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따위가 있다면 먹지 않은 음식에 대해 말하는 법도 있을 게다. 정말 그런 법이 있느냐고? 피에르 바야르라는 프랑스 교수님이 그걸 안다고 나섰단다. 그가 쓴 책 을 나는 읽지 않았지만, 제목 그대로 내가 읽지 않은 에 대해 설명하자면, 독서란 읽는 순간부터 망각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며 저자는 독자로부터 그저 ‘좋았다’는 모호한 찬사만 바랄 뿐이다. 그러므로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경우,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하는 경우,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까지 독서의 범주에 포함된다.
같은 방법을 먹지 않은 음식에 대해 말하기에 적용해보자. 음식을 대충 핥거나 냄새만 맡거나 다른 사람이 먹은 음식 맛을 말로 들은 경우도 ‘맛보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나는 양배추김치의 맛은, 의외로, 괜찮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일단 간장 맛이 살짝 나면서도 고깃집에서 싸 먹는 것처럼 새콤달콤했는데 며칠 밖에 둬서 그런지 끝맛은 약간 쉰 맛. 그리고 난 양배추김치를 구운 고등어에 싸 먹었는데 맛이 괜찮더라.”
지난 주중에 내가 아직 퇴근하기 전 냉장고에서 익어가던 양배추김치를 먹은 여동생은 문자를 통해 이렇게 맛을 묘사했다.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이 벼락처럼 다가왔다. “그런데 오빠, 양배추김치 담글 때 씻었어? 다섯 조각 먹다가 중단한 건… 흙이 보여서… 위생상 문제ㅋ.”
아차, 김치를 담글 때 겉만 대충 씻고 속은 제대로 씻지 않았던 게 떠올랐다. 그 뒤 간만에 독신남 조카의 집을 찾아 냉장고의 위 칸부터 마지막 칸까지 깨끗이 청소하신 이모님이 “곰팡이가 폈다”며 양배추김치를 죄다 버린 것에 크게 화를 내기 어려웠던 이유다. 이 칼럼을 시작한 뒤 벌써 두 번째다. 고추장아찌는 구더기 때문에 버렸고, 회심의 양배추김치는 곰팡이꽃을 피운 채 이모님 손을 타고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원래 머릿속 계획은 웅대했다. 다 익은 양배추김치를 한입 먹고, 샐러드도 아니고 김치도 아닌 오묘한 맛의 이중성을 논하며, 정희진 칼럼니스트처럼 양배추김치가 배추김치의 대체재가 되리라 생각하는 대통령의 ‘경제지상주의’ 사고방식을 우아하고도 핵심으로 직진하는 어법으로 비판하려 했다. 그런데 글감이 느닷없이 사라져버린 거다. 왼쪽 길이 맞는지 오른쪽 길이 맞는지 논하려 했는데, 장마로 길 자체가 사라져버린 셈. 양배추김치는 그렇게 사라졌다.
가만, 가만, 그런데 이거 뭔가 데자뷔 아닌가. ‘어륀지’ 발언 논란 뒤 갑자기 남대문이 불타고, 천안함 사고 직후 민간인 사찰 논란이 벌어졌다. 비판이 쏟아질 때마다 도망칠 구멍이 뻥뻥 뚫렸다. 연이어 두 차례 요리 도전에 실패한 나는 운이 없다. 대통령은 운이 좋다.
고나무 기자 한겨레 정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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