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고 돌아온 연예인에 대한 한 평론가의 발언으로 한동안 인터넷이 떠들썩했다. “도박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범죄’가 아니라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질병’이죠”라며 문제된 연예인이 사과를 해야 한다면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중독의 삶, 프랑수아즈 사강
범죄를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로 보고 스스로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은 질병일 뿐 범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생각이다. 학생들이 교수에게 ‘도박이나 마약 복용을 왜 처벌하느냐’고 묻는 장면은 법과대학이나 로스쿨에서 흔히 볼 수 있다(이 문제의 답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교수들은 대개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고전적인 트릭으로 위기를 빠져나간다. 학생이 도박을 왜 처벌하느냐고 물으면 “그럼, 마약사범은 왜 처벌하느냐”고 답하고, 반대로 스스로 마약을 투약한 사람에게 형벌을 가하는 이유를 물으면 도박죄의 처벌 근거를 되묻는 식이다. 미국 로스쿨에서도 똑같은 광경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혼자 웃은 일이 있다).
도박을 비롯해 마약 투약, 음주 등 중독 양상을 보이는 행위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은 타당한 분석이다. 알코올중독자에게 의지력이 부족하다며 비난만 퍼붓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강한 의지력을 가진 사람도 중독에 빠질 수 있다. 처벌보다는 치료가 더 필요한 경우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만 범죄라고 할 수 있는지는 조금 더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 먼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을 했던 프랑스의 작가이자 마약중독자 프랑수아즈 사강의 경우를 보자.
음악에 모차르트가 있는 것처럼 작가 중에도 ‘신동’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레몽 라디게는 스무 살에 를 썼다. 16살 소년이 전쟁에 나간 남편을 둔 유부녀와 연애하는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도저히 약관의 청년이 썼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하고 정교하다. 물론 그보다 훨씬 더 어린 천재도 있다. 영국의 최연소 시인이자 낭만주의 운동의 선구자인 토머스 채터턴은 11살 때 옛 양피지 문서에 ‘엘리노어와 주가’라는 시를 써 발표하면서 그 시가 15세기 수도사인 ‘브리스톨 롤리’라는 사람의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브리스톨 롤리라는 수도승은 실존했던 사람이 아니다. 채터턴이 교회 묘지의 비석에서 본 이름일 뿐이다. 이 어린 소년은 자신의 머리 속에서 중세라는 하나의 세계를 상상해내고 그 속을 살아간 한 수도승의 입장에서 시를 쓴 것이다(채터턴에 관한 일화는 제임스 A. 미치너의 에서 인용함).
모차르트가 박명한 것처럼 문학 신동들도 오래 살지 못했다. 레몽 라디게는 를 쓴 바로 그해인 1923년, 20살의 나이에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토머스 채터턴은 더욱 불행해서 18살에 굶어죽었는데, 청산가리를 복용해 죽음을 재촉했다고 한다. 19살의 나이에 (여기서 안녕은 작별 인사가 아니라 만났을 때 하는 인사인 ‘Bonjour’다. 즉, 슬픔을 맞이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이라는 작품을 써서 프랑스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킨 또 한 사람의 신동 프랑수아즈 사강은 이들과 달리 2004년에 6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자기 파괴의 아슬아슬한 한계를 걸었다.
20대 초반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 모르핀 중독을 경험한 사강은 일평생 각종 마약과 술, 도박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과도한 음주로 죽을 뻔한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고, 암페타민·코카인 등의 중독자였다. 도박을 끊지 못해 프랑스 정부에 자신에게 카지노 출입금지 명령을 내려줄 것을 요청하기도 한 그녀는 코카인 소지 혐의로 두 차례 체포된 일이 있다. 그에 대한 소감으로 한 말이 유명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사강의 말에서 영감을 얻어 자기 파괴의 극단이라 할 수 있는 자살을 도와주는 사람의 이야기를 소재로 를 썼다.
사강이 마약을 투약하고 도박에 미쳤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사회는 사강의 행위에 관여할 수 없을까? 스스로의 몸과 정신을 파괴하는 행위는 다른 사람이 관여할 수 없는 ‘권리’의 영역일까? 프랑스의 극우 정치가 장마리 르펜은 사강의 약물중독을 부도덕하다고 비난하면서 그녀를 단두대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마약이나 도박의 문제를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맡겨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혼자 마약을 투약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면, 자유로운 의사로 마약을 복용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적정한 가격으로 마약을 판매하는 것을 달리 볼 이유가 있을까? 도박을 할지 말지는 순전히 개인이 결정할 문제라고 한다면, 카지노를 차리는 것도 규제할 수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마약 판매상으로 거리가 가득 차고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카지노가 생겨도 그냥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연히 마라화나 판매상이 될 뻔한 전직 기자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제스 월터의 책 에서도 마약을 판매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그야말로 추락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물론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데 조금의 의문도 제기되지 않는다.
