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톰슨이란 분이 있다. 1960년대 중반 책 한 권 내셨다. 나 같은 기자였다. 당시 미국에 ‘지옥의 천사들’(Hell’s angels)이라는 폭주족이 이슈였다. 20~40대들이 할리데이비슨을 몰고 떼로 다니셨다. 민소매 가죽 재킷에 청바지, 부츠 패션의 원조 되신다. 술 먹고 싸움질, 길거리에서 여자 희롱 등 하셨다. 공화당 정치인, 언론, 경찰 호들갑 떨었다. 미국이 위기에 처했다고 과장했다. 부터 지방지까지 검찰 보고서에 의지해 기사 썼다. 희생양이 필요한 시대였다. 실제 폭주족에 참가한 사람들의 태생, 계급, 뿌리 직접 취재하려는 기자 거의 없었다. 일단, 무서웠다. 그분 직접 오토바이 사서 1년간 폭주족과 같이 다녔다. 그렇게 쓰셨다.
멋진 기자다. 책 재밌다. 그러나 단 하나 의심 가는 대목이 있다. 그분 마약, 술 좋아하셨다. 주간지 마감 때마다 위스키 잔 놓고 타자기 앞에 앉았단다. 그렇게 ‘와일드 터키’ 홀짝이며 글 썼단다. 믿기 어렵다. 글쟁이의 에너지원은-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글쟁이의 심장 엔진에 들어갈 검은 석유는, 커피 아니던가. 하다못해 녹차라도. 근데 위스키라니. 사실은 지난주 특집 기사 마감 때 따라해봤다. 위스키는 아니고 맥주 마셨다. 젠장, 역시 글 나오는 기계에 알코올은 아니다. 게다가 이 기계는 점점 낡아가고 있다.
이게 내 책상에 늘 양갱이 있는 이유다. 들린다, 독자 중에 한 명 웃는다. 양갱이라니. 이 노인정인가, 라는 표정 보인다. “노인네”라고 놀리는 동료도 있다. 어쩔 수 없다. 원래 기계에 담배라는 기막힌 엔진오일 있었다. 끊었다. 그 뒤 설탕이 윤활유가 됐다. 그중에서도 양갱은 최고다. 점성이 있는 질감. 그리 자극적이지 않은 단맛. 게다가 색깔. 커피와 색이 같다. 어감은 또 어떤가. ‘ㅇ’ 발음이 연달아 난다. 뭔가 장난스럽다. 양갱양갱양갱. 울고 있는 옆집 애 놀릴 때 내는 소리 같지 않나.
한자로는 ‘羊羹’이다. 앞글자는 가축 ‘양’이다. 뒷글자는 ‘국, 끓이다’라는 뜻의 ‘갱’자다. 뭔가 이상하다. 붕어빵에 붕어 없듯 양갱에 양 없다. 뭐냐 이게. 위키피디아 찾아보니 원래 중국 음식이란다. 기원전부터 유목민들이 양의 피와 고기를 굳혀 먹은 게 양갱이란다. 이게 16세기께 선종 불교와 함께 일본에 전래된다. 당시 일본 불교국가였다. 메이지유신 전까지 고기 안 먹었다. 돈가스도, 스키야키(쇠고기 전골)도 없었다. 색과 질감은 비슷하면서도 고기를 쓰면 안 되었다. 양의 피 대신 팥앙금으로 양갱 만들었단다. 이게 식민지 시대에 우리나라에 온 거고.
재료 단순하다. 마트에서 다 살 수 있다. 팥, 한천가루(또는 젤라틴), 물엿 또는 설탕, 물, 통조림 밤. 이 정도면 할 만하다. 이 칼럼 쓰며 회도 두 번 쳐봤다. 팥앙금 정도야 쉽게 다룬다(는 자신감 있다). 붕어빵에 붕어 없다. 양갱에 양 없다. 대신 맛있으면 된다. 이런 잡생각을 하며, 나는 냄비에 한천가루를 넣고 물에 녹이기 시작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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