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이번 칼럼은 ‘누들로드’라는 말이 있다면, ‘만두로드’라는 말도 기꺼이 성립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심지어 모 기업에서 만든 ‘파이로드’라는 단어도 있다. 무심코 밥을 먹다 무슨 광고인가 싶었다. ㅊ파이가 전세계로 수출돼 국경을 넘어 한국 문화를 알리고 세계인을 단결시킨다는 자신감이 광고에 녹아 있다. 그렇다면 나도 한번 밀어보련다, 만두로드!
이념이 다른 집단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람도 음식의 힘을 거부하기 어렵다. 음식은 무의식의 배를 타고 국경과 산맥, 바다를 넘는다. 만두로 통칭할 수 있는 음식이 많다. 식재료를 밀가루 전병으로 감싸 찌거나, 굽거나, 튀긴 음식을 만두라고 부른다면 ‘만두 세계지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다. 중국 출신으로 일본에서 대학교수로 있는 장징의 책 (뿌리와이파리 펴냄)의 설명을 들어보자. 중국어 ‘만터우’는 밀가루를 발효해서 찐 빵을 가리킨다. 속이 들어갈 수도, 안 들어갈 수도 있다. ‘딤섬’은 홍콩 등 중국 남부에서 먹는 만두다. 요즘은 베트남 쌀국숫집에서 주로 주문하는 ‘춘쥐안’(춘권)도 있다. 장징 교수는 중국 고서인 에 춘쥐안의 원형에 해당하는 음식이 ‘회회식품’편에 수록돼 있음을 발견했다. 춘쥐안의 원형 가운데 하나는 이슬람계 민족의 식품이라는 취지다. 이탈리아에는 ‘라비올리’가 있다. 넓적한 모양이 만두로 보이진 않지만 치즈와 고기를 넓적한 파스타가 위아래로 감싸 ‘이론적으로’ 만두에 해당한다. (엘레나 코스튜코비치 지음·랜덤하우스 펴냄)를 아무리 뒤져봐도 라비올리나 탈리아텔레에 대해 비중 있게 서술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탈리아 만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감싸서 먹는 것에 대한 본능이라도 있는 걸까? 지난 5월 터키 출장 때 현지에서 구입한 터키요리책에도 만두가 등장한다. ‘탈라스 뵈렉’(Talas Borek)은 속에 콩과 고기, 채소가 들어간 빵이다. 이것저것 속을 넣고 굽거나 튀긴 빵을 모두 ‘뵈렉’이라 한다. 호, 이것 봐라 ‘탈라스’ 뵈렉이라? 위키피디아는 뵈렉의 기원에 대해 투르크 민족이 동유럽 쪽으로 이주하기 전 중앙아시아 시절에 먹기 시작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나라와 이슬람이 맞붙은 탈라스 전투에서 중국 만두가 이슬람으로 전파됐다고 상상한다면 지나친가? 속에 감자를 넣고 튀긴 네팔과 인도의 ‘사모사’도 투박하지만 만두로 쳐주자.
만두 세계지도를 머릿속에 그리다 보면 뭐랄까, 사람들이 아무리 싸우고 죽여도 이성으로 저항할 수 없어 맛있는 것은 서로 섞여들기 마련이라는 안도감과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결국 서로 나눠먹을 것이면서 일단 앞에서는 죽이거나 때리고 봐야 하는 건가 하는 찝찝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노르웨이 테러범 브레이비크가 목적의식적인 춘권거부자였는지 몹시 궁금해진다.
아, 물론 만두로드가 항상 평화의 길인 것만은 아니다. 대만에서 물 건너온 딘타이펑 목동 현대백화점 지점은 최악이었다. 먹다가 싸울 뻔했다. 다음 칼럼에 딤섬 도전기를 써야겠다는 전의가 생길 정도로.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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