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동 성폭행범을 실제로 본 것은 초임 검사 시절이었다. 그날 배당된 구속사건 기록에 등장하는 피의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어린이 학습지 판매를 하는 그는 동네에서 놀던 유치원생 여자아이에게 귀엽다고 말하면서 골목길로 데려간 다음 성기에 손가락을 넣는 추행을 했다. 놀란 아이가 울면서 집으로 뛰어가 엄마를 찾는 동안 그 피의자는 도망을 가지도 않았다.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는 범인을 찾으러 뛰쳐나왔고, 그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현장에서 체포됐다.
“예뻐서 그런 건데… 진짜 답답합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소아기호증(pedophilia)이라는 게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보코프의 를 비롯해 10대 초반의 소녀를 성적 대상으로 묘사한 책들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유치원생이라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어린아이의 치마 속에 손을 넣는다는 말인가. 그리고 왜 도망가지 않았을까. 내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이윽고 수갑을 찬 채 내 앞에 나타난 피의자는 작은 체구에 얌전하게 생긴 남자였다.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검사님, 정말 아무도 제 말을 안 믿어주시는데요. 저는 정말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아이들만 보면 그냥 행복해져요. 학습지 판매도 그래서 시작한 겁니다. 그런 마음에서 그 아이가 너무나 예뻐서 그런 건데… 진짜 저도 답답합니다….”
황당해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몇 마디 피의자에게 반박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화가 솟구쳐서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애가 귀여우면 거기다 손을 넣나?” 피의자는 잠시 고개를 숙였지만 금세 머리를 들고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 답답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자기가 잘못했다거나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소름이 쫙 끼쳤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잘못했는지 깨달을 때까지, 다시는 그런 짓을 안 하겠다고 결심할 때까지, 교도소가 됐건 정신병원이 됐건 집어넣고 못 나오게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적어도 이런 사람이 아이들 학습지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날 그 피의자를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인 어린아이의 부모가 고소를 취소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법이 개정돼 어린이를 성폭행하면 고소를 취소해도 처벌을 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아동에 대한 강제추행은 피해자 쪽의 고소가 필요한 ‘친고죄’였다. 아이에게서 조금이라도 빨리 끔찍한 기억을 지우려는 부모가 고소를 취소한 것이다. 나는 하루도 그 피의자를 잡아둘 수 없었다. 석방 지휘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나는 검사가 되고 처음으로 피의자를 앞에 놓고 하소연을 했다. “너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제발 정신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라. 만일 아는 의사가 없으면 소개를 해주겠다.”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피의자는 끝까지 자기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검사실을 걸어나갔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무력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고심 끝에 무기징역을 구형하다
개인적으로 사형제를 반대하지만, 검사로 근무하다 보면 사형 구형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동료 검사가 기소한 사건의 재판에 관여하는 때가 그렇다. 수사를 한 검사가 나름의 고민을 거쳐 사형을 구형하라고 적어놓았는데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지방에 근무할 때 같은 검사가 기소한 두 건의 살인사건 기록이 내 앞에 놓였다. 한 건은 사형, 다른 한 건은 무기징역을 구형하라고 되어 있었다.
사형을 구형해달라는 사건은 토막 살인사건이었다. 애인을 죽인 사건이었는데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계획적인 범죄라는 점에서 극형에 처해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무기징역을 구형해달라는 사건은 바로 아동 성폭력 살인사건이었다. 피고인은 전에도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뒤 목을 조르고 있다가 행인에게 발견돼 체포된 전과가 있었다. 10년 정도 징역을 살고 나온 그는 채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다시 어린아이를 성폭행하고 목을 졸랐다. 이번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고, 그 아이는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나는 그 두 사건 기록을 들고 수사검사를 찾아갔다. 만일 둘 중에서 좀더 무거운 범죄를 고르라면 아동 성폭력 쪽이 아니냐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토막 살인사건은 잔인하지만 특정인에 대한 감정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 그런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높지 않다. 하지만 아이를 성폭행하고 죽이려다 체포돼 10년을 갇혀 있던 사람이 나오자마자 똑같은 짓을 해서 살인을 저지른 경우는, 다시 풀려나면 무슨 짓을 할지 너무나 분명하지 않은가. 두 피고인 중에 한 명을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면 후자를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수사검사는 둘 다 무기징역을 구형하자고 제안했다. 나도 동의했고 결국 두 사건은 모두 법원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그때 재판을 받은 아동 성폭행범은 아직도 교도소에 있을 것이다. 그 피고인과 따로 얘기를 해볼 기회를 갖지는 못했다. 만일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물었으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그도 역시 아이가 너무 예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할까. 자기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나를 답답해했을까. 도대체 이들은 어떤 존재란 말인가.