소설은 여러 가지 불행을 한꺼번에 당한 주인공의 처지를 위트 있게 그려낸다. 지방 신문사에서 경제 관련 기사를 쓰던 맷 프라이스는 금융에 관한 뉴스나 자문을 시(詩)의 형태로 제공해주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대박을 내겠다는 황당한 구상을 한다. 잘 다니던 직장마저 때려치우고 ‘poetfolio.com’이라는 이름의 홈페이지를 만들려던 그는, 당연한 일이지만 사업을 제대로 시작해보기도 전에 좌절을 겪는다. 도대체 누가, 어떤 기업의 주가가 오를지를 소재로 한 시를 읽고 싶어하겠는가 말이다. 마침 닥쳐온 금융위기의 여파로 그는 살던 집을 팔고 아이들을 공립학교로 전학시켜야 할 위기를 맞는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고등학교 시절의 연인이던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려고 한다.
자살은 왜 처벌하지 않나집을 잃기 며칠 전,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편의점에 우유를 사러 간 주인공은 우연히 만난 젊은이들로부터 마리화나를 권유받는다. 대학 시절 이후 수십 년 만에 마리화나를 피우게 된 그는 까맣게 잊었던 향기에 감격한다. 주변에 있는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에게 그 경험을 털어놓았다가 그들도 은밀히 마리화나를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지막 남은 돈을 털어 예의 젊은이들로부터 마리화나를 산다. 평범한 중년의 실직자가 엉뚱하게 마약 판매상이 된 것이다.
미처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마약 거래의 세계로 빠져든 주인공은 지하실에 조성된 대규모 마리화나 재배지를 400만달러에 사라는 제안을 받기까지 한다. 화이트칼라 출신이 있는 돈을 다 털어 마리화나를 구입하는 것을 보고 젊은이들은 그가 상당한 재력이 있는 것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생활도 잠깐, 그는 곧 경찰에 들키고 살기 위해 정보원 노릇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결국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기소되지만 정상참작을 받아 형집행유예 판결을 받는다. 파산 신청을 한 주인공이 수입은 적지만 제대로 된 직장을 잡고, 가정을 제자리로 돌리려고 시도하는 것이 이 소설의 결말이다.
시를 좋아하고 기자 생활을 하던 주인공이 마리화나를 좀 피운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것 같지는 않다. 성인이고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생활을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마리화나를 판매한다고 해도 그들에게 큰 해악을 끼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인공 스스로도 자기가 처벌받아야 한다는 데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마약 복용, 도박 등 이른바 ‘피해자 없는 범죄’의 처벌 근거를 찾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만일 사회가 개인의 건강과 안녕에 관여할 권리가 있다고 한다면, 자기 파괴의 극단적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자살은 처벌하지 않는가(물론 자살에 성공해서 죽은 사람을 처벌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실패한 사람을 자살미수죄로 처벌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형법은 자살을 방조한 제3자를 처벌할 뿐 막상 당사자를 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마약·도박 처벌의 근거, 모순과 당위어떤 행위를 처벌하고 어떤 행위는 허용하는지에 관한 정교한 논리도 없다. 마약 복용이나 도박을 처벌하는 근거로 흔히 다른 범죄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듣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상당수 범죄가 음주 상태에서 일어나는데도 술 마시는 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건강에 끼치는 해악으로 보더라도 마리화나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흡연보다 미미하다고 한다. 그러나 마리화나를 피우는 행위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범죄로 규정돼 있지만 담배를 피운다고 처벌하는 나라는 없다. 논리적이지 않다고 볼 여지는 충분하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정교한 이론에 따라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법도 항상 정치한 논리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강원랜드가 생기기 전, 우리나라에 있는 카지노에 외국인만 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딘지 모순으로 보였다. 왜 우리 땅에 있는 유흥장에 우리 국민은 출입이 금지되는가. 자기 돈 가지고 노름하겠다는데 국가가 간섭하는 게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강원도 폐광 지역을 발전시킨다는 명분으로 내국인 출입 카지노가 생기고, 그로 인해 폐인이 되다시피 한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서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은, 논리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적어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너무나 단순하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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