 어떤 남자가 15명의 여자 앞에서 여자 10명을 죽인다고 해도, 누구도 그에게 유죄 선고를 내릴 수 없어. 왜냐하면, 살인 사건에 대해서 우리 여자들은 증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지! 게다가 이혼할 권리도 남자들에게 있어. 설령 남자가 이혼을 허락한다고 하더라도 자식에 대한 권리는 남자들에게 있지! …난 더 이상 못 참겠어! 이 나라를 뜰 거야!”
파스칼은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의 진리가 산맥의 저쪽에서는 오류가 된다”라는 말을 했다. 한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잣대로 다른 문화를 평가할 수는 없다. 이슬람 여성이 입는 의상을 기독교적인 서구 전통과 융화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지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개인이 무슨 옷을 입는지에까지 국가가 개입한다는 것도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여성은 누구나 얼굴을 전부 가리고 눈만 내놓는 베일을 써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종교적 선택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지할 수 있을까. 더욱이 그 근거로 제시되는 이유가 “여자의 머리카락은 빛을 내어 남자들을 흥분시킨다”는 것이고, 지구의 적지 않은 지역에서 지금도 종교 경찰이 몽둥이를 들고 베일을 쓰지 않은 여자들을 잡으러 다니는 상황에서,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이 정말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font color="#C21A8D">신은 여성을 대머리로 창조했어야 하나</font>
부르카를 금지하는 법을 평가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종교의 자유, 문화적 다양성과 함께 양성평등, 보편적 인권의 문제 등 고려해야 할 요소는 수없이 많다. 찬성하는 주장이나 반대하는 논리나 나름의 근거가 있기 때문에 쉽게 물리치기 어렵다. 그러나 단순히 종교적 선택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르카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 책의 작가가 대학 입학을 위한 이념 시험에서 시험관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험관이 “사트라피양, 당신의 서류를 봤어요. 오스트리아에서 살았더군요. …그곳에서 베일을 썼나요?”라고 묻자 마르잔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요. 하지만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해왔어요. 만약 여자의 머리카락이 그렇게 많은 문젯거리가 된다면 신은 여자를 대머리로 창조했을 거라고 말이죠.” 이슬람의 신이건, 기독교의 신이건, 신은 적어도 남자를 흥분시키기 위해 여자의 머리카락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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