이해가 불가능한 살인
A. M. 홈스의 (The End of Alice)에 등장하는 주인공 ‘채피’는 씽씽 교도소에 갇혀 있는 아동 성폭행범이다. 55년형을 선고받고 23년째 수감 생활 중인 그는 가석방 심사를 앞두고 19살의 여대생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그가 저지른 범행을 잘 알고 있는 그 여학생은 12살의 어린 남자아이와 섹스를 하려는 계획을 털어놓고 의견을 구한다. 자신과 똑같은 길을 걸으려는 여대생과 편지를 교환하면서 그는 점차 예전에 저지른 범행의 기억을 떠올린다.
채피의 인생 역정은 간단치 않다. 정신이 불안정한 어머니는 채피가 어렸을 때 그를 데리고 목욕을 하다가 추행한다. 우리의 주인공은 친어머니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그 뒤 어머니는 혼자 차를 몰고 가다가 길옆으로 추락해 사망한다. 자살인지 사고인지는 알 수 없다. 수감 생활도 굴곡이 많다. 교도소에 들어간 초기에 채피는 클레이튼이라는 동료 수감자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러나 이후로는 마치 애인처럼 그의 요구에 응하면서 살아간다.
심각한 내용에 비해 주인공의 독백과 여대생으로부터 받은 편지로 이루어진 소설의 분위기는 그리 무겁지 않다. 오랜 수감 생활이 채피의 성격을 부드럽게 만들었는지 그의 말은 재치로 가득하다. 아동 성폭행범인 자신을 인터뷰하고 싶어하는 대학교수들의 요청을 거절하는 편지는 배꼽을 잡을 만큼 웃기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천성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는 아동 성폭행범이다.
그가 저지른 범죄의 구체적인 내용은 책의 맨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주인공이 진심으로 사랑했고, 23년이 흐른 뒤에도 잊지 못하는 앨리스는 그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당시 앨리스의 나이는 12살이었다. 이웃집에 사는 채피를 찾아와 호기심에 (스스로) 섹스를 하던 앨리스는 어느 날 생리를 시작한다. 아직 생리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그녀는 채피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비난하면서 가까이 오면 죽인다고 칼을 휘두른다. 그런 게 아니라고,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라고 앨리스를 설득하던 채피는 어느 순간 그녀에게서 칼을 빼앗는다. 그리고 우리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는 그 칼로 앨리스를 수십 번 찌른다. 이미 죽은 그녀의 몸을 마음껏 유린한 그는 그녀의 머리를 베어서 다리 사이에 놓아둔다. 채피는 애초에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가 불가능한 아동 성폭행범인 것이다.
얼마 전 아동 성폭력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일이 있다. 패널 중 한 분은 아동 성폭력의 원인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포르노와 젊은 사람들의 성적 문란이라고 진단했다. ‘길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부둥켜안고 앉아 있는 청춘남녀들’이 비난을 받았다. 다른 한 분은 성매매를 금지한 데서 원인을 찾았다. 그러나 아동 성폭행범이 그토록 단순한 이유에서 생겨나는지는 의문이다. 과연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포르노를 없애고 ‘도덕 재무장’을 하면 아동 성폭력을 방지할 수 있을까. 혹은 성매매를 단속하지 않았더라면 서울 용산 어린이 성폭력 사건, 혜진·예슬양 사건, 조두순 사건, 김길태 사건, 김수철 사건으로 이어지는 아동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끔찍한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언론은 일반의 분노에 호응하는 즉각적인 조처를 내놓는다. 예를 들어 피해자 인권도 중요하다면서 피의자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라는 것이다. 마치 그동안 아동 성폭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 범인의 얼굴을 가려주었기 때문인 것 같은 생각까지 들 정도다. 만일 가해자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아동 성폭력 문제의 0.1%라도 해결된다면 나부터 신상공개에 앞장서겠다. 그러나 아동 성폭력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아직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거의 알지 못한다. 이렇게 성급한 처방이 나오는 것은 단지 우리 스스로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위안을 얻기 위한 것일 뿐이다.
김길태가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것이, 김수철이 어렸을 때 성추행을 당한 것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연구된 적이 있는가. 유치원생이 너무나 예뻐서 성기에 손가락을 넣었다는 학습지 판매원의 정신 상태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아동 성폭행범을 추적해 조사해본 일이 있는가.
섣부른 대책은 진지한 접근을 방해할 뿐
너무나 심각한 문제를 앞에 두고 섣부르게 목소리만 높이거나 선입견에 근거한 대책을 내놓는 것은 정작 필요한 진지한 접근을 방해한다. 아동 성폭력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동 성폭행범이 어떤 존재인지 알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젊은이들의 도덕 재무장이나 포르노 금지 혹은 성매매 허용을 외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초임 검사 시절 석방할 수밖에 없었던 아동 성폭력범의 뒷모습에서 느낀 무력감을 다시 느낀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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